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혐오가 자유와 권리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노종언 컬처인컬처]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고인에 대한 모욕과 역사 왜곡 논란이 단연 뜨거운 이슈다. 논란은 출연 배우의 자택 앞 시위로까지 번졌고, 배우 측도 강경한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이에 질세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소재로 한 밈과 가상 영화 포스터가 퍼지고,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의혹 제기까지 되풀이된다. 과거의 죽음과 상처가 정치적 공격의 재료가 되고, 혐오는 끝없는 도돌이표처럼 재생산된다.앞서 스타벅스의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탱크데이’ 홍보 논란은 배재고 야구부 사태로 이어졌다.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일부 학생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치자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정치권까지 나서 비판에 앞장섰고, 관련 기사가 연일 쏟아지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학생들의 사과와 광주제일고의 선처 요청도 있었지만, 구호를 선창한 두 학생은 결국 야구부 생활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잘못된 언행에 대한 질책이 사회적 매장으로까지 치달아야 하는가. 잘못을 꾸짖는 일과 한 사람의 미래를 지워버리는 일 사이에는 경계가 있어야 한다.이제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여유는 모두 사라져 버린 시대가 되었다. 창작도 감상도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일이 되고, 서로 다른 해석이 오갈 자리에는 적대감만 남는다.논란을 불러온 표현에서도, 이를 되받아치는 반응에서도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에 선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이제는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로 다른 정의를 내세우지만, 상대의 상처를 대하는 태도에서 좌우는 어느새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어져 버렸다. 그 점이 아쉽다. 이를 지켜보며 느끼는 것은 분노보다 서글픔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상처를 이토록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상황은 이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끝까지 가려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책임을 따지는 일조차 다음 공격의 명분이 된다. 상대가 먼저 모욕했으니 나의 모욕은 정당하고, 상대가 먼저 선을 넘었으니 내가 지켜야 할 선도 없다는 논리다.표현의 자유가 저절로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든다는 신화는 붕괴되어 가고 있다. 서로의 생각을 듣기 위한 자유가 서로의 상처를 찾아 찌르는 자유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혐오의 권리는 마침내 건드려서는 안 될 신성한 권리처럼 떠받들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을 위해 지켜온 자유에서 정작 인간이 사라지고 있다.역사는 분열의 대가를 보여준다. 로마 공화정은 숙청과 내전을 거듭한 끝에 제정으로 넘어갔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부추긴 민족주의가 이웃 사이에 공포와 불신을 키웠다. 국가의 해체와 전쟁 속에서 민간인들이 목숨과 삶의 터전을 잃었고,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의 비극까지 벌어졌다. 몰락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의 위험은 분명하다.적과 아군을 가르는 프레임은 지지층 결집에 매우 유리하다. 정치인들이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이용하려는 이유다. 정치인들은 그 분노로 표를 얻지만, 정치적 가스라이팅의 대가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 치른다. 거창한 명분을 만든 정치인들의 이름은 역사책에 남지만, 누군가에게는 무너진 관계와 망가진 일상으로 남는다.상대가 먼저 멈추면 나도 멈추겠다는 약속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 편의 조롱에도 고개를 젓고,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적으로 만드는 일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미워해도 되는 사람의 명단이 아니라 의견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모두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우리 편의 승리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내일도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증오가 끝내 우리 사회를 폐허로 만들더라도, 우리의 아이들은 그 폐허 위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26.10.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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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지욱 저작권썰.zip](62)-1. ‘오디세이’ 210만, ‘스파이더맨’ 590만…불법 유출에 뚫린 할리우드, 우리나라는?

2시간 30분 만에 조회수 210만 회. 지난 7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디세이’의 불법 복제본이 X(옛 트위터)에 게시된 뒤 기록한 수치입니다. 이어 8월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고화질 불법 유출본이 무려 590만 개 계정에 노출된 후 삭제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화제가 집중되는 개봉 초기, 저작권 보호 속도가 불법유통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초국경 디지털 환경에서 거대 범죄로 진화한 불법 유통의 실태를 짚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연속 기획 칼럼을 준비했습니다.답을 얻기 위해, 지난달 8일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2026 저작권 보호 국제 포럼’(ICPF 2026) 현장을 찾았습니다. ‘초국경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보호와 국제 협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을 위해 내한한 목 호 파이(Mok Ho Fai) 미국영화협회(MPA) 아시아·태평양 콘텐츠 보호 법무 담당 부사장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 수백만 명 노출 후 영상 삭제, 성공적인 저작권 보호인가영화나 TV 시리즈는 공개 직후의 초기 대응이 상업적 가치를 결정짓는 ‘골든타임’입니다. 하지만 콘텐츠 유출이나 불법 복제 사고가 터지면 늘 ‘차단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불법 사이트 차단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도메인을 바꾸거나 미러사이트를 개설하는 식의 우회 수법으로 끈질기게 생존하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이’나 ‘스파이더맨’ 사례처럼 공개 초기에 불법 복제물이 유출돼 급격히 확산되면, 수개월 뒤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한들 이미 훼손된 상업적 가치를 복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이 지점에 깊이 공감한 목 부사장 역시, 도메인 이전 등 진화하는 불법 복제 환경에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집행 체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소 바꿔 다시 열리는 불법 사이트…차단만이 답일까우리나라에서도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기 위한 새로운 대응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발전의 저해 요소와 극복 방안’ 정책 세미나에서는 주소를 바꿔 재등장하는 불법 사이트에 기존 차단 명령을 신속하게 확대 적용하는 ‘한국형 모색적 금지명령’이 제안됐습니다. 이와 함께 단순 차단을 넘어 콘텐츠 유통에 활용되는 인프라 사업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하지만 불법 콘텐츠를 얼마나 신속하게 차단하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차단 이후’입니다. 사이트가 차단된 뒤에도 이용자가 또 다른 불법 경로를 찾아간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 인력을 투입한 차단 조치도 결국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목 부사장 역시 이 점을 인정하며 “불법 복제를 한층 더 어렵고 위험하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행위로 만드는 동시에, 합법 서비스는 더 쉽고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불법 복제의 규모와 영향력을 줄이는 데 목표를 두고, 불법 복제가 작동하는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불법 복제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조직적인 범죄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목 부사장은 이번 포럼에서 여러 불법 사이트에 기술 인프라를 패키지로 공급하는 조직적 범죄 실태를 소개하며, 사이트 하나를 폐쇄하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조직과 인프라가 남아 있다면 또 다른 사이트가 끊임없이 재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불법 콘텐츠를 찾는 수요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공급자의 등장 역시 막기 어려운 것 아닐까요? 불법 복제 수요 자체를 줄이는 대책이 병행돼야 하는지 물었습니다.