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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 ㊸ 그 순간, 무엇을 부르고 있었나: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 논란 톺아보기

지난 16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경기, 이 날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의 시선은 마운드가 아닌 마이크를 잡은 한 보컬에게 쏠렸습니다. 밴드 큰그림의 보컬 엄지영이 가창한 애국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이번 논란은 익숙한 애국가 선율 대신, 여러 구간에서 이를 벗어난 과도한 애드리브와 지나치게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면서 촉발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애국가답지 않다",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애국가는 애국가답게 불러야 한다"는 지적까지, 선을 넘은 재해석을 향한 비판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애국가의 리메이크나 재해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의 의미로 발매된 YB(윤도현 밴드)의 록 버전 애국가는 대중의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1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국민의례에서 애국가를 가창한 소향의 무대는 당시는 물론, 이번 사태와 맞물려 최근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이 유독 거센 논란을 부른 이유는, 이것이 '국민의례'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의식의 본래 취지를 감안할 때, 대중에게는 그녀의 재해석이 '매우 부적절한 가창'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애국가’의 법적 지위와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애국가는 이른바 ‘관습상 국가(國歌)’로서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령인 ‘국민의례 규정’ 제4조와 제6조에 따르면, 국민의례 시 애국가는 선 자세로 힘차게 제창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곡조를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과 표절 의혹, 그리고 '만주환상곡'과의 연관성 등 역사적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한계와 논란 속에서도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國歌)로서 국민적 인식과 상징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 제창은 일반 식전 공연이 아닌,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단과 관중 모두가 기립하여 엄숙히 임하는 ‘국민의례’의 순간입니다. 실제로 KBO는 리그 규정의 ‘경기 운영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을 통해 경기 개시 직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선수들과 심판위원은 벤치 앞에 나와 정렬하고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하며,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적인 돌출 행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중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다수의 국민이 관람하는 프로스포츠의 공익성을 고려할 때, 애국심을 고취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다짐하는 경건한 의식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스포츠의 본질적 목적이 상업과 여가, 오락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과거 5공 군사독재 시절의 이른바 ‘3S 정책’과 맞물려 시작된 전체주의적 잔재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공존합니다. ◇ 애국가의 저작권애국가의 작사가로는 좌옹 윤치호(1865~1945)나 도산 안창호(1878~1938) 등 몇몇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작곡가는 ‘안익태’로, 그가 1935년 시카고 한인 교회에서 직접 애국가를 연주하며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애국가의 멜로디를 발전시켜 완성한 교향곡인 ‘한국환상곡’에도 애국가가 핵심 선율로 포함되었습니다.애국가는 ‘안익태’라는 개인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이 역시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그의 유족이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탁을 통해 연평균 560만 원 가량의 저작권료를 지급받아 왔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 ‘애국가에 저작권료를 내야 하느냐’라는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2005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답할 만큼 대중의 반발은 상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안익태 작곡가의 부인 롤리타 안 여사는 2005년 애국가를 한국민에게 무상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식으로 기증서를 전달함으로써 오랜 저작권 논란은 종식되었습니다.애국가를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투영된 표현물로 바라본다면, 이를 만든 안익태 작곡가 역시 고유한 창작 의도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한 음과 한 소절의 배치, 호흡점의 위치, 곡의 빠르기와 셈여림에 이르기까지 분위기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창작자의 치열한 고민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은 그런 음악 창작의 특성을 고려하여 저작물을 창작자의 ‘인격’에 준하여 대우하는 ‘저작인격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작품의 훼손과 무분별한 변형을 방지하는 ‘동일성유지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동일성 유지권 : 창작자의 의도와 표현 형식 보호 물론 이 사건을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창작자의 고뇌와 표현 형식을 보호하려는 저작권의 근본 취지에서 바라본다면,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은 분명 짙은 아쉬움을 남깁니다.결국 이번 사태는 논란 이튿날인 17일, 엄지영이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며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녀는 사과문에서 "애국가를 준비하며 생각과 기량이 많이 짧았다"라며 고개를 숙였고, 불쾌감을 느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그러나 사과문에서 아쉬웠던 점은, 엄지영이 속한 밴드 '큰그림' 또한 자신들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자신의 개성과 표현의 자유를 드러내기에 앞서, 타인의 창작물과 창작자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시 여겨야 했습니다. 그것은 논란의 본질이 결코 가창자의 ‘짧은 기량’의 문제가 아닌, ‘애국가를 그렇게 변주해서 불러도 되는가’라는 인식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란은 가창자 엄지영의 미숙한 판단이나 실수로만 마무리될 사건은 아닙니다. 프로스포츠 경기 전 애국가 제창이 국민의례의 식순인 이상, 그 무대에 서는 가창자에게는 국민 정서를 헤아려야 할 책임, 즉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부르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헤아려야 할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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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 ㊷ ‘원더풀스’의 ‘Creep’ : 저작권 클리어런스 노트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원더풀스’(The WONDERfools)는 1999년 종말론이 득세하던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해성시의 루저들, 채니와 친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자신과 세상을 바꿔가는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유인식 감독과 배우 박은빈, 그리고 최대훈, 임성재가 다시 한번 뭉쳐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극중 은채니(박은빈)는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99년 기준 27세로, 선천적 심장 이상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일이 없는 끝이 뻔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기 말 종말을 외치며 지구가 곧 망하니 심판 전에 영생을 얻으라는 종교인에게 종말 전에 심판을 해주거나 종말을 당길 수 없냐고 윽박지르는 독특한 캐릭터로 극의 포문을 엽니다.‘원더풀스’의 첫 장면에 흐르는 음악은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명곡 ‘크립’(Creep)입니다. 