AI 심사위원과 AI 가수/사진=저장위성TV 캡처 AI가 부른 노래는 이제 익숙하다. 중국은 그 AI를 오디션 무대까지 끌어들였다. 실제 가수와 AI가 한 무대에서 경쟁하고, 심사석에도 AI가 앉는다. 사람과 AI 가운데 누가 더 잘 부를까. AI는 사람의 무대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까. 익숙했던 오디션에 새로운 궁금증이 붙었다.
최근 종영한 중국 저장위성TV 음악 예능 ‘천사적성음’ 시즌7은 AI 가수와 AI 심사위원을 새롭게 도입했다. 실제 연예인과 AI가 함께 무대에 오르고, 인간 심사위원과 AI 심사위원이 각각 평가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특히 AI 심사위원 ‘광광’은 사람 심사위원과 다른 기준을 보여줬다. 배우 탄쑹윈의 무대를 평가하면서 음정 오차와 감정 표현, 함께 노래한 가수와의 화음 정도 등을 수치로 분석했다. 다른 출연자에게는 온라인 화제성과 대중 반응까지 평가에 활용했다. 사람이 귀와 경험으로 판단하던 무대를 AI는 데이터와 수치로 들여다본 것이다.
숫자가 곧 정답인 것은 아니다. 현지에서도 광광의 평가 기준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무대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매력을 어디까지 수치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AI와 인간 심사위원의 판단이 엇갈릴 때 어느 쪽 평가에 더 공감하게 될지도 새로운 관전 요소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AI 가수가 등장하는 오디션에서는 인간과 AI를 직접 비교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기존에도 목소리나 정체를 숨긴 채 실력으로 평가받는 오디션 포맷이 있었는데, 여기에 ‘인간이냐 AI냐’라는 질문이 하나 더 붙는 것”이라며 “인간인 줄 알았는데 AI였다는 데서 놀랄 수도 있고, 반대로 결국 ‘역시 인간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래만 들었을 때 인간과 AI를 구분할 수 있는지, 실제 무대에서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확인해가는 과정 자체가 관전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AI가 직접 참가자가 되면 오디션의 또 다른 축인 ‘서사’가 문제로 남는다. 기존 오디션에서는 서툴던 참가자가 성장하고, 경쟁 속에서 관계를 쌓는 과정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대 위 작은 표정이나 감정 표현 하나가 특정 참가자를 오래 응원하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 연습생 시절도, 살아온 이야기도 없는 AI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팬이 붙을 수 있을까. AI 참가자/사진=더우인 캡처AI 참가자/사진=더우인 캡처 중국은 이 질문까지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국내 Mnet ‘프로듀스 101’처럼 순위 경쟁과 시청자 투표를 거쳐 데뷔조를 뽑는 아이돌 서바이벌인데, 참가자는 모두 AI다. 지난 6월 중국 숏폼 플랫폼 더우인에서 공개된 ‘12성련사이’는 맥아미디어 산하 AIGC 제작팀이 만든 콘텐츠로, 12개 별자리를 모티프로 한 AI 연습생들이 첫 무대 평가와 센터 경쟁, 순위 경쟁을 거쳐 데뷔에 도전한다. 8월에는 같은 더우인에서 AI 여성 연습생 108명이 9개의 데뷔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싱광108’도 첫 방송됐다. ‘12성련사이’,‘싱광108’ 각 계정/사진=더우인 캡처 화제성은 상당했다. ‘12성련사이’는 공개 한 달여 만에 더우인 관련 영상 조회수 2억5000만 회, 공식 계정 팔로워 약 54만 명을 기록했다. 일부 AI 연습생의 개인 계정에는 10만 명 넘는 팔로워가 모였고, 팬들은 투표를 독려하거나 별도의 응원 계정을 만들었다. AI에게도 ‘최애’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국중앙방송총국(CMG)은 실제 가수 없이 AI 가수만 출전하는 ‘제1회 AI 가수 대전’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음악 기업 소속 가수들이 참가자로 선발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AI를 오디션의 참가자와 심사자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중국 음악 예능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에 대해 첫 호기심이 오래가는 재미로 이어지려면 결국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신기술은 처음 등장했을 때 새로움 자체로 관심을 끄는 ‘노블티 효과(novelty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를 넘어 지속적으로 시청자를 붙잡으려면 AI가 예능 안에서 이야기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끼리 경쟁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 AI를 만든 팀과 사람이 이를 튜닝해가는 과정까지 프로그램 안에서 하나의 서사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AI 오디션이라는 포맷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AI 심사위원은 국내 오디션에 도입될 경우 기존 평가 구조를 넓히는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 교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공정한 평가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전문가와 대중의 평가 비율을 조정하는 것처럼, 시청자가 결과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프로그램 기획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AI도 그중 하나의 장치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기술적인 평가는 AI가 맡고 감성적인 평가는 인간이 맡는 식으로 나눌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심사위원의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며 “공정성은 결국 여러 기준에 대한 합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만큼, AI의 판정도 그 요소 가운데 하나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AI 보컬을 활용한 음악은 이미 대중의 선택을 받고 있다. 생성형 AI로 작곡과 가창을 한 조선힙합의 ‘마음의 숲’은 최근 멜론 톱100에 진입했다. AI가 부른 노래를 듣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AI 참가자를 응원하고 AI 심사위원의 평가까지 받아들이는 예능이 국내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가 다음 질문이다.
중국이 먼저 시작한 AI 오디션은 지금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AI 참가자의 다음 무대를 기다리고 투표할 만큼 팬심이 이어질지, AI 심사위원의 평가가 새로운 관전 요소로 자리 잡을지에 따라 일회성 화제와 새로운 예능 형식의 길이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