이에 대해 목 부사장은 효과적인 제재 조치가 합법 서비스 이용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린다는 MPA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대형 불법 복제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해체되면 이용자의 기존 이용 습관이 깨지고, 불법 경로를 유지하는 비용과 번거로움이 커지면서 합법 플랫폼으로 이동할 기회가 창출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네이버웹툰은 불법유통 차단 기술인 ‘툰레이더 리포트’를 공개하며 ‘뉴토끼’ 등 대표적인 불법 웹툰 사이트가 폐쇄된 직후 합법 플랫폼의 신규 구매자가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디세이’의 210만 조회수,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590만 계정 노출. 불법 복제본을 삭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이미 발생한 노출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저작권 보호의 성과를 차단 건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불법유통의 공급망을 끊어내는 동시에 이용자가 합법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디지털 국경이 없는 시대, 저작권 보호 정책은 이제 단순한 ‘차단’을 넘어 차단 이후의 실질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야 합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10.05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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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 [노종언 컬처인컬처]

세상을 구한 영웅들의 승리 이후, 다음 세대의 삶은 계속된다. 1989~1990년 소설로 출간된 ‘기동전사 건담’의 외전인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는 2021년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해 일본에서 22억 3000만 엔의 흥행을 기록했고, 2026년 개봉한 후속편 ‘키르케의 마녀’ 역시 전편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40년 가까이 된 이야기가 다시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배경은 ‘역습의 샤아’ 12년 뒤다. 전쟁 후에도 지구연방의 부패는 계속되어 특권층만 지구에 남고, 평범한 이들은 ‘인간 사냥’ 단속으로 우주로 쫓겨난다. 이에 맞서 고위 관료를 암살하는 조직 마프티의 지도자가 하사웨이 노아다.기술은 발전했으나 삶의 가능성은 닫힌 역설이 오늘의 청년과 맞닿아 있다. 일터 근처에 집을 얻고 미래를 계획하는 평범한 소망이 도달하기 힘든 목표가 된 현실에서, 불평등은 통장 잔고를 넘어 미래를 상상할 여유의 차이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10년 뒤를 준비하지만, 누군가는 다음 달을 견디는 데 모든 힘을 쓴다.하사웨이의 출신은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1년 전쟁의 영웅인 브라이트 노아의 아들이 아버지가 지킨 질서에 총을 겨누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지켜낸 세계와 자녀 세대가 살아갈 세계는 다를 수 있으며, 과거의 성취만으로는 다음 세대의 불안을 설명할 수 없다.또 다른 접점은 무력감이다. 잘못된 점을 알아도 바꿀 길이 보이지 않는다. 노력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전제돼야 노력하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그렇다고 작품이 폭력을 해답으로 건네지는 않는다. 부패를 향한 분노가 타당하더라도 암살의 정당성은 별개다. 구하겠다는 목적만으로 타인의 생명을 재판할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마프티의 이상에도 모순이 존재한다. 지구 환경 보호라는 거대 이상에 밀려, 정작 평범한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는 과정은 후순위가 된다. 인류 전체를 사랑하는 일과 눈앞의 개인을 존중하는 일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그렇기에 하사웨이는 영웅보다 외면하기 어려운 청년에 가깝다. 부조리를 알아보지만 자신의 모순까진 해결하지는 못한 인물이다. 부당함을 알면서도 생계 때문에 견디고, 변화를 바라면서도 잃을 것을 걱정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 모순을 곧바로 위선으로 단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삶이 보인다.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하라는 격려나 참으라는 훈계가 아니다. 말하면 들어주고, 참여하면 달라지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사회가 감당할 일을 개인의 용기와 희생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청년에게 세상을 구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들이 살아갈 자리가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청춘은 잠시 타오르고 사라질 섬광이 아니라, 그들의 자리에서 오래, 평범하게, 때로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26.10.02 06:00
뮤직

[박태용의 뮤직인사이트]⑦ AI는 음악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마지막 곡이 끝나도 무대의 막은 내리지 않는다. 화면 속 다섯 멤버가 관객의 함성에 답한다. 캐릭터의 표정과 몸짓은 미리 제작된 영상이 아니다. 별도 스튜디오에서 실연자들이 노래하고 안무를 펼치면 목소리는 공연장에 전해지고, 움직임은 모션 캡처로 아바타에 실시간 반영되며, 관객 반응도 스튜디오로 전달된다.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PLAVE)가 보여준 이 장면은 현실의 실연과 디지털 캐릭터, 관객이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새로운 음악 경험이다. 실연과 디지털 기술이 무대의 경계를 넓히는 지금, AI는 창작부터 소비까지 음악 생태계 전반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이 물음은 음악을 만들고 시장에 내놓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AI는 작곡·편곡을 비롯한 제작과 유통·마케팅·권리 관리 등 가치사슬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인 기술 업무는 자동화되고, 창작자와 산업 종사자는 AI가 내놓은 결과를 가려내고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미래 음악산업의 핵심은 AI가 인간을 대신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한 곡이 만들어져 청취자에게 도달하는 경로 전체가 재구성되는 데 있다.제작 현장에서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부터 달라진다. 작곡가는 몇 개의 아이디어만으로 여러 편곡과 음색을 시험하고, 프로듀서는 녹음에 앞서 다양한 제작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다. 보컬 변환과 다국어 가창, 악기 트랙 분리, 믹싱과 마스터링의 자동화는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 이는 소규모 레이블과 독립 아티스트의 실험 기회를 넓히고, 미완성 아이디어가 실제 음원과 공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인다.그러나 선택지가 늘어나는 만큼 창작자의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단시간에 수십 개의 멜로디와 편곡을 만들 수 있지만, 그중 어느 것도 아티스트의 음악적 방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창작자는 무엇을 채택하고 버릴지 결정하며, 프로듀서는 낯선 결과를 일시적 효과에 머물게 두지 않고 아티스트 고유의 음악적 언어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간과 AI의 협업은 작업을 절반씩 나누는 방식이라기보다, AI가 넓힌 가능성에 인간의 선택과 수정이 거듭 개입하는 과정에 가깝다.음원 제작에서 확인한 인간과 기술의 협업은 아티스트가 무대에 서고 팬과 만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실제 아티스트가 버추얼 캐릭터와 함께 활동하고, 하나의 음악적 정체성이 현실과 가상 공간을 오가며 여러 서사를 이어가는 방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 다국어 음성과 실시간 번역이 활동 지역의 경계를 낮추는 한편, 팬이 리믹스와 가상 공연, 세계관 전개에 참여하는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다. 이처럼 확장된 환경에서 버추얼 아티스트를 인간 창작자의 단순한 대체물로 보기는 어렵다. 그 배후에는 음악과 세계관을 설계하고 캐릭터와 팬덤의 관계를 관리하는 기획·제작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누가 어떤 원칙으로 운영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아티스트가 활동하는 방식뿐 아니라 음악을 감상하는 환경도 달라진다. 웨어러블 기기와 생활 데이터가 음악 서비스에 연결되면 기상 시간과 수면 상태, 이동 속도와 운동량에 따라 음악이 제안될 수 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심박과 스트레스 변화에 맞춰 재생 순서를 바꾸거나 곡의 템포와 음량을 조절하는 서비스도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화가 매번 새로운 음악의 생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음원은 그대로 감상되는 한편, 일부 음악에는 상황과 목적에 맞춘 기능성 믹스나 상호작용형 버전이 추가될 수 있다. 미래의 음악 소비는 과거의 감상 방식을 없애기보다 듣고 경험하는 방식을 여러 갈래로 확장할 것이다.개인화가 정교해질수록 청취자의 선택권은 새로운 쟁점이 된다. 추천 알고리즘은 축적된 데이터로 취향에 맞는 음악을 빠르게 찾아주지만, 과거의 소비 패턴에 맞춘 곡만 반복해 제시하며 ‘필터 버블’을 만들 수도 있다. 음악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플랫폼은 단순한 유통 채널을 넘어 대중이 어떤 음악을 발견하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관문이 된다. 