통상 드라마 첫 장면에 맞춰 삽입되는 음악은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극중 인물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인식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크립’은 90년대를 휩쓴 곡으로 1999년 세기말 배경을 즉시 체감시키는 노래이며, ‘I’m a creep / I’m a weirdo / I don’t belong here’의 가사로 대표되는 소외감·아웃사이더 정서는 은채니(박은빈)를 포함한 ‘원더풀스’ 인물들의 정서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습니다. ‘원더풀스’의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 업무는 필자가 운영하는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이 진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크립’을 작품에 삽입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협의를 거쳐야 했을 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이 곡은 2019년 JTBC ‘슈퍼밴드’의 커버 음원 발매 당시에도 클리어런스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어, 저작자 정보나 협의 루트 자체는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연을 통해 아일(I'll), 홍진호, 김형우, 하현상이 원곡의 멜로디와 화성, 가사를 바탕으로 새롭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원곡의 저작권만 해결하면 되었을 뿐, 라디오헤드의 원반 음원(마스터권)을 사용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번 ‘원더풀스’에서는 은채니(박은빈)가 재생한 CD플레이어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라디오헤드의 연주와 목소리가 흘러나와야 했습니다. 따라서 곡 자체에 대한 저작권과 함께 해당 녹음물에 대한 권리, ‘저작인접권(마스터권)’까지 권리 협의 및 사용 승인을 취득해야 했습니다.◇ 악보에서 음반으로, 음악이 기록된 ‘몸’이 바뀌다 음악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입니다. 창작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와 가사, 코드(Chord) 등의 구체적인 음악적 표현은 어딘가에 ‘기록’되어야 비로소 저작물의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 음악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종이에 적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 음악의 ‘몸’은 곧 ‘악보’였던 셈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의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독일 음악가 루이 슐뢰서(1800~1886)의 회고록에서 베토벤은 “작품의 전체 모습이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면, 남는 것은 그것을 악보로 옮겨 적는 일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베토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악상만으로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악보’라는 일정한 형식을 통해 시각화됨으로써 비로소 보호받을 수 있는 ‘저작물’로 성립되는 셈입니다. 이는 저작물이란 머릿속의 구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타인이 지각할 수 있도록 외부에 표현된 것이어야 한다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이처럼 당시 음악의 권리와 거래는 ‘소리’가 아닌 ‘기록된 악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음악이 청각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와 거래는 ‘시각적 기록물’을 매개로 성립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베토벤이 작품을 완성하면, 출판사는 악보 인쇄·판매권을 베토벤으로부터 양도받아 악보집을 출간했습니다. 베토벤은 대가를 일시에 지급받는 방식으로 원고나 필사본을 넘겼으며, 특정 의뢰자(발주자)가 있는 곡은 그들에게 독점적 우선권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현악 5중주(Op. 29)는 프리스 백작의 의뢰로 작곡되어, 한동안 백작의 단독 권리 아래 묶여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 기록 기술의 발달, 함께 늘어난 권리베토벤 사후 소리를 기록하는 녹음 기술과 재생 장치가 발명되면서, 음악의 ‘몸’은 다시 한번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음악이 악보라는 한계를 넘어 지금처럼 음반과 음원의 형태로 고정·유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음악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음반사와 음반 제작자가 등장했고, 이들이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부담하여 녹음을 진행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따라 녹음물 자체에 대한 권리인 ‘마스터권’은 음반사나 음반제작자가 보유하게 됩니다. 오늘날 음악 시장에서 악곡과 가사에 대한 저작권뿐만 아니라, 저작인접권(마스터권)의 중요성이 이토록 대두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 마스터권이 언제나 최초 제작자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리의 양도나 매각을 통해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 저작권 클리어런스는 단순히 법 조문을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원더풀스’에서 ‘크립’을 사용하기 위해서도 이처럼 마스터권을 보유한 실제 권리자를 수소문해야 했습니다. 권리 소유주를 확인한 뒤에는 작품의 성격과 장면의 맥락을 설명하고, 어떤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곡이 노출되는지, 왜 반드시 이 음악이어야만 하는지를 정리해 전달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여러 차례의 논의와 수개월에 걸친 검토, 그리고 최종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천신만고 끝에 비로소 ‘크립’은 ‘원더풀스’의 첫 장면을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결과적으로 ‘원더풀스’ 속 ‘크립’은 단순한 삽입곡을 넘어,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첫인상이자 소외된 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강렬한 서문이 되었습니다. 악보 위에 적힌 권리와 음반 속에 고정된 권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필요한 권리를 끝까지 확보해내는 일. 그것은 한 작품의 시대를 열고, 인물의 정서를 열고, 이야기의 문을 여는 가장 첫 번째 저작권 실무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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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슈퍼마리오 갤럭시…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유대의 서사 [노종언의 컬처인컬처]

최근 대중문화 산업에서 돋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극장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흥행과 오프라인 테마파크 ‘슈퍼 닌텐도 월드’의 꾸준한 외연 확장이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태생적 기반을 넘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닌텐도의 행보는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이러한 닌텐도가 스크린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성공적인 확장을 이룰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명작 게임 ‘슈퍼마리오 갤럭시’에서부터 입증된 ‘시대를 이어 전승되는 콘텐츠와 스토리의 공유’라는 강력한 무기에서 찾을 수 있다.어린 시절 방구석에서 브라운관TV를 보며 쿠파를 물리치고 피치 공주를 구하던 ‘소년’들은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됐다. 그 시절 자신이 느꼈던 가슴 뛰는 모험의 스토리는 이제 조이콘을 쥔 새로운 소년들, 즉 자녀들의 몫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유행하는 오락거리를 넘겨주는 행위가 아니다. 부자가 같은 영웅과 세계관을 매개로 교감하며,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인 것이다.통계적으로도 비디오 게임 산업 내에서 이처럼 세대를 잇는 경험의 공유는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그룹 BCG가 발표한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약 40%와 X세대의 50% 이상이 매주 5시간 이상 게임을 즐기고 있다. 특히 부모 세대의 57%가 자녀에게 비디오 게임을 직접 소개하고 있으며, 부모들의 약 44%는 자녀가 5세가 되기도 전에 비디오 게임 플레이를 함께 시작한다고 답했다.나아가 밀레니얼 부모의 88%는 “자녀와 함께 경험한 영상 속 캐릭터나 게임 관련 상품을 기꺼이 구매할 의향이 높다”고 응답했다. 이는 아버지의 추억이 아들의 새로운 경험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음을 실질적으로 증명하는 대목이다.이렇게 형성된 가족 간의 공감대는 강력한 비즈니스 파급력으로 직결된다. 극장이나 테마파크에서 자녀와 함께 나눈 감동과 경험은 차세대 게임 콘솔 하드웨어 구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가가치 높은 자사 소프트웨어 타이틀 구매,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정기 구독 서비스 가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닌텐도 시네마틱 유니버스(NCU)’라는 조어가 등장할 만큼 닌텐도의 미디어 믹스 전략이 업계의 큰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닌텐도는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 글로벌 팬들이 사랑하는 핵심 IP들을 점진적으로 스크린과 오프라인 공간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세대 간의 스토리를 공유하게 만드는 닌텐도의 진화는, 진정한 IP의 생명력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끈끈한 유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에 깊이 있게 시사하고 있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6.05.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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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㊶ 제타(Zeta) : 돈 벌지 않는 팬심이 어떻게 플랫폼 수익 인프라가 되나

