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곡이 끝나도 무대의 막은 내리지 않는다. 화면 속 다섯 멤버가 관객의 함성에 답한다.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은 미리 제작된 영상이 아니다. 별도 스튜디오에서 실연자들이 노래하고 안무를 펼치면 목소리는 공연장에 전해지고, 움직임은 모션 캡처로 아바타에 실시간 반영되며, 관객 반응도 스튜디오로 전달된다.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PLAVE)가 보여준 이 장면은 현실의 실연과 디지털 캐릭터, 관객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새로운 음악 경험이다. 실연과 디지털 기술이 무대의 경계를 넓히는 지금, AI는 창작부터 소비까지 음악 생태계 전반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
이 물음은 음악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AI는 작곡·편곡을 비롯한 제작과 유통·마케팅·권리 관리 등 가치사슬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인 기술 업무는 자동화되고, 창작자와 산업 종사자는 AI가 내놓은 결과를 가려내고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미래 음악산업의 핵심은 AI가 인간을 대신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한 곡이 만들어져 청취자에게 도달하는 경로 전체가 재구성되는 데 있다.
제작 현장에서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부터 달라진다. 작곡가는 몇 개의 아이디어만으로 여러 편곡과 음색을 시험하고, 프로듀서는 녹음에 앞서 다양한 제작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다. 보컬 변환과 다국어 가창, 악기 트랙 분리, 믹싱과 마스터링의 자동화는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 이는 소규모 레이블과 독립 아티스트의 실험 기회를 넓히고, 미완성 아이디어가 실제 음원과 공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인다.
그러나 선택지가 늘어나는 만큼 창작자의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단시간에 수십 개의 멜로디와 편곡을 만들 수 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아티스트의 음악적 방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창작자는 무엇을 채택하고 버릴지 결정하며, 프로듀서는 낯선 결과를 일시적 효과에 머물게 두지 않고 아티스트 고유의 음악적 언어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간과 AI의 협업은 작업을 절반씩 나누는 방식이라기보다, AI가 넓힌 가능성에 인간의 선택과 수정이 거듭 개입하는 과정에 가깝다.
음원 제작에서 확인한 인간과 기술의 협업은 아티스트가 무대에 서고 팬과 만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실제 아티스트가 버추얼 캐릭터와 함께 활동하고, 하나의 음악적 정체성이 현실과 가상 공간을 오가며 여러 서사를 이어가는 방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 다국어 음성과 실시간 번역이 활동 지역의 경계를 낮추는 한편, 팬이 리믹스와 가상 공연, 세계관 전개에 참여하는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다. 이처럼 확장된 환경에서 버추얼 아티스트를 인간 창작자의 단순한 대체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 배후에는 음악과 세계관을 설계하고 캐릭터와 팬덤의 관계를 관리하는 기획·제작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누가 어떤 원칙으로 운영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아티스트가 활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환경도 달라진다. 웨어러블 기기와 생활 데이터가 음악 서비스에 연결되면 기상 시간과 수면 상태, 이동 속도와 운동량에 따라 음악이 제안될 수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심박과 스트레스 변화에 맞춰 재생 순서를 바꾸거나 곡의 템포와 음량을 조절하는 서비스도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화가 매번 새로운 음악의 생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음원은 그대로 감상되는 한편, 일부 음악에는 상황과 목적에 맞춘 기능성 믹스나 상호작용형 버전이 추가될 수 있다. 미래의 음악 소비는 과거의 감상 방식을 없애기보다 듣고 경험하는 방식을 여러 갈래로 확장할 것이다.
개인화가 정교해질수록 청취자의 선택권은 새로운 쟁점이 된다. 추천 알고리즘은 축적된 데이터로 취향에 맞는 음악을 빠르게 찾아주지만, 과거의 소비 패턴에 맞춘 곡만 반복해 제시하며 ‘필터 버블’을 만들 수도 있다. 음악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대중이 어떤 음악을 발견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관문이 된다. 따라서 좋은 추천은 현재의 선호를 정확히 맞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한 곡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음악이 들어올 여지를 남겨야 한다. 추천 기술은 정확성뿐 아니라 발견의 가능성, 시스템의 투명성, 청취자가 결과를 조정할 권한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음악의 제작과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 음반사와 플랫폼의 역할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음반사는 음원 제작·유통에 더해 아티스트의 콘텐츠와 정체성, 팬덤과의 관계를 장기간 관리하는 역할을 확대해 갈 가능성이 크다. A&R 담당자는 데이터가 가리키는 성장 신호를 포착하되, 아직 수치화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잠재력과 음악적 가능성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플랫폼 역시 재생량을 늘리는 데 머물지 않고 창작자와 팬이 안전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하나의 음악을 여러 시장과 매체에 어떻게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가치를 참여자와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
권리와 보상의 기준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음악의 제작·유통 과정에는 원곡과 녹음물뿐 아니라 AI 학습 데이터, 합성된 목소리와 얼굴, 모션 캡처 데이터, 팬의 2차 창작물까지 얽힐 수 있다. 따라서 제작 초기부터 누구의 데이터가 어떤 과정에 활용되었는지, 당사자의 동의를 거쳤는지, AI의 결과에 창작자가 어떤 가치를 더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도 2026년 보고서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AI 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출처 표시와 크레디트, 합당한 보상 기준은 지속 가능한 AI 음악시장의 토대다.
이러한 기준을 실제로 작동시키려면 산업의 대응이 기술 도입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AI 활용 내역과 권리관계를 기록할 산업 표준,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계약 지침, 추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원칙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초급 음악인이 실무 경험을 쌓을 교육과 훈련 과정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더라도 제작의 원리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 받아들인다면, 오류를 발견하고 음악적 가치를 판단할 숙련자는 성장하기 어렵다. 기술 도입으로 절감한 시간과 비용의 일부를 창작 실험과 신인 발굴, 교육에 재투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와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작업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일이다. 2026년 발표된 중국 대학생 162명 대상의 생성형 AI 음악 공동 창작 실험에서는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주관적 작업 부담은 줄었지만, 결과물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과 창작 주도감도 낮아졌다. 따라서 작업 부담이 줄어드는 것만으로 좋은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는 AI의 가능성 앞에 수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부여해 최종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성은 기술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이 아티스트의 태도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기술을 어디에 쓰고 어느 지점에서 인간이 개입하는지에 따라 음악산업의 미래는 달라진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AI 모델의 성능을 아티스트의 방향에 맞게 활용하는 판단, 여러 전문성을 연결하는 협업,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시장을 여는 신뢰에서 나올 것이다.
이 연재는 누구나 한 번의 ‘딸깍’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된 장면에서 출발했다. 그 한 번의 클릭은 음악 창작의 문턱을 낮췄지만,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과정까지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엇을 창작으로 인정할 것인지, 누구에게 기회를 주고 어떤 음악을 발견하게 할 것인지, 권리와 보상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한 선택은 더 복잡해졌다.
AI는 앞으로 더 다양한 소리와 아티스트, 무대와 청취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음악 생태계를 이룰지는 기술이 미리 정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음악으로 남길지, 누구와 그 가치를 나눌지를 숙고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음악산업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면, 그 힘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통찰과 판단이다.
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