따라서 좋은 추천은 현재의 선호를 정확히 맞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한 곡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음악이 들어올 여지를 남겨야 한다. 추천 기술은 정확성뿐 아니라 발견의 가능성, 시스템의 투명성, 청취자가 결과를 조정할 권한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이처럼 음악의 제작과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 음반사와 플랫폼의 역할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음반사는 음원 제작·유통에 더해 아티스트의 콘텐츠와 정체성, 팬덤과의 관계를 장기간 관리하는 역할을 확대해 갈 가능성이 크다. A&R 담당자는 데이터가 가리키는 성장 신호를 포착하되, 아직 수치화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잠재력과 음악적 가능성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플랫폼 역시 재생량을 늘리는 데 머물지 않고 창작자와 팬이 안전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하나의 음악을 여러 시장과 매체에 어떻게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가치를 참여자와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려 있다.권리와 보상의 기준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음악의 제작·유통 과정에는 원곡과 녹음물뿐 아니라 AI 학습 데이터, 합성된 목소리와 얼굴, 모션 캡처 데이터, 팬의 2차 창작물까지 얽힐 수 있다. 따라서 제작 초기부터 누구의 데이터가 어떤 과정에 활용되었는지, 당사자의 동의를 거쳤는지, AI의 결과에 창작자가 어떤 가치를 더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도 2026년 보고서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AI 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출처 표시와 크레디트, 합당한 보상 기준은 지속 가능한 AI 음악시장의 토대다.이러한 기준을 실제로 작동시키려면 산업의 대응이 기술 도입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AI 활용 내역과 권리관계를 기록할 산업 표준,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계약 지침, 추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원칙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초급 음악인이 실무 경험을 쌓을 교육과 훈련 과정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더라도 제작의 원리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만 받아들인다면, 오류를 발견하고 음악적 가치를 판단할 숙련자는 성장하기 어렵다. 기술 도입으로 절감한 시간과 비용의 일부를 창작 실험과 신인 발굴, 교육에 재투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이러한 제도와 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작자가 작업의 주도권을 잃지 않는 일이다. 2026년 발표된 중국 대학생 162명 대상의 생성형 AI 음악 공동 창작 실험에서는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주관적 작업 부담은 줄었지만, 결과물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과 창작 주도감도 낮아졌다. 따라서 작업 부담이 줄어드는 것만으로 좋은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는 AI의 가능성 앞에 수동적으로 머물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부여해 최종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성은 기술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이 아티스트의 태도와 얼마나 일치하는가에 달려 있다.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기술을 어디에 쓰고 어느 지점에서 인간이 개입하는지에 따라 음악산업의 미래는 달라진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AI 모델의 성능을 아티스트의 방향에 맞게 활용하는 판단, 여러 전문성을 연결하는 협업,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시장을 여는 신뢰에서 나올 것이다.이 연재는 누구나 한 번의 ‘딸깍’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된 장면에서 출발했다. 그 한 번의 클릭은 음악 창작의 문턱을 낮췄지만,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는 과정까지 단순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엇을 창작으로 인정할 것인지, 누구에게 기회를 주고 어떤 음악을 발견하게 할 것인지, 권리와 보상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한 선택은 더 복잡해졌다.AI는 앞으로 더 다양한 소리와 아티스트, 무대와 청취 경험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음악 생태계를 이룰지는 기술이 미리 정해주지 않는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음악으로 남길지, 누구와 그 가치를 나눌지를 숙고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음악산업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라면, 그 힘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통찰과 판단이다. 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2026.10.02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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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61) ‘백 투 더 뮤직, AI의 화려함 속 구별돼야 할 창작과 발견’

AI 음악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법리적 구상을 넘어, 실제 산업의 규칙을 만드는 단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지난 22일 국회에서는 ‘AI 활용 음악 신탁 기준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떻게 판단할지, AI 사용 여부를 어떻게 신고·검증할지, 신탁단체와 플랫폼이 어떤 기준을 공유해야 할지 다각도의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인간이 무엇을 만들고, 선택하고, 바꿨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통으로 강조됐습니다. 다만 한국저작권위원회와 법조계, 음악출판·플랫폼·기술 분야의 목소리만 있었지, 정작 멜로디와 화성, 리듬을 만들며 현장에서 음악을 창작하는 작곡가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은 지난달 ‘2026 저작권 중점 대토론회’에 이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결국 제도를 다듬는 과정에서 다시 물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창작적 기여’가 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작곡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요? 지난 회차에 이어 손무현 한양여대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과정·도구에 대한 통제인가, 표현에 대한 창작적 기여인가지난달 2026 저작권 쟁점 대토론회에 참석한 임원선·김경숙·박유선·신재호 교수 등 법학자들은 인간의 구상과 통제가 AI 생성 과정과 결과물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창작적 기여의 핵심으로 짚었습니다.손무현 교수 역시 ‘음악가가 AI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를 중시했습니다. 음악적 역량을 바탕으로 코드·송폼·멜로디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드라마틱하게 해줘” 같은 추상적 프롬프트 입력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설명입니다.하지만 손 교수는 이러한 통제력만으로 저작자성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프로듀서가 곡의 방향성에 깊이 관여했다고 해서 작곡가가 되는 것은 아니듯, 작품 방향성을 통제하는 것과 음악적 표현 자체를 창작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행위라는 지적입니다. 통제력은 창작자성을 보완할 수는 있어도, 창작 행위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는 누구의 창작인가기타리스트가 우연히 연주한 음을 프로듀서가 채택해 곡으로 발전시키는 것과, AI가 우연히 생성한 프레이즈를 인간이 채택·수정·구조화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저작권 쟁점 대토론회에서 임원선 교수는 창작 과정에는 본래 창작자의 사전 의도를 넘어서는 ‘우연’과 ‘확장’이 존재한다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더라도 이를 취사선택하고 수정해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 역시 창작의 영역으로 보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한 신재호 교수(경상국립대 법학)는 프롬프트를 통한 인간의 개입이 주로 아이디어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인간이 표현의 직접 실행자에서 아이디어·설계 제공자로 이동하고 있다면 ‘표현’에만 한정되던 창작적 기여의 범위를 아이디어 영역까지 일정 부분 포섭하는 방향으로 저작자 개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손무현 교수는 아이디어가 실제 음악적 표현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실질적으로 무슨 행위를 했는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연히 나온 결과라도 인간이 음악적 판단을 통해 반복·수정·연주·구조화했다면 창작 과정에 흡수될 수 있지만, 결과물의 핵심적 특징을 예견하지도, 이를 만들어내기 위한 어떠한 음악적 행위도 하지 않은 채 완성된 AI 산출물을 단순히 선택만 한 경우라면, 이는 ‘창작’이 아닌 단순한 ‘발견’으로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는 어디까지, 어떻게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가AI를 창작도구로 활용하는 현실 자체를 제한하기보다, 변화된 환경에 맞춰 인간의 창작적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김찬욱 한국음악출판사협회 회장은 실제 작곡가들이 AI를 활용하면서도 개별 작품에서 이 사실을 밝히는 데는 조심스러워하는 현장의 분위기를 꼬집었습니다. AI 활용을 숨겨야 할 일로 만들기보다, 제도 안에서 정상적으로 라이선스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설지혜 변호사는 AI가 어느 부분에 활용됐고 인간이 어떤 창작적 기여를 했는지 신고하도록 하고, 필요시 창작 과정의 증빙자료와 기술적 확인 결과 등을 토대로 심의하는 방안을 이야기했습니다. 