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제공 사람에게 만남과 이별, 재회와 환승이 있듯, 노래 또한 새로운 사람과 콘텐츠를 만나 또 다른 생명력을 얻기도 합니다.
어제 공개된 JTBC ‘연애전쟁’의 두번째 OST ‘연애’는 1999년 5월 세상에 나온 가수 김현철의 명곡을 폴 블랑코의 목소리로 재해석한 곡으로, 세기말의 노래가 무려 27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1997년생 가수 폴 블랑코의 깊은 음색을 통해 2026년의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OST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해도, 사랑의 정서만큼은 시대를 초월해 맞닿아 있습니다.
올해 초 공개된 티빙 ‘환승연애4’ 역시 이와 닮은 꼴입니다. 가수 그리즐리가 2022년 발표한 긴 제목의 곡 ‘우리 다투게 돼도 이것만 기억해 줄래 눈을 맞추고 서로가 서로의 손 잡아주며 낮은 목소리와 예쁜 말투로 상처 주지 않게 노력을 하고 ●’가 가수 민수의 음색으로 리메이크되어 OST로 발매되었습니다. ‘나만 알고 싶은 숨은 명곡’으로 통하던 남성 가수의 원곡이, 여성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프로그램 특유의 애틋한 감성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이렇듯 리메이크는 원곡과 완전히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곡의 기억과 감성을 품은 채 새로운 가창자와 편곡을 거치고,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 다른 세대의 리스너를 만납니다. 그런 점에서 리메이크는 음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환승연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환승연애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관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리메이크는 원작자의 권리를 온전히 인정하고 허락을 구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관계가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작사·작곡가와 원곡의 정체성부터 편곡과 개작의 범위, 음원 제작과 유통, 그리고 프로그램 본편과 홍보 콘텐츠에서의 이용 범위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저작권의 영역을 모두 존중해야만 비로소 온전한 ‘환승’이 성립됩니다.
◇ 말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하는 음악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비롯해, 최근 방영되는 여러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이하 연프)의 음악 저작권 승인 및 리메이크 OST 실무 뒤편에는 필자가 운영하는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업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업에서 음악이 실제 장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를 확인하고 모니터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 프로그램을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리얼리티 연프를 보면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힘들어하는 출연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표정과 행동, 그리고 침묵과 망설임으로 감정을 드러내다가, 급기야 ‘나는 SOLO’의 레전드 ‘벙벙좌’로 불리는 24기 영식처럼 눈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 순간, 음악은 출연자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됩니다. 리얼리티 연프에서 음악 선택은 단순한 선곡이 아니라 일종의 ‘감정 편집’입니다. 한 곡의 음악이 평범한 눈맞춤을 설레는 고백으로 만들기도 하고, 짧은 침묵을 깊은 이별의 전조로 바꾸어 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출연자의 세대와 노래가 발표된 시대가 다르더라도, 사랑과 이별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지난해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리얼리티 연프 ‘환승연애, 또 다른 시작’에서는 1999년생 남자 출연자가 자신은 표현을 잘 못한다며 1998년생 여자 출연자에게 가수 변진섭이 1989년에 발표한 명곡 ‘숙녀에게’를 들려주었습니다. 직접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에 기대어 표현한 이 장면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넷플릭스 리얼리티 연프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에서는 1998년생 출연자가 2006년에 발매된 가수 이루의 ‘흰눈’을 부르는 장면이 출연자의 매력적인 음색과 잘 어우러지며 호평을 받았고, 처음 사랑을 경험하는 소년·소녀들의 감정을 다룬 첫사랑 리얼리티 연프 ‘소년 소녀 연애하다’(2023)에서도 영화 ‘클래식’ OST로 잘 알려진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사랑하면 할수록’을 비롯해,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황치열의 ‘매일 듣는 노래’, 데이식스의 ‘예뻤어’ 등 세대를 아우르는 익숙한 곡들이 연이어 등장함으로써, 시청자 각자가 간직한 첫사랑의 향수를 극대화했습니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 같은 노래와 다른 관계의 깊이: 음악이라는 또 하나의 출연자
제작 현장에서는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이 흔히 “이 노래 쓰고 싶다”라는 단순한 한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연애에 비유하자면 한 번의 가벼운 만남과 오랜 장기 연애가 다른 것처럼, 같은 곡을 쓰더라도 한 장면에 배경음으로 삽입하는 것과 프로그램의 타이틀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여러 차례 히트작을 내놓으며 ‘연프 장인’으로 불리는 이진주 PD의 넷플릭스 진출작 ‘연애실험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 음악으로는 2022년 그룹 빅톤(VICTON)이 발표한 ‘스투피드 어클락’이 사용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오프닝이나 타이틀 음악은 예고편과 본편, 클립, 숏폼, 홍보 영상 등에 반복해서 노출됩니다. 시청자가 단 몇 초만 들어도 해당 콘텐츠를 떠올리게 만드는 특성 상, 타이틀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을 넘어 프로그램의 얼굴이자 정체성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리얼리티 연프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출연자가 미처 전하지 못한 고백을 대신하고, 감정을 해석하며, 시청자의 지난 기억까지 소환하는 또 하나의 ‘출연자’입니다.
따라서 음악의 사용 승인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콘텐츠가 음악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주선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 역할과 작품의 맥락을 설명하듯, 음악 저작권 승인 역시 이미 정해진 곡에 도장을 받는 기계적인 업무가 아닌, 한 곡의 음악을 작품에 ‘캐스팅’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저작권은 창작자가 자신의 음악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게 지킬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노래의 사용을 막고 금지시키거나 단속하는 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이는 음악의 새로운 만남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콘텐츠와 음악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뒤 건강한 동행을 시작하게 돕는 신뢰의 약속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