지난 3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리디,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웹툰 플랫폼사들이 스캐터랩(AI 채팅 서비스 제타 운영사)을 저작권법 위반 방조 혐의로 고소했다는 소식이 보도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누군가 웹툰 캐릭터 혹은 스토리를 무단으로 가져다 썼고, 이에 따른 저작권 침해 및 저작인격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 끊임없이 반복되는 저작권 분쟁의 연장선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번 제타 사건은 기존의 시각만으로 단순화해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대리만족 서비스인가, 욕망 실현의 플랫폼인가제타(Zeta)는 이용자가 가상의 캐릭터와 세계관, 상황을 설정하고 대화하는 AI 롤플레잉 서비스입니다. 스캐터랩은 제타를 ‘소설 속 주인공이 돼 로맨스를 즐기거나 영웅이 돼 보는 대리만족’ , 즉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시대, 팬덤의 개인화, 욕망의 실제화’가 가능한 서비스라 정의합니다.게다가 스캐터랩에 따르면, AI가 유저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제시하거나, 상황 지시문을 랜덤하게 제공해 스토리 전개를 창의적으로 가능케 합니다. 이는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웹툰, 드라마 캐릭터와 대화하고, 원작에서 죽은 인물을 살리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를 완성하며, 심지어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19금 외전을 만들고 싶은 욕망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욕망 실현 플랫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 실현에는 타인의 IP에 기대는 상상이 필연적으로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제타의 축은 크게 세 부류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캐릭터와 플롯을 설정해 창을 여는 크리에이터 유저, 둘째, 이미 설정된 캐릭터와 대화하며 서비스를 소비하는 참여 유저, 셋째, 이 모든 행위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OSP(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인 스캐터랩입니다.◇ 기존 저작권 분쟁보다 까다로운 이유: ‘비영리적 이용’과 ‘개인적 유희’ 저작권법 구조로 볼 때, 직접 침해자는 원작 캐릭터의 이름, 이미지, 대사, 고유한 서사와 인물관계를 가져와 AI 캐릭터로 만든 크리에이터 유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저가 원작 캐릭터의 이름과 이미지를 바꿀 경우, 서사나 인물관계가 유사하더라도 ‘우연히’ 설정이 겹친 것이라거나 혹은 ‘나는 그 작품을 본적이 없다’는 항변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제타 유저들의 행위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크리에이터 유저가 캐릭터를 만들어 올린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며, 참여 유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그저 좋아하는 캐릭터와 대화하고 싶어서, 혼자만의 결말을 만들거나 외로움을 달래고자, 혹은 도파민을 얻기 위해 접속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영사인 스캐터랩은 OSP(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로서 신고가 들어오면 삭제하고 있으나, 수백만 개 캐릭터와 수십억 건 대화를 모두 들여다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항변합니다. 마찬가지로 참여 유저는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와 대화만 했을 뿐, 그것이 원작 캐릭터인지 몰랐다면 법적 책임을 묻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수익화 안하면 괜찮을까그렇다면 여기서 저작권이라는 단어와 함께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질문이 있습니다. “수익화 안하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답은 ‘NO’입니다. 유저가 직접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플랫폼 경제에서 이용자의 무상 행위는 그 자체로 강력한 자산입니다. 캐릭터 수, 대화량, 유입 유저 수, 체류시간은 플랫폼의 체급을 결정하는 무형 자산이며 검색량, 추천 클릭, 스냅샷 생성, 광고 노출, 나아가 구독 전환 가능성까지, 유저의 모든 활동은 플랫폼의 수익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물론 이 논리가 스캐터랩이 모든 개별 침해를 직접 저질렀다는 뜻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타 내 모든 캐릭터가 침해물인 것도 아니고, 모든 유저가 원작 IP를 가져온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역사적 인물이나 장르적 클리셰, 혹은 완전히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유저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상처 많은 비련의 여주인공’과 특정 웹툰 주인공의 무단 변형은 분명 다르지만, 장르적 특성과 개별 저작권 침해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저작권법의 오래된 난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캐터랩을 단순한 방관자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제타는 캐릭터를 설정하게 하고, 타인이 그 캐릭터를 발견하게 하며, 대화를 나누고, 경우에 따라 그 순간을 이미지화(스냅샷)하여 유료로 소장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서비스는 단순한 소통의 장이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는 시장’이 됩니다. 제타에서 유저가 침해를 실행하는 ‘손’이라면, 스캐터랩은 그 손들이 활발히 움직이도록 판을 깔아준 ‘시장’인 셈입니다.◇ ‘100% 방어할 수 없다=책임 0%’ 일까?제타의 진짜 문제는 침해를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막을 수 없는 구조를 성장 모델로 삼아놓고 정작 책임 앞에서는 그 불가능성을 방어막으로 삼는데 있습니다.유저가 무한히 캐릭터를 만들 수 있고, 스냅샷 기능을 통해 대화 순간을 이미지화하여 소유하게 한 점은 분명 강력한 매력입니다. 그런데 그 매력이 저작권 리스크로 돌아오는 순간, 플랫폼은 데이터가 너무 많아 일일이 검토할 수 없다는 항변만 반복합니다.결국 쟁점은 제타가 단순히 유저가 만든 캐릭터를 올려두는 공간이었는지, 아니면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캐릭터들이 더 활발히 소비되도록 만든 설계자였는지입니다. 문제 되는 캐릭터들이 유저를 끌어모으고 대화량과 체류시간을 늘려 플랫폼의 수익 가능성으로 이어졌다면 ‘신고 시 삭제했다’, ‘우리는 몰랐다’는 말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현재 정부의 저작권 정책은 주로 ‘불법사이트’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불법사이트는 행위자와 수익 구조가 분명하여 차단, 접속 제한, 형사처벌, 손해배상으로 대응도 비교적 직관적입니다. 하지만 제타 같은 AI 플랫폼이 가져온 저작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차단과 처벌을 넘어, 무상 이용이 어떻게 플랫폼의 수익으로 바뀌는지, 그 과정에서 플랫폼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그리고 창작자의 권리와 이용자의 상상력 사이에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입니다.따라서 이 사안은 제타라는 하나의 플랫폼을 처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AI 대전환 시대에 저작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까지 보호하며,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게 할 것인가를 묻는 사건인 것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11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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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 ㊵ 그 노래의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지난주 살펴본 스윙스와 빅나티의 논란은 힙합 특유의 공격적인 언어와 폭로전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를 단순한 디스전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태의 본질은 힙합 디스전의 도파민이 아니라, 한 노래가 장기적으로 창출할 수익권을 누가 처분하고 누가 그 권리를 유지하느냐에 있습니다.