국회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박준우 교수(서강대 법학) 역시 기술이 판단을 도울 수 있지만, 창작성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인간의 지적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이에 대해 손무현 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 현장에서 체감하는 다음 세대 창작자들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실물 악기 연주부터 MIDI 프로그래밍, 그리고 AI 음악에 이르기까지 제작 환경의 변천을 직접 겪어온 입장에서, AI를 ‘얼마나’ 쓰느냐보다 ‘어떤 기반 위에서 어떻게’ 쓰느냐가 핵심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마인드셋과 작곡의 기본기를 다진 후 AI를 활용하는 것과, 건반·화성 등과 같은 기초를 배우기도 전에 AI와 기술부터 익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손 교수가 미래 창작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Basics)’입니다. AI가 인간의 음악적 역량을 보조하고 확장하는 도구는 될 수 있지만, 그 역량을 형성하는 과정 자체를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음악의 본질을 먼저 이해하고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AI를 도구로 다룰 것인가, 아니면 AI의 결과물을 자신의 실력이라 착각할 것인가. AI 시대의 음악 창작자들은 지금 가장 중대한 갈림길 위에 서 있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9.2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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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60) 삐에로는 웃어도 창작자는 웃지 못한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는데, 음악 만드는 사람들은 웃지 못합니다.’AI가 만든 음악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은 뜨겁지만, 정작 노래를 만드는 진짜 ‘창작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최근 열린 토론회들 역시 현장과는 거리가 먼 법학자들 중심의 법리적 논의에 머물렀습니다. 진짜 현장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어떨까요? 30년간 현장을 지켜온 베테랑 음악가를 만났습니다.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작곡가이자 가수 리아(현 김재원 국회의원)의 프로듀서,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등의 음악감독을 거쳐 현재 한양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손무현 교수입니다.◇ ‘창작’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임원선 초빙교수(성균관대 법학)와 박유선 교수(강원대 법학)는 생성형 AI 시대의 창작성을 ‘인간이 최종 표현을 직접 구현했는가’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공통된 견해를 보였습니다. 두 교수는 인간의 구상과 기획, 방향 설정이 AI를 통해 구체화된 이후, 이를 선택·수정·배열·구조화 하는 과정 또한 중요한 창작적 기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박 교수는 ‘아이디어는 자유영역, 표현은 보호영역’이라는 기존 틀에서는 핵심적인 기획적 결정을 내리고도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기여가 저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손무현 교수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AI 시대를 맞아 인간의 역할이 기획이나 선택으로 이동했더라도, 음악적 표현의 형성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를 창작 행위인 ‘작곡’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AI가 트랙과 멜로디를 만들고 인간이 이를 선택·차용하는 구조라면, 음악의 핵심 표현을 담당한 건 결국 AI라는 명확한 기준을 내놓았습니다.한편 김경숙 교수(상명대 지적재산권학)는 AI의 기술적 기여와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구분해야 하며, 최종 결과물에 인간의 의도와 선택, 통제와 수정 등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었다면 해당 기여 부분은 보호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손 교수 역시 음악 작품에 대한 창작적 기여와 음향(sound production)에 대한 기술적 기여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창작 과정의 역할 분담이 달라질 수는 있더라도 ‘작곡’을 비롯한 음악 창작의 본질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음향 작업을 ‘메이크업’에 빗대 음색과 공간감, 이펙팅 등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음악의 핵심 표현 자체를 창작했다는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AI 산출물에 단지 일부 음향 효과를 얹어두고 스스로를 저작자라 칭하는 일부의 태도를 향해 “염치없다”며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 음악 표현의 원천 : 무엇을 ‘창작적 기여’라고 보는가 저작권 대토론회에서 법학자들은 대체로 ‘최종 결과물에서 인간에게 귀속될 수 있는 창작적 기여가 어디까지 존재하는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반면 손무현 교수는 ‘그 기여가 음악의 핵심 표현을 창작한 기여인가’를 구체적으로 짚어내며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습니다.최승재 교수(세종대 법학)와 박성호 명예교수(한양대 법학), 김경숙 교수는 AI 사용 여부 자체보다 최종 산출물에서 확인되는 인간의 구체적 기여를 특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특히 최승재 교수는 여러 차례의 수정과 편집을 통해 인간의 창작적 의도가 최종 결과물에 반영되었다면 그 범위 내에서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한 창작 과정 및 작업 기록 확인의 필요성을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손 교수는 ‘인간이 AI 산출물을 선택·수정·편집하며 창작적 기여가 존재하는 것’과 ‘그 인간을 작곡가로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I가 멜로디와 화성, 리듬 등 핵심 요소를 만들고 인간이 이를 전제로 선택·가공·수정했다면, 그러한 후속 기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창작 행위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인간의 기여가 ‘존재하는가’를 넘어, 그 기여가 음악의 본질적 표현을 ‘직접 형성했는가’를 따져야 한다는 명확한 음악적 기준을 제시한 셈입니다. ◇ ‘선택’은 창작인가?AI가 출력해 낸 100곡 중 인간이 음악적 감각을 발휘해 “17번째 곡이 가장 좋다”며 골라냈다면, 그 ‘선택’ 과정에 들어간 감각을 근거로 이를 ‘창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임원선 교수와 박유선 교수는 표현의 직접 생성뿐 아니라, AI가 제시한 수많은 가능성 중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판단하고 이를 수정·배열·구조화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창작성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박 교수는 AI 시대에는 선택과 큐레이션, 기획 및 워크플로 설계 자체가 인간 창작성의 중요한 발현 지점이 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문제는 ‘선택’의 수준입니다. AI가 만든 100곡 중 17번째를 단순히 고르는 것과, 여러 결과를 소재 삼아 인간이 다시 배열·수정·구조화해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을 같은 수준의 ‘선택’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한 여러 견해에 대해 손무현 교수는 “극단적인 이야기”라며 “선별은 선별사들이 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려야 화가이듯, 음악에서도 좋은 결과를 알아채는 판단력이나 음악적 ‘감’과 멜로디, 화성, 리듬 등 음악적 표현을 직접 만들어내는 행위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는 뜻입니다.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선택 대상이 된 음악의 핵심적 표현을 실질적으로 누가 형성했느냐는 점입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2026.09.2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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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용의 뮤직인사이트]⑥ AI는 음악인의 자리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작업실에 한 곡의 데모가 도착한다. 과거라면 편곡자가 곡의 구조를 다듬고, 세션 연주자들이 악기별 트랙을 채우며, 엔지니어가 녹음과 믹스를 분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듀서 한 명은 생성형 AI로 편곡 시안을 뽑아내고 보컬 질감을 바꾸며, 스템 분리부터 러프 믹스까지 단숨에 마침표를 찍는다. 반나절이면 여러 버전의 결과물이 테이블 위에 오르는 시대, 현장은 필연적으로 묵직한 질문을 마주한다.