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입을 닫는다. 영화로 세상을 논하던 평론가들도, 영화로 수십억 벌어들인 유튜버들도, 자기 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발빠르게 성명서 발표하던 각 영화단체들도, 다들 입을 닫는다.
영화로, 영화로 인해, 영화를 위해 밥 벌어먹던 사람들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외쳤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난 모양이다.
다들 무서워서 피하고 있지는 않을 테다. 무서워서 피하고 있었다면, 영화라는 예술을 업으로 삼지는 못했을 테다. 예술이란 본디 세상과 싸우는 일일 테다. 그렇게 오해를 받아도, 욕을 먹어도, 자신이 옳다고, 좋다고, 재밌다고 믿는 것들을 어떻게든 만들려 애써왔던 사람들일 테다.
그러니 지금 다들 입을 닫고 있는 건, 그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욕을 먹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소중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 연대 하면서 싸웠던 시절은 이미 끝났기 때문일 테다. 남이 그렇게 만들었다기 보단, 시절이 그렇게 만들었다기 보단, 늙었다기 보단, 그저 그리 됐을 뿐일 테다.
그러면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추앙한다. 안전한 곳에서, 패배한 노동 운동의 흔적을 쫓아가며 짐짓 애정하는 양, 추모하는 양, 응원하는 양, 그런 양들을 쌓아가며 추앙한다. ‘가능한 사랑’이 한국영화판에서 못 만들어지고, 넷플릭스 돈으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게 된 시절이다. 이런 영화가 돈이 되지 않는 시절이고, 이런 영화를 찾지 않는 시절이고, 그럼에도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가능한 사랑’을 추앙하며 세상의 무상함을 탓하는 시절이고, 그런 모두가 ‘암살자(들)’ 사태에는 입을 닫고 있는 시절이다.
기자는 허진호 감독에게 ‘암살자(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단 이야기를 10년 전, 그의 단골집인 효자동 막걸리 가게에서 들었다. 10년 동안 한국영화판에 많은 부침이 있었고, 이 시나리오는 돈이 안될 듯 하다는 이유로 상업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 마침내 만들어진 영화는 그 때 들었던 아이템보다 기자인 이민호 역할은 커졌고, 경찰인 유해진 역할은 깊어졌다. 감독이 세월을 담았을 수도 있고, 상업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허나 만듦새에 대한 평을 떠나서, 과하다, 부족하다를 떠나서,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은 전혀 다른 곳으로 번지고 있다. 전혀 다른 곳으로 번지고 있는 논란은 표현의 자유를 정조준하고 있다.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침범하고 있다.
예술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법이다. 표현의 자유를 잃으면 예술을 잃는 법이다. 예술이 아닌 한국영화를 볼 이유는 없을 터다. 한국에서 영화 하는 사람들이, 한국영화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좌우를 떠나서, 언제 돈이 없었지, 가오가 없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