동일한 저작인접권 매각을 두고도 회사는 ‘어쩔 수 없는 경영 판단’이자 ‘공정한 배분’이라 주장하는 반면, 아티스트는 이를 ‘커리어의 장기 수익을 잃은 사건’이며 ‘계속 갖고 있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권리 보유와 수익 기대의 엇갈린 지점 음악 한 곡은 하나의 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권리의 묶음입니다. 작사·작곡가의 저작권, 가창 및 연주한 실연자의 저작인접권, 그리고 음반을 기획·제작한 음반제작자의 저작인접권으로 나뉩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인 ‘마스터권’은 녹음물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하며, 통상 음반제작자의 권리와 직결됩니다. 결국 누가 제작비를 부담했고 계약서상 명시된 권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귀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이번 사례처럼 회사가 마스터권을 소유하고 아티스트는 수익의 일부를 정산받는 구조라 하더라도, 아티스트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아티스트는 마스터권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권리 수익을 배분받을 계약적 지위는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이해관계가 매각을 막을 ‘동의권’인지, 수익 정산을 요구할 ‘청구권’인지, 혹은 정서적·윤리적 차원의 문제 제기의 영역인지는 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결정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티스트의 권리가 ‘매년/매월 정산금을 받을 권리’에 국한될 경우, 이는 본질적으로 정산금을 받을 계약상 청구권에 가깝습니다. 이 경우 회사가 보유한 음원 IP를 제3자에게 처분하는 행위 자체를 막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상 ‘해당 음원 권리의 처분·양도·담보 제공 또는 정산권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권리 처분 시 아티스트의 동의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존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경우 아티스트는 마스터권자가 아니어도 소속사의 독단적인 IP 처분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자산 매각을 넘어 아티스트와의 전속계약상 지위 자체를 제3자에게 이전하는 구조였다면, 동의 여부는 더욱 결정적인 쟁점이 됩니다. 이번 사건이 실제 계약상 지위의 승계가 있었는지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해당 거래가 단순히 '자산'만 넘긴 것인지, 아니면 '계약 당사자로서의 권리 의무'까지 포괄적으로 이전한 것인지에 따라 아티스트 동의가 필요한 범위와 무게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리보이가 두 차례의 논의와 법률 자문, 그리고 최종 동의 과정을 직접 언급한 대목은 중요합니다. 다만 해당 절차가 법적으로 ‘필수적인 동의’였는지, 혹은 향후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설명과 양해’의 과정이었는지는 계약서 전문을 확인하기 전까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당사자들이 이 사안을 단순한 회사 내부의 자산 처분으로만 여기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 선급금은 왜 폭탄이 되는가한편 음악산업에서 ‘선급금’은 미래 수익을 담보로 먼저 지급되는 돈입니다. 통상 거액의 제작비를 조달하기 어려운 레이블은 대형 유통사로부터 선급금을 지원받아 음원 제작, 운영, 마케팅비로 활용합니다. 사업이 계획대로 순항할 때, 선급금은 신규 아티스트 영입과 음원 발매 및 프로젝트 확대를 가능케 하는 성장의 연료가 됩니다. 그러나 기대만큼 수익이 회수되지 않을 때, 현금흐름의 관점에서 본 미상환된 선급금은 더 이상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카탈로그(IP) 전체를 짓누르는 무거운 무게가 됩니다. 스윙스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회사는 카카오로부터 약 120억 원의 대규모 선급금을 유치한 상태였습니다. 소속사는 주요 아티스트들의 계약 만료로 인한 공백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이 자금을 투입해 신규 아티스트를 영입하고 지속적인 음원 발매를 추진했습니다. 추진했던 프로젝트들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힙합 시장도 침체되면서 회사 자금 사정은 악화됐습니다. 결국 회사로 유입되는 모든 음원 수익은 매달 선급금을 변제하는 데 우선 사용되었습니다. 즉 음원으로 돈을 벌어도 그 돈이 회사나 아티스트에게 남지 않고 상환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였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아티스트는 “왜 회사의 경영 실패를 나의 미래 수익으로 메워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소속사의 언어로는 조직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자산 처분’이지만, 아티스트의 언어로는 본인이 향유해야 할 ‘미래 수익의 강제 현금화’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쟁의 끝은 감정이 아닌 실체적 자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선급금 계약 구조부터 매각 대상이 된 음원의 범위, 아티스트별 수익 배분 기준, 그리고 장래 수익을 일시금으로 정산할 수 있는 계약상 근거와 실제 동의 방식이 어떠했는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가르는 핵심 지표입니다.◇ 반복되는 분쟁들이러한 갈등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합니다. 신인 아티스트에게 회사는 리스크를 짊어지는 유일한 ‘투자자’입니다. 녹음실, 프로듀서, 믹싱, 마스터링, 뮤직비디오, 홍보, 공연, 유통망 확보 등 모두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하며, 회사는 이 불확실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가로 음원 권리를 보유합니다. 곡이 히트하여 카탈로그가 축적되고, 그 위에 아티스트의 이미지, 서사, 팬덤 그리고 시간이 만든 가치가 덧입혀지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스윙스와 빅나티의 논란은 아직 사실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권리 매각이 적법했는지, 동의의 성격과 범위가 무엇이었는지, 정산이 공정했는지는 계약서와 정산서가 말해줄 문제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힙합답게 싸웠느냐에 대한 판정이 아닌, 장래 수익에 대한 권리와 동의의 기준을 계약서 위에 더욱 분명히 새기는 일입니다 오래 살아남은 노래는 계속 돈을 벌고, 그 수익은 잊혔던 과거의 계약서를 다시 소환합니다. 결국 이 질문에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그 노래의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5.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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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㊴ 스윙스·빅나티 논란이 다시 꺼낸 음악 IP의 오래된 질문

지난 2013년, 대중음악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컨트롤 비트 대란’. 그 중심에는 커리어의 주요 국면마다 디스전으로 독보적인 서사를 구축해온 래퍼 스윙스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판을 뒤흔드는 날카로운 ‘저격수’로서 한국 힙합의 ‘디스’를 하나의 장르로 승화시켰습니다.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백전노장이 된 스윙스는 이제 저격수가 아닌 수비수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디스전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이번 공세의 주역은 래퍼 빅나티였습니다. 그는 2026년 4월 9일 발매된 하이어뮤직 컴필레이션 앨범 ‘퍼플 테이프’에서 스윙스를 겨냥한 가사를 공개하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일주일 후, 빅나티는 유튜브를 통해 2013년의 스윙스가 이름을 날린 ‘컨트롤 비트’를 다시 소환하여 ‘인더스트리 노우스’라는 제목의 수위 높은 디스곡을 공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스윙스는 맞디스곡을 발표하는 전면전 대신 해명으로 대응하며 장외 설전을 이어갔습니다.이번 디스전은 과거의 전형적인 양상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을 보입니다.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지, 누가 더 랩을 잘하는지, 누가 더 돈이 많은지 등의 전통적인 디스의 주제가 아닌, ‘저작인접권’, 음악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마스터권 매각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빅나티와 스윙스의 평행선주목할 점은 비판을 제기한 빅나티의 위치입니다. 