“그렇다면 이 과업들을 지탱하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자리를 맡게 되는가.”AI가 음악인의 일자리를 전면 대체할 것인지 묻기에 앞서, 음악산업 직무의 본질적 구조를 살필 필요가 있다. 직무는 단일한 기술이나 단순 작업의 집합이 아니다. 작곡가는 음을 배열할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언어와 서사를 해석하고 정제한다. 엔지니어는 소리를 물리적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녹음실의 분위기와 연주자 간 심리적 흐름을 조율한다. A&R(Artists and Repertoire) 담당자 역시 데이터를 검토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계약과 투자, 레퍼토리의 방향성에 책임을 진다. 이처럼 하나의 직무는 수많은 과업과 관계, 판단과 책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대체 가능성 역시 직업명이 아니라, 그 안을 구성하는 과업 단위로 세분화해 따져봐야 한다.먼저 자동화의 압력을 받는 영역은 결과를 미리 규격화할 수 있고 반복성이 높으며, 창작자의 고유한 맥락과 관계적 판단이 적게 개입되는 과업이다. 레퍼런스 탐색, 코드·편곡 초안 생성, 노이즈 제거, 음정·타이밍 보정, 가이드 보컬, 러프 마스터링, 메타데이터 작성 등은 이미 적은 비용으로 처리 가능하다. 이처럼 일정한 기준에 따라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과업일수록 자동화를 통한 속도 향상과 비용 절감의 압박은 커진다. 특히 배경음악이나 기능성 음원처럼 개별 창작자의 서사보다 납기와 단가가 우선시되는 시장에서는 대체 압력이 더욱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그러나 특정 과업의 자동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직무 전체가 같은 속도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가 2025년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은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업에 종사하며, 전 세계 고용의 3.3%는 가장 높은 노출 범주에 속했다. 보고서는 일자리의 전면 소멸보다 노동의 성격이 재구성되는 ‘직무의 변형’ 가능성을 더 크게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음악산업에서 무엇이 자동화되고 무엇이 인간의 역할로 남는지를 판단하는 데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AI가 코러스 아이디어 열 가지를 제안하는 일과, 그중 어떤 코러스가 지금 이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서사에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컨트리 뮤직의 거장 랜디 트래비스가 2024년 발표한 싱글 ‘Where That Came From’은 이러한 직무 변형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직접 노래할 수 없게 된 트래비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AI 기술이 활용됐으나, 곡은 결코 버튼 하나로 완성되지 않았다. 제임스 듀프리의 보컬과 트래비스의 과거 아카이브 녹음, 오랜 프로듀서 카일 레닝의 세밀한 디렉팅과 편집, 레이블의 기획, 그리고 트래비스 본인의 예술적 승인이 결합됐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해 밀어내기보다 중단됐던 창작을 지속하게 했고, 가수와 프로듀서, 엔지니어, 레이블의 역할을 새롭게 재배치했다.그러나 랜디 트래비스 사례에서 확인한 긍정적인 역할 재배치가 모든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도구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이 어떤 비용을 절감하고 어디에 다시 투자하느냐에 따라 파급효과가 달라진다. 데모 제작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신인을 발굴하고 마스터링과 공연에 예산을 투입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초급 인력을 단순 비용으로 규정하고 감축할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2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85%는 인력 재교육을 우선하겠다고 답한 반면, 40%는 AI가 과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인력 감축을 예상했다. 이는 기술의 성능 자체보다 산업 내부의 경영적 판단이 고용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기업 내부의 고용 문제와 더불어, 프리랜서와 프로젝트성 계약이 많은 음악산업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몫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작업 시간이 단축됐다는 이유로 외주 단가만 인하되면 기술의 이익은 오롯이 발주자에게 집중된다. 반대로 절약된 시간을 정교한 디렉팅과 새로운 시도에 쓴다면 창작자의 역할은 고도화된다. 따라서 향후 계약과 보수의 기준 역시 단순 투입 시간이 아니라, 창작적 판단의 가치와 최종 책임을 반영해야 한다.AI가 제작 과정의 과업과 역할을 바꾸면서 기존 직무에 요구되는 책임의 범위도 달라진다. 프로듀서와 A&R 담당자는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아티스트의 고유한 방향성과 맞는지 판단해야 하고, 엔지니어는 소리의 품질뿐 아니라 사용된 음악 소스의 출처와 권리, 상업적 이용 조건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제 윤리적·법적 판단력은 단순한 기술 숙련과 함께 직무 전문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이처럼 기존 직무의 책임은 무거워지는 반면, 정작 숙련 전문가로 성장할 초급 인력의 진입 경로는 좁아질 수 있다. 과거 보조 엔지니어는 파일 정리와 마이크 세팅을 맡으며 현장을 배웠고, 신인 작곡가는 가이드 제작을 거치며 아티스트의 요구를 읽어냈다. 신입 담당자 역시 자료 조사와 회의록 작성을 통해 선배들의 통찰을 익혔다. AI가 초급 과업을 먼저 흡수하면 당장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숙련 전문가로 성장하는 사다리의 첫 칸도 사라질 수 있다. 인력을 줄인다고 조직에 경험과 통찰이 저절로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이러한 직무 재편은 음악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 자체를 바꾼다. 음악 교육의 핵심은 AI 도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차원을 넘어선다. 무엇을 직접 체득하고 무엇을 도구에 위임하며,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유네스코가 발표한 교사용 AI 역량 프레임워크 역시 인간 중심 관점, 윤리적 책임성, 기술의 기초 이해 및 활용 역량을 강조한다. 이러한 원칙을 음악 교육에 적용하면 교육 내용은 세 층위로 나뉜다. 첫째는 화성·리듬·청음·연주·녹음 등 음악의 기본기를 직접 익히는 층이다. 둘째는 AI를 활용해 탐색과 제작의 폭을 넓히는 층이며, 셋째는 결과물의 음악적 가치와 권리·편향성·출처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층이다.이러한 세 층위가 실제 교육에 자리 잡으려면 평가 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완성된 음원 파일만 제출받아 평가하는 방식은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고 AI가 무엇을 대신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향후 교육의 평가는 결과물 중심에서 제작 과정과 사고 과정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최초 아이디어와 프롬프트, 버전별 수정 이력, 직접 연주·재작곡한 부분, 버려진 결과물과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해야 한다. 교육의 초점은 빠른 생성보다 선택의 근거를 밝히고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적 역량에 놓여야 한다.다시 작업실의 데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AI 덕분에 다양한 편곡시안을 확보하는 데 드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 곡에 가장 어울리는 보컬을 발탁하고, 연주자들의 합을 조율하며, 이 작업물이 아티스트의 중장기 디스코그래피와 어떻게 연결될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작업실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결국 음악산업이 어떤 과업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야 하며, 다음 세대가 그 고유한 판단력을 어떻게 배우고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그 답은 AI가 음악인을 통째로 대체하기보다 규격화된 반복 과업과 저비용 제작 시장을 먼저 재편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산업이 오직 효율만을 좇는다면 초급 음악인의 일자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숙련자를 길러내는 경로까지 잃게 된다. 따라서 음악 교육과 산업계가 지켜내야 할 것은 익숙한 제작 방식을 관성적으로 고수하는 일이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통해 비판적 판단의 토대를 구축하고, 협업의 현장에서 책임을 배우며, AI가 압축해 버린 입문 과정을 대체할 새로운 학습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음악인의 미래는 AI 도구를 얼마나 더 빠르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AI가 대신 처리해 준 과업 뒤에 어떠한 인간적 전문성과 예술적 통찰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다음 세대가 그 전문성에 도달할 성장의 사다리를 어떻게 다시 놓을 것인가에 음악 생태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2026.09.18 05:40
연예일반

아티스트 보호가 소속사의 파산을 뜻해서는 안 된다 [노종언 엔터법정]

