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기자회견에서 육상 장민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과 며칠 전 막을 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남자 1600m 계주 트랙을 질주했던 장민호(29·안양시청)이 숨 고를 틈도 없이 다시 한 번 트랙에 섰다. 오는 18일 개막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장애인아시안게임(APG)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장민호는 최근 시각장애(스포츠등급 T13) 판정을 받았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이 최근 심해졌다. 20대 초반부터 인지하고 있던 유전 질환이지만, 최근 고강도 훈련을 소화하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현재 그의 시력은 30% 남짓만 남아 있다.
어렵게 다시 잡은 기회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고교 시절 5000m와 10000m를 달리던 중장거리 유망주였던 그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운동을 접고 전문대를 졸업한 뒤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스물여섯 무렵 여자친구의 진심 어린 응원에 힘입어 2023년 정식 실업팀 계약을 맺으며 트랙에 복귀했다. 시력 저하라는 악재 속에서도 그는 AG 국가대표에 이어 첫 APG 국가대표로 동시 발탁되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국내 스포츠 역사상 같은 해 AG와 APG에 모두 출전하는 선수는 그가 처음이다.
400m 전력 질주 훈련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안압이 치솟는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훈련 뒤에는 일상생활조차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장민호는 의연했다. 6일 이천선수촌에서 만난 그는 “훈련이 끝나면 안압 때문에 앞이 흐려져 정말 괴롭지만, 그 고된 과정을 버텨내고 나면 경기 자체가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며 “시력에 부담이 가더라도 내게 다시 주어진 육상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털어놓았다.
28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미즈호 공원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4X400m 계주 예선. 대한민국 장민호가 출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APG에서 장민호를 향한 메달 기대는 높다. 지난 5월 스위스 노트빌 그랑프리에서 남자 100m(10초89)와 400m(51초94·이상 스포츠등급 T12)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100m·400m 2관왕과 함께 세계 신기록(T13 기준, 100m는 10초37, 400m는 46초44)을 노린다.
“출발선에 서면 장애인 경기인지 비장애인 경기인지 따지지 않는다. 오직 내가 세울 수 있는 최고의 기록만을 바라보고 달릴 뿐이다”라고 말한 그는 "나와 같은 병을 앓는 분들과 장애를 딛고 다시 도전하려는 분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라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실제로 최근 그에게는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과 장애를 딛고 운동에 도전하려는 이들의 응원 메시지가 잇따르고 있다. 그의 발걸음이 개인의 기록을 넘어 누군가의 용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6일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육상 장민호가 훈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패럴림픽 금메달과 세계 신기록을 최종 종착지로 삼은 장민호.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트랙의 결승선만큼은 그 누구보다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는 그의 레이스는 이제 막 진짜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