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대표팀의 우승 직후 나온 말이다. 대표팀 주장이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군 면제라는 보상 하나만 보고 경기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군 복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전역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대회 4연패를 이룬 자리, 함께 우승을 기뻐하던 국민 앞에서 일부 선수들의 언행은 그들을 응원한 국민에게 도리어 배신감을 줬다.
몇 주 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국가대표들이 경기에 나섰다. 24일 막을 내린 장애인 아시안게임(APG). 금메달 29를 비롯해 총 100개의 메달(은 38개, 동 33개) 등 최고의 성적을 거둔 한국 선수단 내에는 군 복무 중 사고나 질환으로 장애를 입은 선수들이 있었다. 누군가 가지 않게 됐다고 환호했던 군대는, 이들에게 삶의 방향이 바뀐 곳이었다.
양궁 곽건휘는 2010년 군 복무 중 낙상사고를 당했다. 약 4년 동안 재활병원에서 생활했고, 퇴원한 뒤 활을 잡았다. 사고로부터 16년이 지난 이번 대회 마지막 날,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결승전에서 침착하게 화살을 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랜 재활 훈련 끝에 시작한 양궁으로 아시아 정상에 섰다.
서훈태. 사진=공동취재단24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양궁 남자 리커브 결승전에서 우승한 곽건휘.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사격 서훈태는 2008년 특전사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낙상사고로 척수를 다쳤다. 이후 탁구와 휠체어럭비를 거쳐 사격 선수가 된 그는, 2024 파리 패럴림픽 동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 혼성 10m 공기소총 입사 종목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양궁 박홍조는 2005년 군 훈련 중 차량 사고로 장애를 입었다. 군병원에서 만난 형의 소개로 양궁을 접했고,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휠체어농구 이윤주는 말년 휴가를 한 달 앞둔 병장이었을 때 사고를 당했다. 파리 패럴림픽과 이번 대회에서 연달아 금빛 총알을 쏜 사격 조정두는 군 복무 중이던 2007년 뇌척수막염을 앓았고, 그 후유증으로 장애를 입었다. 사고와 질환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복무 중 이전과 다른 삶을 마주했다는 점은 같았다. 각자의 종목에서 훈련하고 경쟁하며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다시 준비해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AG에서 금메달을 딴 비장애인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는 걸 문제삼고 싶진 않다. '경력 단절'을 피하게 된 선수들의 해방감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많은 팬들이 오히려 그들의 병역 해결을 바랐다.
박승수.
그러나 금메달을 딴 소감으로 군 면제를 자랑하는 건 너무나 부적절했다. 그들에게서 국가대표의 자긍심을 느끼기는커녕 태극마크를 개인 이익 실현의 수단으로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국가대표다운 품격을 기대했다.
그 말을 듣는 사람 가운데는 입대를 앞둔 청년도, 지금 군복을 입은 청년도 있다. 자신의 학업과 경력을 멈추고 복무한 사람도 있다. 그 과정에서 몸을 다쳐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 달 후 또다른 아시안게임에선 군대에서 상처를 입은 선수들이 같은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 무대를 누볐다. 불의의 부상을 입고 군복을 벗은 뒤에도 국가대표를 목표로 뛴 선수들이 꽤 많았다.
같은 개최지에서 같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한쪽에서는 군대에 가지 않게 됐다는 말이 남았다. 다른 쪽에서는 군 복무 중 장애를 입은 사람들이 국가대표가 돼 메달을 목에 걸었다. APG에서 거둔 이들의 성과에는 AG 선수들처럼 국가대표 선발과 국제대회 경쟁을 통과한 시간도 있었지만, 좌절과 상처를 이겨낸 재활과 훈련이라는 시간도 포함돼있다. 메달 무게를 비교하려는 건 아니다. 그 메달을 건 선수의 품격은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