연예기획사와 아티스트의 전속계약 분쟁이 법정으로 가면 결론은 대체로 단순해진다. 계약이 유효한가, 해지되었는가. 아티스트와 소속사 중 누구에게 귀책사유가 있는가. 결론이 나서 계약관계가 무너진 뒤 남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연습생 교육비, 음반·뮤직비디오 제작비, 안무·보컬 트레이닝 비용, 숙소비, 스타일링비, 홍보비 등 이미 투입된 비용을 누가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인지가 남기 때문이다.현재의 분쟁 구조에서는 아티스트가 전속계약의 해지나 효력 부존재를 인정받으면 소속사가 그동안 지출한 비용을 사실상 전혀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아티스트는 소속사의 투자로 형성된 실력과 인지도, 방송 경력, 팬덤과 대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소속사로 이동할 수 있다. 계약은 끝났지만 투자로 만들어진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물론 이는 상당 부분 소속사가 감수해야 할 사업상 위험이다. 연예기획업은 모든 연습생과 아티스트가 성공할 것을 전제로 하는 사업이 아니다. 비용을 들이고도 데뷔하지 못하거나, 데뷔 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례가 더 많다. 실패의 위험을 연습생이나 신인 아티스트에게 모두 전가한다면 과거의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불투명한 정산과 과도한 비용 전가로 아티스트의 권리가 침해되어 온 역사도 분명히 존재한다.그러나 과거의 불공정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반대 방향의 불균형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속사에게 잘못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고 해서 그 잘못의 정도나 계약 파탄에 미친 영향과 관계없이 모든 투자비용이 소멸하는 구조가 정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경미한 정산 지연이나 일부 의무 불이행과 아티스트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위반의 정도, 시정 가능성, 신뢰관계 파괴에 미친 영향에 따라 손해 부담도 달라져야 한다.문제는 현재의 전속계약 분쟁이 이러한 세밀한 구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속사가 승소하면 아티스트에게 거액의 위약벌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아티스트가 승소하면 소속사는 기존 투자비용을 거의 회수하지 못하는 ‘모 아니면 도’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양측 모두 극단적인 소송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전속계약은 단순한 근로계약도, 순수한 동업계약도 아니다. 소속사는 먼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성공 가능성을 키우고, 아티스트는 자신의 시간과 재능, 인격적 가치로 그 투자에 응답한다. 따라서 계약이 중도에 종료되더라도 어느 한쪽에게 모든 손실을 전가하기보다 계약 파탄의 책임, 비용의 성격, 아티스트에게 남은 이익, 이미 회수된 수익을 종합해 부담을 나누는 장치가 필요하다.소속사의 폭행, 강요, 정산자료 조작, 중대한 인권침해처럼 계약관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한 행위가 인정된다면 비용 청구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경미한 의무 위반이나 해석상 다툼, 시정 가능한 정산 지연만으로 계약이 종료된 경우에는 아티스트에게 실제로 귀속된 일부 직접비용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정산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의 권리 보호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그 보호가 소속사의 모든 투자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한 번의 계약 분쟁으로 회사가 도산하는 결과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자본력이 큰 대형 기획사만 위험을 감수할 수 있고, 중소 기획사는 신인 발굴과 장기 투자를 포기하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데뷔의 기회를 잃은 연습생과 신인 아티스트에게 돌아간다.아티스트가 승소하면 소속사가 망하고, 소속사가 승소하면 아티스트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K-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만들 수 없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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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용의 뮤직인사이트]⑤ AI가 만든 음악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새 싱글의 마스터 음원이 음악 레이블 A&R팀의 스피커를 통해 흐른다. 가사는 전속 작사가가 썼다. 작곡가는 생성형 AI 도구가 제시한 수십 개의 멜로디 루프 중 하나를 고른 뒤 후렴구 가락을 미세하게 수정했고, 음악 프로듀서는 AI 기반 악기 트랙을 재배치해 편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트랙의 중심인 보컬에는 유명 가수의 음색을 학습시켜 구현한 합성 음성이 입혀졌다. 과거라면 정교하게 다듬어진 음원의 완성도나 상업적 매력만을 논했을 발매 심의 회의실 분위기는 사뭇 냉랭하다. 음악 감상을 마친 뒤 정적을 깨고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사운드의 매력도가 아닌, 서류상의 권리다.“이 곡의 작사·작곡 지분은 누구의 이름으로 귀속되는가.”“이 목소리와 실연에 대한 권리는 누구의 허락을 거쳤는가.”전통적인 음악산업 구조에서 한 곡의 마스터 음원에는 작사가·작곡가의 음악저작권, 가창자·연주자의 저작인접권, 그리고 자본 투입과 기획을 주도한 음반제작자의 권리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제작 과정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AI 기술 개발사, 학습 데이터로 활용된 원작권자, 그리고 복제·합성된 목소리의 실존 아티스트까지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자가 권리 방정식 위에 추가됐다. 이제 질문은 “단순히 누가 AI 음악의 소유자인가”라는 추상적 논의에 머물지 않는다. 제작 단계마다 어떠한 권리가 발생했고, 누구의 허락이 누락됐는지를 법적·산업적 실무 관점에서 명확히 검증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이 혼란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는 AI를 단순한 ‘창작 보조 도구’로 활용했는지, 아니면 AI가 ‘주요 표현의 생성 주체’로 작용했는지를 명확히 구별하는 일이다. 음향 노이즈 제거, 보컬 오토튠, 마스터링 알고리즘 보조 등은 기존에도 사용돼 온 테크놀로지로서 창작자의 미학적 판단을 지원할 뿐 저작권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다. 반면 멜로디, 가사, 메인 보컬 트랙 자체를 알고리즘이 직접 생성해 낸 경우라면 이야기의 속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두 가지 비대칭적 방식을 ‘AI 음악’이라는 단 하나의 포괄적 명사로 묶어서는 어떠한 제도적·산업적 해법도 도출할 수 없다.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가이드라인 역시 이러한 ‘인간의 실질적 기여’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5년 발간한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는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부재한 AI 산출물과, 사람이 직접 수정·선택·배열해 창작성을 더한 AI 활용 저작물을 엄격히 구분하며 등록 범위 또한 인간이 직접 창작한 부분에 한정한다. 미국 저작권청 역시 2025년 발표한 AI 저작권 보고서를 통해 프롬프트 입력만으로는 생성된 결과물을 인간이 충분히 통제하거나 표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결국 저작물성 판단의 핵심 축은 단순한 아이디어 제안을 넘어, 최종 음악으로 귀결된 인간의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표현 방식이다.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무방식주의를 따르지만, 음악산업 생태계에서 이를 누구의 이름으로 등록하고 관리할 것인가는 저작권료 징수 및 분배라는 현실적 수입과 직결된다. 최근 국내 음악 저작권 신탁 관리 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인간이 실질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AI 활용 음악의 신탁 등록 기준을 마련해 2026년 8월 3일부터 시행했으나, 사회적 합의와 추가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시행 22일 만에 해당 개정 규정을 전격 철회하고 기존 등록 건까지 취소 절차에 들어간 사례는 현재 시장이 겪고 있는 진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이러한 정책적 유보와 철회 파동이 AI 음악의 상업적 발매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인간의 기여를 인정한다는 원칙론과, 이를 실제 저작권 신탁 행정과 정산 분배에 적용하는 세부 기준 사이의 거대한 미합의 영역이 존재함을 반증한다. AI가 제안한 후렴구를 작곡가가 고쳐 썼다면 창작의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그 기여도를 지분율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는 별도의 세심한 판단을 요구한다. 따라서 음악 레이블과 A&R 담당자는 단순히 누가 생성 버튼을 눌렀는가가 아니라, 가사 작성, 멜로디 수정, 트랙의 선별 및 레이어링, 편집과 마스터링 단계에서 인간의 구체적 의사결정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를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크레디트와 저작권 지분은 단순한 이름 나열이 아닌 창작 기여와 수익 배분의 법적 근거이기 때문이다.한편, 완성된 음원 결과물의 저작물성과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의 데이터 적법성은 명확히 분리하여 접근해야 하는 별개의 쟁점이다. 사람이 AI의 산출물을 다듬어 저작물성을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해당 AI 모델이 어떤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학습했는가는 또 다른 법적 책임의 영역이다. 거꾸로 AI 생성물 자체는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 복제·학습했다면 엄연한 권리 침해 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완성된 음원과 모델의 학습 경로에는 각기 다른 허락과 책임이 따르는 셈이다.