그가 스윙스 산하 레이블에서 활동한 경력이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번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그럼에도 빅나티는 스윙스가 소속 아티스트들이 발매한 음원의 마스터권을 동의 없이 매각해 파산을 막고 포르셰를 구매했다고 주장하며, ’평생 나눠준다고 했으면서 헐값에 IP를 팔아 몇 푼 쥐어주고 땡’이라는 강도 높은 가사로 비판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이에 대해 스윙스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아티스트와 회사의 계약이 종료되면 회사가 수익을 독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자신은 계약 종료 이후에도 아티스트에게 수익을 계속 정산하며 회사를 운영해 왔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그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던 주요 아티스트들의 계약 만료 시기가 겹치며 발생한 경영상 공백을 메우고자 카카오로부터 약 120억 원의 선급금을 받아 30~40명의 아티스트와 계약해 음원을 발매했지만, 선급금 계약 조건에 따라 회사로 유입되는 음원 수익은 매달 선급금 상환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고 프로젝트의 부진과 시장 침체가 맞물리며 회사의 자금 사정은 급격히 경색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정산금을 적기에 지급하지 못하거나, 자칫 기존에 보유했던 음원 권리 자체가 채권자인 카카오 측으로 귀속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설명했습니다.구체적으로는 뮤직카우 등과 약 1년 반 동안 협상해 음원 카탈로그 일부를 약 140억 원 규모로 매각했고, 그 중 90억~100억 원 정도를 아티스트들에게 지급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아티스트는 고마워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는 집을 사겠다고 좋아한 사람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이렇듯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한쪽은 ‘권리를 동의 없이 팔아치웠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은 ‘수익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결국 빅나티의 폭로로 수면 위로 드러난 이러한 첨예한 시각차는, 이후 이어진 사건의 직접 당사자 두 사람이 내놓은 상반된 반응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잃고 싶지 않은 ‘결과물’ vs 당연하지 않은 ‘권리’과거 오랜 기간 스윙스의 레이블 ‘저스트뮤직’에 몸담으며 스윙스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던 기리보이는 입장문을 통해 저작인접권 매각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매각 논의 과정에서 자신이 일군 결과물들을 처분하고 싶지 않아 법률 자문까지 구했으나, 결국 회사의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해 매각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다만 기리보이는 매각에 동의했던 당시 스윙스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가졌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각 대금을 받고 만족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쌓아온 곡들이 소중하기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 팔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결코 팔지 않았을 것”이라고 복잡한 소회를 전했습니다.반면 현재 스윙스의 레이블 ‘인디고뮤직’ 소속인 노엘은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연예인 표준계약서를 기준으로 볼 때, 계약 종료 이후에도 아티스트에게 수익 정산을 지속하는 스윙스의 방식은 결코 당연한 권리가 아닌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며 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회사 생활을 하며 누구나 사소한 불만은 가질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이번 논란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려는 이들을 향해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못 할 싸구려 도파민이나 채우려는 분들’이라는 날 선 표현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이 사안은 과거 차세정·심규선과 파스텔뮤직 간의 분쟁, 그리고 10CM·선우정아와 마운드미디어 계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즉, 회사가 보유한 음원 권리와 아티스트의 실연 및 창작 기여도 사이의 간극, 그리고 계약 종료 후 권리의 귀속 주체와 양도 범위를 두고 반복되어 온 음악 산업의 고질적인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난 최신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노래의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회사 입장에서는 장부상 자산을 처분한 것입니다. 제작비를 전액 부담하고 유통과 마케팅 리스크를 감수한 만큼, 그 권리는 회사의 정당한 자산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그 노래는 내 네임밸류를 기반으로 내 목소리, 내 창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장기 수익은 회사가 계속 가져가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합니다.이러한 입장 차이가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는 음악 상품만이 가진 독특한 생애주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한 번 발매되지만 수익은 영구히 남으며, 그 긴 수익의 꼬리는 필연적으로 권리 다툼을 유발합니다. 음악 산업의 분쟁은 늘 당장의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과거의 계약서와 미래의 현금흐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귀결됩니다. 계약 종료 후나 레이블을 떠난 뒤에도, 심지어 제3자인 후배 래퍼의 디스곡 속에서까지 이 문제가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결국 질문은 하나로 남습니다.‘그 노래의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이 질문에 대한 회사와 아티스트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같은 논란은 이름과 장르를 바꿔가며 때로는 디스곡의 가사 속으로 숨어든 채 반복될 것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4.2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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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튜브 사태가 증명한 ‘전문가 자문’의 치명적 위험성-유명인이 가져야 할 윤리적 감수성 [노종언 엔터법정]

최근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곽튜브의 ‘산후조리원 협찬’이 논란이 됐다. 현직 공무원 신분인 배우자가 산후조리원에서 수백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객실 업그레이드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곽튜브 측은 사과문을 통해 “법률 자문 결과, 배우자의 직무와 무관함을 확인했다”는 해명을 내놓으며 차액 지불 및 3000만 원의 기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하다.곽튜브 측이 주장한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해명은 전형적으로 형사 처벌의 수위를 경감시키거나 뇌물수수죄 등 무거운 혐의를 탈피하기 위해 구성된 법률전문가의 방어 논리다. 그러나 해당 자문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대중의 공분을 산 핵심이자,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가장 강력한 규제 조항인 제8조 제1항의 적용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다. 김영란법 제8조 제1항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 된다.객실 업그레이드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직무와 무관하다”는 해명은 대중의 관점에서 ‘꼼수’로 비칠 여지가 다분했다.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기계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도리어 사태를 악화시키게 된 셈이다.공인이나 유명인의 위기관리 과정에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의 자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때로 치명적인 리스크를 수반한다. 법률 전문가는 철저히 ‘실정법 위반 및 처벌 여부’라는 최소한의 방어선 구축에 집중한다. 반면 대중이 연예인, 인플루언서나 공인에게 요구하는 규범력은 엄격한 법전의 문언을 넘어선 ‘도덕’과 ‘사회적 상식’이라는 다른 관점의 기준이다.대중이 제기하는 문제의 본질은 “공직자가 수백만 원 상당의 특혜를 부당하게 누렸는가”에 있다. 이에 대해 “배우자의 직무와 무관하다”는 식의 항변은 진정성 있는 쇄신으로 해석되지 않기 십상이다. 법리적 해석에 매몰돼 ‘이 정도면 방어가 가능하다’고 오판하는 순간, 유명인이나 공인의 핵심 자산인 ‘대중의 신뢰’는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해당 법리적 방어 카드는 법정에서는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론의 법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법률 전문가의 소견은 위기관리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참고자료’ 중 하나일 뿐, 사태를 종결짓는 ‘만능열쇠’가 될 수 없다. 법리적 유무죄를 다투기에 앞서, 자신의 행위가 대중의 보편적 상식이라는 저울 위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생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윤리적 감수성이 요구된다.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4.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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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㊲ ‘큐피드’ 판결, 법리적 정당성과 산업적 실질 사이의 괴리

