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은 많았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물었다. "어차피 얘기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잃어 온 수익이 매년 수십 억원이다.
중계권 협상 대행사에 모든 걸 맡겨 놓은 사이 프로야구단들의 적자 폭은 더 커졌다. 구단이 받아야 할 중계권료가 절대적 원인은 아니다. 그러나 구단의 마케팅 수익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데 있어 이제 대행사에 맡겨 두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몸값 인플레이션 시대까지 도래해 더 그렇다.
2016년 말 프리에이전트(FA) 최형우가 삼성에서 KIA로 이적하면서 상징적인 몸값 '100억원' 선을 공식적으로 넘어섰다. 얼마 뒤 이대호가 일본과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고향팀 롯데와 4년 150억원에 계약했다. 올해는 김현수가 메이저리그를 떠나 LG와 4년 115억원에 사인했다. 롯데 손아섭(4년 98억원) NC 박석민(4년 96억원) LG 차우찬(4년 95억원)처럼 100억원에 근접한 몸값을 받는 선수도 많아졌다. 안 그래도 수백 억원에 달하는 구단 운영비에서 인건비 투입 비중이 크게 늘었다.
물론 구단들의 영업이익도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최근 2~3년 사이 대구와 광주, 고척에 새 야구장이 생기면서 KBO 리그 관중이 2년 연속 800만 명을 돌파했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중계권 수입도 구단별로 50억원 중반대를 넘어섰다.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 프로스포츠로서 위상도 굳건하다. 하지만 여전히 몸값 상승 그래프의 가파른 곡선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관중 수익만으로 적자를 메워 가려면 최소한 1000만 관중 시대는 열려야 가능하다"며 "인프라 차이를 고려해 계산하더라도, 중계권료와 마케팅 수익은 아직 미국이나 일본 구단에 한참 못 미친다"고 했다.
여전히 야구단의 '흑자 경영'은 멀고도 멀다. 한국보다 저변이 넓고 야구 입지가 탄탄한 일본에도 흑자 구단은 많지 않다. 그래도 매년 수백 억원씩 적자를 내는 프로야구단들이 모기업의 의존도를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해결책이 중계권료를 '제대로' 받는 것이다.
그동안 각 구단은 철저히 방관자에 머물렀다. 그 어떤 팀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A구단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계권 문제에 대해 대부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최근 수익 창출에 구단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B구단 관계자도 "(중계권 에이전트사의 폭리는) 이제 관행처럼 굳어져 누구도 문제로 삼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개선하고 싶어도 여러 가지 계약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누군가 앞장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계권 계약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직원도 많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중계권과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매우 우려스러웠던 부분이다. 어떤 구단은 마케팅 파트에서 중계권 관련 파악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팀은 홍보 파트에서 주관하기도 했다. 어느 부서가 하든 일관된 대응책만 있으면 상관없다. 취재 도중 모구단은 아예 중계권과 관련된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실무자가 없었다. 경악스러운 지경이다.
애초에 상세한 계약 상황을 알기가 어렵다는 게 구단 대부분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C구단 관계자는 "구단은 '을'의 입장이다. KBO와 에이클라 간 계약을 구단에 아예 공개하지 않아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사회에 참석하는 각 구단 사장이나 실행위원회를 구성하는 각 구단 단장들도 매너리즘에 젖었다. D구단 관계자는 "실무자가 아무리 문제를 느껴도 위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중계권료의 정당한 증가와 배분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건 어쩌면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도 하다. 초창기 KBOP의 시작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야구인은 "2002년에 시작된 스포츠 통합 마케팅의 주체, KBOP가 16년 넘게 제 모양새를 만들어 내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단들이 원치 않았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KBOP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2000년대 초반에 KBO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실무진을 배제한 채 2~3년에 한 차례씩 바뀌는 각 구단의 사장단들만 챙기기에 급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원인은 구단들의 이기주의 탓으로 돌렸다. 이 관계자는 이어 "LG와 두산, 롯데, KIA가 왜 나머지 구단과 똑같은 파이를 나누려 하겠는가. 매년 순증하는 중계권료가 뉴미디어 발달로 더욱 커질 것 같다고 여겨지니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통합 마케팅을 구현하는 데 중계권과 관련한 주도적인 자세는 오히려 다행"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운찬 KBO 신임 총재는 임기 3년 내 리그의 산업화를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밖에서 본 KBO 리그의 문제점에 대해선 "각 구단들끼리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단합이 잘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런 부분은 고쳐 나가야 할 점"이라고 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한 구단이 불만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개선 의지를 보여도, 다른 한 구단이 한발 물러서면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
10개 구단은 프로야구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다. 구단들은 정당한 권리를 잃어버렸고, 너무 빨리 체념했다. 그 결과로 매년 수십 억원의 귀중한 수입을 허공에 날렸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