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6년 2월 발간한 ‘AI 저작권 공정이용 안내서’ 역시 AI 학습용 데이터 이용을 무조건적인 허용이나 일률적 금지로 단정 짓지 않는다. 이용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 이용된 부분의 비중과 유효성,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 음악 시장의 잠재적 가치와 거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음악 레이블은 AI 솔루션을 도입할 때 단순한 생성 음질이나 연산 속도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학습 자료의 이용 기준, 상업적 이용 조건, 그리고 향후 권리 침해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보상 및 대응 절차가 마련돼 있는지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그러나 현장의 고민은 기존 저작권 법리만으로 모두 포섭하기 어려운 인격권과 부정경쟁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AI 보컬 합성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가수의 고유한 목소리 톤이나 음색까지 손쉽게 복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음색 그 자체는 일반적으로 저작권의 직접적인 보호 대상과 구별되지만, 그 목소리가 담긴 고유한 실연 음원과 음반에는 별도의 저작인접권이 발생한다. 나아가 국내에서 널리 알려지고 경제적 가치를 지닌 특정인의 음성을 무단 모사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상 타인의 성과나 식별표지를 무단 사용하는 행위로 보호받을 수 있다. 따라서 합성 보컬을 사용할 때는 음원 파일의 출처뿐만 아니라 특정 아티스트의 음성을 모사할 수 있는 정당한 허락까지 확인해야 한다.법적·제도적 논의와 더불어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들 역시 별도의 유통 기준을 세우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2025년부터 당사자의 허락 없는 AI 음성 모사 트랙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플랫폼 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반복 업로드와 조작적 유통을 추천 알고리즘에서 걸러내는 방침을 확립했다. 나아가 AI가 보컬, 연주, 후반 작업 중 어느 단계에 사용됐는지를 디지털 메타데이터 표준인 DDEX 규격에 따라 명확히 표시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제 저작권 법원의 판결 이전에, 플랫폼의 유통 승인과 추천 제외, 정보 표시 여부가 시장 진입을 결정짓는 실질적인 1차 관문이 됐다.결국 기존의 작사·작곡 지분, 실연 계약, 샘플 이용 허락, 음반제작자의 권리에 더해 ‘AI 이용 내역’ 역시 발매 심사의 필수 체크리스트가 되고 있다. 레이블은 사용한 AI 도구와 모델, 상업적 이용 조건, 입력한 음원과 보컬의 출처, 합성 음성에 대한 정당한 동의 여부를 체계적으로 확인해야 하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권리 분쟁의 책임 소재도 제작·유통 계약서에 명확히 명시할 필요가 있다.아티스트와 프로듀서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실무적 덕목은 제작 이력의 표준화와 문서화다. 프롬프트 활용 내역, 변형 및 재창작 로그, 직접 작성한 메인 멜로디 트랙의 멀티 스템 파일, 수정 이력을 차곡차곡 남겨야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 파일과 수정 기록은 향후 발생할지 모를 지분 분쟁이나 권리 소송에서 창작 기여도와 이용허락의 범위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어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메타데이터는 더 이상 발매 뒤에 덧붙이는 부속 정보가 아니라 권리 확인의 출발점이다.AI 이용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음악 소비자와의 신뢰 형성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실제 실연인지 합성 음성인지, 어떤 창작자가 참여했고 기술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청취자 역시 음악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투명한 크레디트는 기술 사용에 대한 경고문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의 역할을 정직하게 밝히는 신뢰의 보증서다.다시 발매 회의실의 테이블로 시선을 돌려보자. 오디오 플레이어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 너머로 긴 침묵이 흐른다. 화면 위에는 무수한 트랙과 화려한 사운드 믹싱 결과물이 열려 있지만, 담당자들의 손끝은 선뜻 ‘최종 승인’ 버튼으로 향하지 못한다.AI 음악의 권리는 완성된 음원 파일 안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권리의 범위는 마지막으로 생성 버튼을 누른 간편함이 아니라, 그 뒤에 입증할 수 있는 인간의 독창적인 창작적 기여와 투명한 이용허락의 경로가 어디까지 정밀하게 확보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음악산업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핵심 질문 역시 “우리가 AI 기술을 활용했는가”라는 단순한 도구적 채택 여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의 창작과 목소리를, 어떤 정당한 권리적 허락 아래 음악으로 전환했는가”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다.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지 못한 음원은 오늘 당장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가 대중의 귀에 도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레이블이 오랜 시간 온전히 소유하고 관리할 영속적인 ‘카탈로그 자산’이 될 수는 없다.기술의 속도가 권리의 정비보다 빠르게 질주하는 이 전환의 시대, 창작과 이용의 투명한 경계를 세우는 일만이 AI 시대 음악 카탈로그의 진정한 가치를 수호하는 유일한 길이다.박태용 서경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2026.09.11 05:40
뮤직

[김지욱 저작권썰.zip](58) AI ‘딸깍’ 음악의 습격과 리스크, 집단지성으로 답을 찾다

지난 4일, 국내 유일의 음악산업 전문 콘퍼런스인 ‘2026 MWM(Moving the World with Music) 콘퍼런스’가 개최됐습니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KPIA, 회장 우승현)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휘영)와 한국콘텐츠진흥원(원장 김윤지)의 글로벌 뮤직 마켓 ‘뮤콘(MU:CON) 2026’과 연계해 열린 이번 행사는, 글로벌 K팝 기획사 및 전 세계 음악산업 관계자들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음악산업의 역할과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올해는 ‘AX(AI Transformation) 시대: 음악산업의 새로운 가치사슬’을 주제로 진행됐으며, 하이브 최선 크리에이티브 스태프 오피스 리더와 텐센트 뮤직 도라 진(Dora Jin) 비즈니스 총괄 등 글로벌 인사들이 연사로 참여해 무게감을 더했습니다.2023년부터 4년간 AI가 음악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다뤄온 MWM 콘퍼런스는, 올해 AI 생성 음악의 급증에 따른 창작자 권리 보호와 정책 마련의 시급성을 반영해 논의 비중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특히 콘퍼런스의 피날레로 ‘AI 워킹그룹: 법적 쟁점과 플랫폼 유통·수익구조 대응 전략’ 토론회를 마련함으로써 AI로 인한 전 세계적인 시장 변화 속에서 콘텐츠 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김현숙 디지털지식재산연구소 소장이 모더레이터를 맡은 이 토론회에는, 음원·음반 유통과 VIBE 운영대행, 인디 유통 플랫폼 ‘믹스테이프’를 총괄하는 YG PLUS(YGP) 김인호 음악사업 부문 리더, 가수 이승윤·이무진·한로로 등이 소속된 마운드미디어의 유통 레이블 ‘포크라노스’ 운영 및 IP 실무를 담당하는 마운드미디어 이유겸 유통IP부문 대표, 그리고 KPIA 김종우 정책국장과 함께 필자도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이 자리에서 다뤘던 핵심 논의, 즉 이미 음악산업에 깊숙이 들어온 AI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제작과 유통, 콘텐츠 활용, 정책적 시각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AI 워킹그룹: 법적 쟁점부터 유통·수익구조 대응 전략까지 첫 번째 질문은 디저(Deezer)의 발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업로드되는 음악 중 절반이 넘는 약 9만 곡이 완벽한 AI 생성 곡이지만 전체 스트리밍 비중은 1~3%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AI 음원 스트림의 85%는 사기성(어뷰징)으로 탐지돼 수익화가 차단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김인호 YGP 부문 리더는 우선 “순수 레이블과 아티스트, 그리고 진짜 창작자를 위해 전 세계에 음반을 유통하고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YGP 유통사업의 본질이자 철학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자체 솔루션을 도입해 YGP의 ‘믹스테이프’ 플랫폼에 인입된 음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AI 음악, 어뷰징 목적의 음원으로 확인됐고, 이에 따라 단순 생성된 이른바 ‘딸깍 음악’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고도화된 정책을 적용하여 옵트인 방식으로 반려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부수적으로 AI를 활용한 음악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나 레이블에 실제 레코딩 비용 영수증 또는 시퀀싱 프로그램의 영상, 라이브 영상 등의 입증 자료를 요청하고 있으며, 이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유통을 승인하고 있지만 실제 입증 자료를 제출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리더는 AI 음악의 청취 비중이 높아질수록 기존 창작자와 아티스트의 수익이 감소할 수 있는 만큼, AI 음악의 지분율을 반영한 비례 정산과 인별 정산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협회가 마련하는 논의의 장을 통해 새로운 수익 배분 원칙에 대한 이해관계자들 및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피력했습니다. 