지난달 5일 선고된 ‘큐피드 저작권 분쟁’ 2심 판결의 정본이 같은 달 30일 공개됐습니다. 이번 ‘저작권썰’에서는 해당 판결문을 바탕으로, 저작권법 분야의 권위자인 이해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이자 아트앤로(ART&LAW) 문화예술콘텐츠 법률지원센터 대표 김민정 변호사의 의견과 함께 법리적 쟁점과 산업적 함의를 면밀하게 짚어보고자 합니다.사건의 타임라인부터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이 사건은 2023년 11월 29일 어트랙트가 제기한 ‘저작권 확인의 소’로 접수됐고, 2025년 5월 2일 1심에서 어트랙트의 청구는 기각됐습니다. 이어 항소심은 2025년 6월 20일 접수돼 2026년 3월 5일 어트랙트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됐으며, 2026년 3월 28일 확정됐습니다. 지난 6일에는 어트랙트 측의 상고 포기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발단: 용역 계약과 ‘큐피드’ 권리관계사건의 배경을 요약하자면, 어트랙트와 더기버스는 ‘피프티피프티’의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업무용역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의 목적은 더기버스가 사업의 PM 및 부수 업무를 수행해 사업 기획·개발·자문을 지원하고, 원활한 사업 추진과 성공적인 완료를 돕는 데 있었습니다.계약서상 업무 범위에는 신인 걸그룹 개발 총괄, 데뷔 프로젝트 및 앨범 기획·홍보·마케팅, 외주 업무대행 및 용역업체 감독·협의, 원고 명의 사용을 통한 프로젝트 업무 협의 및 추진, 그리고 기타 데뷔 프로젝트와 관련해 필요한 일체의 업무와 부수 업무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계약기간은 2021년 6월 1일부터 2026년 5월 31일까지 5년으로 정해져 있었고, 용역비는 연 3억1160만160원, 월 2596만6680원(VAT 별도)이었습니다.본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곡 ‘큐피드’의 사용 및 권리관계 관련 계약은 더기버스 명의로 먼저 체결됐습니다. 더기버스는 2022년 7월 외국인 원작곡가들(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스웨덴 국적)과 직접 9000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으며, 해당 비용은 2023년 초까지 약 7개월 동안 분할 지급됐습니다. 이어 같은 곡에 대해 2023년 2월 12일, 4만5000달러 규모의 저작권 양도 계약 역시 더기버스 명의로 체결됐습니다. 이후 2023년 4월 10일, 더기버스는 어트랙트로부터 최초 라이선스 계약 체결에 사용된 실비 9000달러를 지급받았습니다.이 지점에서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됩니다. 어트랙트는 추가로 체결된 4만5000달러 규모 저작권 양도 계약이 본래 어트랙트를 위해 이루어졌어야 할 권리 취득이거나, 적어도 어트랙트와의 협의·보고 없이 더기버스가 별도로 가져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어트랙트는 법원에 주위적으로,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재산권이 원고에게 있다는 확인을 구했습니다. 예비적으로는 ‘피고는 원고로부터 4만5000달러를 지급받는 동시에 원고에게 저작재산권을 이전해야 한다’고 청구했습니다. 이와 함께 주위적·예비적으로는 피고들은 원고에게 작사가 안성일·백진실, 작곡가 안성일, 그리고 권리출판사가 주식회사 더기버스로 기재된 각 부분의 말소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도 함께 청구했습니다.◇ 첫 번째 쟁점 : 계약의 당사자는 누구인가?법원은 가장 먼저 선행 라이선스 계약(9000달러)과 후행 저작권 양도 계약(4만5000달러)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우선 라이선스 계약에 대해, 법원은 더기버스가 작곡가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금을 먼저 지급한 뒤, 이후 어트랙트에게 그 계약상 권리를 넘겨주고 9000달러를 지급받은 점을 들어 더기버스를 외부 권리자와 거래한 직접적인 주체로 보았습니다.이어 저작권 양도 계약 역시, 계약서상 양수인이 더기버스로 명시돼 있고, 양도대금 또한 더기버스가 직접 부담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국외 원작곡가들이 당시 더기버스를 상대방으로 인식한 정황과 실연 가수를 피프티피프티가 아닌 다른 가수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계약 이후 2023년 2월 17일 더기버스가 가수 변경에 관한 양해를 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양도 계약의 당사자는 문언 그대로 더기버스라고 판단했습니다.결론적으로 법원은 두 계약을 하나의 연속된 권리 취득 과정이 아닌 별개의 거래로 구분했다는 점입니다. 9000달러의 라이선스 계약은 음반 발매를 위한 필수 권리 확보 단계로, 4만5000달러의 저작권 양도계약은 더기버스가 자신의 비용과 위험을 부담해 별도로 체결한 권리 취득 단계로 해석한 것입니다. ◇ 남겨진 의문: 과연 독립적 투자인가?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남습니다. 동일한 곡과 프로젝트를 두고, 같은 권리자와 맺은 연속된 거래를 과연 ‘프로젝트 수행 범위’와 ‘독립 투자’로 구분 짓는 것이 과연 유일한 해석이었느냐는 점입니다. 즉 단순한 자금의 출처를 넘어, 그 투자 기회 자체가 누구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는지도 함께 고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번 소송에서는 이 관점이 결과를 뒤집을 만큼 입증되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논쟁적인 대목으로 남습니다.특히 항소심은, 설령 더기버스가 양수 교섭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도 그것은 기존 계약의 당연한 이행이 아니라 별도의 합의 문제에 가깝다는 시각을 보였는데, 이 대목은 다음 글에서 PM 계약의 범위와 함께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이해완 교수는 이러한 판결에 대한 의문과 문제의식에는 공감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1·2심이 저작재산권 귀속과 권리 이전 의무를 판단한 결론은 계약서의 명의, 비용 부담 주체, PM계약상 저작재산권 취득의무의 부재 등에 비추어 기본적으로 수긍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이 사건의 핵심은 저작권법 일반론이라기보다 사실인정, 계약 해석, 그리고 민법상 위임관계 해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김민정 변호사 또한 업계가 이해하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원은 결국 요건사실과 계약 문언 안에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어 계약서에 기반한 사건에서 법원이 계약의 효력을 함부로 부정하거나 문언을 과감하게 확장 해석하기는 매우 어렵고, 이 사건도 결국 그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다만 이 사건이 실제 콘텐츠 산업의 권리 설계와 활용 구조에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는 별도로 보아야 한다는 점도 짚었습니다.법원은 계약 문언과 청구 구조라는 틀 안에서 판단했고, 그 결론은 충분히 납득할 만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판결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고도로 설계된 오늘날 K팝 콘텐츠 산업의 비즈니스 매커니즘을 담아내기에 기존의 법적 담론이 얼마나 협소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다음 주에는 ‘최초 발매를 위한 이용허락이 있었다’는 전제로 이루어진 법원의 판단과 PM 업무용역계약의 범위를 중심으로, 이 판결이 실제 콘텐츠 산업의 저작권 현실과 어떻게 맞닿고 또 어긋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4.1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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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㊱ ‘법대로 해!’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 콘텐츠 저작권 분쟁의 현실