두 번째 패널로 나선 마운드미디어 이유겸 유통 IP 부문 대표는 먼저 레이블이나 기획사에서 활용하는 AI와 생성형 음원을 만들어내는 AI 활용은 다른 영역이라고 전제했습니다. 이 대표는 소속 가수 이승윤, 이무진, 한로로 등을 언급하며, 실제 연주와 직접 가사를 써야 하는 음악적 특성상 AI가 주도하는 음악 제작 방식은 마운드미디어의 제작방식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편곡 과정에서 방향성을 논의하는 커뮤니케이션이나 영상 제작 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특수 효과 등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AI를 활용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한편 유통사로서 이 대표는 생성형 음원을 만들어 유통하려는 제작자를 ‘생성자’라 칭하며, 음악 제작 능력은 부족하지만 수익을 기대하고 일종의 ‘치트키’를 쓰는 공격적 시도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명확한 권리관계에 대한 무결성과 정산의 정확성이 필요하며, 리스크를 줄이는 방어적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이 대표는 어디까지를 AI를 활용한 창작으로 보고, 어디서부터를 생성형 음원으로 규정할지 경계가 모호하며, ‘고생해서 한 창작’과 ‘치트키로 생성한 행위’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어떤 프롬프트를 어떻게 조합했는지 역시 ‘노력’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파격적인 의견과 함께, 향후 프롬프트 자체에 대한 권리와 저작권 인정 여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김종우 국장은 AI가 새로운 창작 도구로서 지닌 긍정적 측면과 함께, 저작권자와 인접권자의 권리 침해가 불가피한 구조라는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는 AI 학습 단계부터 다양한 분야의 저작인접권과 데이터셋에 대한 보상 및 권리 보호가 필요하며, 아티스트의 초상이나 음성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는 부분에 대한 ‘퍼블리시티권’ 보호 강화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습니다.이와 관련해 이유겸 대표는 토론회가 끝난 이후, 생성자가 AI로 음원을 제작할 때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나 ‘어떤 가수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AI 보컬을 생성했는지’를 명확히 고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별도로 전해왔습니다. ◇ 불확실성의 시대, 토론과 집단지성으로 찾는 콘텐츠 산업의 길 필자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AI 음악 도입을 희망하면서도 예측하기 힘든 법적 위험 때문에 누구도 선뜻 첫 번째 ‘독박’을 쓰지 않으려는 제작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AI 음악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에 궁여지책이지만 제작진이 직접 ‘딸깍’ 행위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책임 소재 리스크를 피하고, 계약서 내 면책 및 보증 조항을 강화할 것을 조언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혼란스러운 현장 속에서 콘텐츠 산업의 속도에 비해 제도 정비의 시계가 너무 더디게 흘러간다면, 결국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피력하였습니다.마지막으로 모더레이터를 맡은 디지털지식재산연구소 김현숙 소장은 현재 AI로 제작된 생성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는 국가는 없으며, 전 세계가 동일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법률적인 답은 없는 현실을 상기시켰습니다. 이어 AI 생성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권리자인 척하다가 추후 분쟁이나 소송이 발생할 경우 법적 증명이 요구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그때 가서 ‘AI로 만들었다’고 강변하면 처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단순한 민망함을 넘어 윤리적 문제 및 업계 퇴출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10년 전, 인류와 AI의 첫 대결이었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당시, 2연패를 당한 통한의 밤에도 이세돌 9단은 낙담하기보다 동료 기사들과 복기하며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그 결과 4국에서 인간이 AI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는 역사를 썼습니다. 이번 2026 MWM 콘퍼런스는 전 세계가 유례없는 고민에 빠진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 역시,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인류의 집단지성을 통해 또 한번 이 거대한 파고를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그려본 시간이었습니다.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ㅈㅔ고 2026.09.07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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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용 향정은 왜 쉽게 ‘마약’이 되고 유통되는가 [노종언의 엔터법정]

최근 인터넷방송인 과즙세연과 연인인BJ 케이가 향정신성의약품인 수면제를 불법 복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과즙세연은 “오빠의 약을 먹었고 이후 응급실을 찾는 과정에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고 해명했다. 케이에게는 지인을 통해 수면제를 대신 처방받아 복용한 혐의도 제기돼 있다. 아직 수사 중인 만큼 구체적인 경위와 형사책임을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현재 확인된 것은 타인에게 처방된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한 뒤 응급실에 이송됐다는 사실이다.“마약을 한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의 수면제를 먹었을 뿐”이라는 해명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향정신성의약품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졸피뎀과 같은 수면제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 한 알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일반적인 약이 아니다. 의사의 진찰과 처방을 받은 환자가 자신의 치료 목적으로 복용할 때에만 허용되는 마약류다.대법원도 자신에게 처방된 졸피뎀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거나 그 사람의 복용을 위해 제공하는 행위는 허용된 의료 목적의 사용이 아니라 마약류관리법상 처벌 대상이라고 분명히 했다. 돈을 받고 판매해야만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연인에게 건네거나 친구에게 몇 알 나눠주는 행위도‘제공’이나 ‘수수’가 될 수 있고, 받은 사람 역시 불법 사용의 책임을 질 수 있다.이러한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청소년 사이에서는 디에타민, 이른바 ‘나비약’을 친구끼리 나눠 먹거나 SNS에서 사고파는 일이 사회문제가 됐다. 디에타민은 나비 모양의 알약으로 알려진 펜터민 성분의 식욕억제제다. 병원에서 다이어트약으로 처방되지만 엄연한 향정신성의약품이다.2022년에는 나비약을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구매한 59명이 적발됐는데, 구매자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었고 15세 중학생도 포함돼 있었다. 2023년에는 SNS를 통해 나비약을 거래한 102명이 적발됐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10대였다. 처방받고 남은 약을 친구에게 건네거나 한 알에 수천 원씩 되파는 과정에서 평범한 청소년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약류 사범이 된 것이다.문제의 핵심은 의료용 향정이 불법 마약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가깝다는 데 있다. 병원에서 처방받았고 약국에서 구입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효과가 좋다며 친구에게 권하고, 남은 약을 버리기 아까워 다른 사람에게 준다. 그러나 처방받은 환자에게는 치료제인 약도 다른 사람의 손으로 건너가는 순간 불법 마약류가 될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다이어트약을 나눠 먹거나 남은 약을 인터넷에 판매하다가 수사를 받는 사례가 지적돼 왔다. 우리나라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처방과 조제 내역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전산망은 약이 어느 환자에게 나갔는지는 확인할 수 있어도, 그 약이 가정에서 남아 있는지, 연인이나 친구에게 건너갔는지까지는 알기 어렵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제대로 사용하면 필요한 치료제다. 따라서 무조건 처방을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반복·중복 처방에 대한 확인을 강화하고, 남은 수면제와 식욕억제제를 약국에서 쉽게 반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필로폰만 마약이 아니라 디에타민과 졸피뎀 역시 마약류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처벌만 엄격한 사회가 아니라, 약이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기 전에 위험을 알려주고 막아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6.09.06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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