일상생활에서 분쟁이 생겨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 결국 약속이라도 한 듯 ‘법대로 해!’라고 외치게 됩니다. 저작권 분쟁도 다르지 않습니다. 침해가 있다면 제재되어야 하고, 정당한 권리자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권리 보호의 필요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실현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남용에 있습니다.일반적인 재산권 분쟁은 일정 부분 금전적 배상으로 어느 정도 사후 회복이 가능하지만, 콘텐츠 산업은 다른 민사분쟁과 그 결을 달리합니다. 공개 시점과 유통 타이밍, 화제성이 가치 형성의 핵심인 콘텐츠 특성상, 유통이 막히거나 시기를 놓치는 것은 곧 시장 퇴출을 의미합니다. 또한 분쟁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여론은 민감하게 움직이고, 그 여론이 작품의 생명력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법적조치, 가처분의 허와 실바로 그 특수성 때문에 콘텐츠 분쟁에서 가장 예민하게 다뤄지는 법적 수단이 가처분입니다. 본안 판결 전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효과를 내는 가처분은, 상대방의 이용을 즉각 중단시키는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동원되곤 합니다. 본래 가처분은 본안 판결 전까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적이고 잠정적인 조치여야 합니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에서 가처분의 효력은 너무 강하게 작용합니다.이는 실제 사례에서도 발견됩니다.2020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는 특정 악곡이 극중 인물들의 잃어버린 가족 관계를 암시하는 핵심적인 정서적 매개체로 사용되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해당 곡을 가창하거나, 기타 연주를 곁들여 부르는 등으로 작품 전체의 감정선을 극대화했습니다.하지만 해당 악곡의 저작권 지분을 상속받은 2인 중 1인은, 자신의 개별적 허락 없이 악곡이 활용된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방송사와 제작사를 채무자로 하여 ‘저작권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이 분쟁의 타임라인을 살펴보면, 드라마 방영 중이던 2020년 6월에 가처분 신청이 접수됐으나 작품은 그해 9월에 이미 종영됐습니다. 1심 판결은 종영 3개월 후인 2020년 12월에야 내려졌고, 이후 진행된 항고심 판단은 종영 후 2년이 지난 2022년 10월에서야 확정됐습니다.이후 2023년 3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과 12월 소송비용액 확정을 거치면서, 해당 사건은 가처분 1심과 항고심 사이에만 약 2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최종 마무리됐습니다. 방영과 유통, 소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콘텐츠 산업에서 이 시간은 단순한 사법 절차 지연을 넘어 사실상 콘텐츠의 시장성 소멸을 의미합니다.사건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1심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며 소송비용을 채권자(신청인)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어진 항고심 역시 추가 및 확장된 신청을 모두 기각하고, 항고 제기 이후의 비용 또한 채권자(항고인)가 부담하게 했습니다. 이후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과 방송사·제작사의 신청에 따른 소송비용액 확정 절차가 인용되면서 사건은 최종 종결됐습니다.결과적으로 법원은 가처분을 신청한 상속인의 사용중지 요구를 모든 심급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셈입니다. 사후적으로 평가했을 때, 작품의 이용 중단까지 요구했던 이번 가처분 신청은 법률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무리한 주장이었음이 확인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권리보호의 방패 vs 콘텐츠 생명력의 치명타이 사건처럼 권리 침해 의심만으로 작품 전체의 유통을 중단시키는 강력한 금지 조치가 실제 허용됐을 경우, 가처분이 잠정적 보전 처분을 넘어 선제적 제재 수단으로 변질되며 콘텐츠로서는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설령 본안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더라도, 그 사이 작품 방영은 종료되고 투자금 집행과 해외 판매, 플랫폼 노출 등의 결정적 시점은 이미 지나가 버립니다. 이러한 콘텐츠 시장의 특성상, 가처분은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 행사될 경우 콘텐츠의 생명력을 뿌리째 흔드는 파괴적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문에 따르면, 실제로 신청인(항고인)은 작곡가의 상속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며, 드라마 속 음악 이용 부분의 제거와 서비스 중단, 즉 다시보기 서비스, 국내외 동영상 제공, OTT 및 스트리밍 플랫폼 이용 제한, 파일 회수·폐기까지 폭넓게 청구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로 인해 필자가 수행해 온 글로벌 플랫폼의 콘텐츠 저작권 클리어런스(Clearance) 실무에서는 권리 확보 단계에서부터 권리자의 구제수단을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요청받곤 합니다. 설령 계약 위반이나 침해 의심이 있더라도 계약 해지, 사용허락 철회, 방영금지 가처분 등의 금지명령으로 작품 이용 자체를 중단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사후 금전 배상으로만 해결하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이는 권리자의 권익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리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방식 또한 산업의 속도와 회복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며, 콘텐츠 산업에서의 가처분은 자칫 작품 전체의 생명력을 먼저 끊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 합리적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문제의 핵심은 가처분 제도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 유통의 전면 중단을 쉽게 허용하는 운용 원리와 명확한 기준의 부재에 있습니다. 가처분은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인용돼야 하며, 본안 소송은 지금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돼야 합니다. 가처분 조치 후 몇 년 뒤 결과가 바뀌는 경우, 이미 작품의 화제성과 시장 가치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면 그 승소 판결은 너무 늦은 결과일 뿐입니다.동시에 산업 현장의 계약 단계에서는 라이선스 범위, 각색과 편곡의 한계, 2차적 활용 가능성, 크레딧 표기 및 대가 지급 기준을 보다 정교하게 명문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후적으로는 조정, 중재, 손해배상 중심의 실효적 구제수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콘텐츠 산업에서 가처분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구조는 권리 보호와 산업의 지속 가능성 모두를 저해합니다. 권리를 지키는 일과 콘텐츠를 살리는 일,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가능케 합리적인 제도와 계약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콘텐츠 산업이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현실적인 과제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4.06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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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㉟ ‘신이랑 법률사무소’ 속 저작권의 비극

망자의 한(恨)을 통쾌하게 풀어 주는 ‘신들린 변호사’ 신이랑과 승소에 모든 것을 건 ‘냉혈 엘리트 변호사’ 한나현의 기묘하고도 따뜻한 한풀이 어드벤처,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가 화제입니다.지난 21일 방영된 4화에서는 걸그룹 연습생 수아의 죽음을 둘러싼 아이돌 세계의 경쟁과 질투, 배신과 반전, 그리고 살인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는 범죄 서스펜스같은 긴박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누가 수아를 죽였는가’라는 범인의 실체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저작권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데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자작곡이 어떻게 타인의 손에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창작자의 이름이 어떻게 지워질 수 있는지 사건 그 이상의 서늘한 여운을 남깁니다.극중 신이랑(유연석)은 수아(오예주)가 죽던 날 들었던 휴대전화 벨소리의 주인이 글로리 엔터의 작곡가 고종석(정시헌)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후 수아의 영혼과 함께 그의 집에 들어간 신이랑은, 고종석이 수아의 휴대전화에 담긴 가사와 자작곡을 몰래 들여다보며 자신의 곡처럼 활용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고종석은 그 곡의 가치를 알아챈 뒤, 수아의 곡을 자신의 곡으로 둔갑하여 세상에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초 이 사건은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던 작곡가 고종석이 연습생(수아)의 미발표곡에 탐을 내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은 진범이자 공범이 수아의 가장 가까웠던 연습생 동기 엠마(천영민)였다는 점입니다. 수아의 자작곡을 가장 먼저 듣고 그 노래의 가치를 알아본 엠마는, 수아를 속여 곡을 보내달라고 한 후 자신의 곡처럼 고종석에게 들려주었고, 데뷔조 탈락의 공포 앞에서 수아를 경쟁자이자 장애물로 여겨 끝내 살인까지 저지릅니다.범행을 목격한 고종석이 신고하려 하자, 엠마는 오히려 고종석이 연습생의 자작곡이 탐나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뒤집어 씌우겠다는 협박으로 사건을 은폐시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공모하여 수아의 휴대전화와 자작곡을 통째로 가로챕니다. 이로써 사건은 단순히 ‘누가 수아를 죽였는가’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게 됩니다.◇저작권은 언제부터 발생되나현실에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거나 저작권협회에 등록되지 않으면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작권은 특허처럼 등록으로 생겨나는 권리가 아닙니다. 창작적 표현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는 순간, 원칙적으로 저작권이 발생하게 됩니다. 저작권 등록은 권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문이 아니라, 분쟁이 벌어졌을 때 누가 언제 무엇을 창작했는지를 보다 쉽게 증명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이 점에서 수아의 휴대전화는 단순한 소지품 그 이상입니다. 그 안에 남겨진 가사와 음성 메모 속 멜로디, 미완성 데모 파일이 비록 미공표된 저작물이지만, 아이디어를 넘어 표현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면 이미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수아의 휴대전화 속 기록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누가 이 노래를 만들었는가’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창작의 이력서입니다.◇저작권 침해: 표절보다 잔인한 창작자 존재의 삭제이 사건이 유독 잔인한 이유는 단순히 ‘표절’이라는 저작권 침해를 넘어, 작품에서 진짜 창작자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저작권법이 저작인격권 중 하나인 ‘성명표시권’을 보장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작품은 단순한 재산이기 이전에,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 시간과 삶이 투영된 인격의 표현이기에 저작자가 자신의 실명이나 예명을 표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고종석과 엠마가 노린 것은 단순한 멜로디 몇 마디가 아니라 그 노래 속에 새겨진 ‘수아’라는 존재 자체를 훔치려 한 것입니다.◇ 저작권, 돈의 권리이기 전에 ‘이름의 권리’저작권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저작권료, 수익배분, 인세와 같은 ‘돈의 언어’부터 떠올립니다. 물론 경제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창작자에게 저작권은 단지 수입원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을 언제, 어떤 이름과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결정할 권리이기 때문입니다.특히 미발표 저작물에서는 ‘공표권’이 중요합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노래라면, 그 노래를 언제 어떤 형식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정할 사람은 원칙적으로 창작자 자신입니다. 누군가 그 노래를 몰래 발표하거나 타인의 이름으로 공개하는 것은 단순한 무단이용을 넘어, 저작자의 시간과 이름을 가로채는 일과 같습니다.◇저작자 사망 뒤 미공표 저작물은 누가 공개할 수 있을까그렇다면 수아처럼 저작자가 사망하고 노래가 공표되지 않은 경우, 누가 이 곡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요? 흔히 상속자가 그 권한을 그대로 물려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작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저작권 중 재산권은 사후 70년간 존속하며 상속되지만, 인격권은 저작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권리여서 그대로 상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공표권을 누가 물려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상속된 저작재산권의 행사와 저작자의 사후 인격적 이익 보호를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에도, 생전의 저작인격권이 침해될 만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유족이나 유언집행자는 침해 행위의 정지나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저작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그의 인격적 권리가 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이런 관점에서 고종석과 엠마가 수아의 곡을 제멋대로 발표하려고 한 시도는, 수아가 생존해있었다면 자신이 결정했어야 할 공개의 시점과 방식,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갈 권리를 타인이 가로채려 한 잔인한 범죄인 것입니다.◇ 저작권, 돈의 권리이기 전에 ‘존재의 권리’‘신이랑 법률사무소’ 4회를 저작권의 시각으로 다시 보면, 한 사람을 추락시킨 물리적 폭력 너머로 한 사람의 창작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타인의 이름을 남기려 한 또 하나의 폭력이 공존합니다. 수아를 옥상 아래로 떠민 손과, 수아의 노래에서 수아의 이름을 밀어내려 한 손. 하나는 생명을 지우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지우려 했기에 더욱 섬뜩합니다.창작물이 한 사람의 시간과 감정 등 다양한 삶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은 ‘돈의 권리’이기 이전에 ‘존재의 권리’입니다. 창작의 출처보다 자본의 힘을, 진실한 이름보다 유명한 이름으로 창작자를 지운 채 작품만 소비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결국 문화의 이름으로 사람을 소모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3.30 05:45
연예일반

건담의 소년과 프리렌의 용사..시대를 관통한 주제의식: 영웅의 조건 [노종언 컬처인컬처]

대중문화 속 ‘영웅’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과거의 영웅은 절대적인 힘을 쥐고 악을 물리치는 신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초인은 더 이상 우리의 팍팍한 현실에 온전한 공감을 주지 못한다.애니메이션 역사를 살펴보면 4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 맞닿아 있는 두 명의 영웅이 있다. 1979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바꾼 ‘기동전사 건담’의 주인공 아무로 레이와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킨 ‘장송의 프리렌’의 용사 힘멜이다. ‘SF 메카물’과 ‘정통 판타지’라는 장르적 형태는 다르지만, 두 작품은 우리에게 동일하고도 무게있는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영웅이란 과연 무엇인가.‘기동전사 건담’은 절대선과 절대악이 싸우는 기존 슈퍼 로봇물의 공식을 완전히 파괴했다. 주인공 아무로 레이는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로봇에 탑승한 내향적인 소년이었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든 전쟁에 예고 없이 내던져진 그는, 병기의 압도적인 힘에 짓눌리고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구토한다. 전장에서 각성한 ‘뉴타입’이라는 능력은 더욱 비극적이다. 타인과 깊이 교감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적의 슬픔과 고독마저 여과 없이 흡수하게 만들었다. 내가 완벽히 이해한 상대를 내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모순. 1970년대 후반, 유례없는 고도성장의 이면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소모되며 허무주의에 빠져있던 청년들은 폭력의 시대 속에서도 타인과 교감하려 고뇌했던 이 연약한 소년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했다.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2020년대. ‘장송의 프리렌’이 그리는 세계는 거창한 스펙터클 대신 잔잔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극 중 마왕을 물리친 위대한 용사 힘멜은, 놀랍게도 세상을 구원할 자만이 뽑을 수 있다는 ‘용사의 검’의 선택을 받지 못한 ‘가짜 용사’였다. 힘멜의 진짜 무기는 화려한 검술이 아니었다. 동료들이 길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 때 언제나 뒤돌아보며 안심시키는 다정한 소통과, 곤경에 처한 이웃을 지나치지 않는 작은 선의였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용사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라는 극중 프리렌의 대사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귀찮거나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싶을 때, 스스로 제동을 거는 하나의 따뜻한 윤리적 나침반이 된 것이다.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마왕도, 우주 전쟁도 없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작은 수고를 감수하는 마음, 평범하지만 다정한 소통과 선의가 모일 때 우리는 서로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그것이 바로 40년의 시간을 관통하여 건담의 소년과 프리렌의 용사가 우리에게 남긴, 시대를 초월한 진짜 영웅의 가치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26.03.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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