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는 지난해 수차례 홍역을 치렀다. 최근 몇 년간 선수들의 음주운전 사고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논란이 계속 불거졌다. 백번 양보해서 이건 개별 구단의 문제로 치부한다고 치자.
전직 심판위원의 금품 수수 논란, 승부조작과 도박, 입찰 비리 등 안팎으로 터진 사건 사고는 구단을 대표하는 리그의 연합, 한국야구위원회의 업무 태만과 관리 부재로 봐야 한다. 특히 내부에서 곪을 대로 곪은 문제들이 속속 터졌다. 지난해 말 임기 만료된 양해영 전 사무총장은 불명예 퇴진했다. 그는 2017년 10월 구본능 전 총재와 함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립대 및 국립대병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불려 나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셀프 총재 특보' 논란을 낳았다. 전임자의 예를 들어 신임 총재를 보좌하겠다고 슬그머니 나선 것이다. 한 관계자는 "구본능 전 총재의 결재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정운찬 총재는 이에 대해 구본능 전 총재로부터 어떠한 부탁 또는 통보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찰 비리 의혹에도 휩싸였다. KBO가 2016년 4월과 10월에 실시한 중국 시장 진출과 관련한 2건의 입찰에서 모두 'KBO 담당 직원의 가족이 운영했던 업체가 낙찰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두 건의 낙찰가를 합치면 8억원이 넘는다. 당시 KBO는 "해당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한 게 없다'고 주장하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2017년 6월 인수인계를 하게 한 뒤 업무에서 배제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심판 금품 수수 논란은 검찰에 고발했고, 입찰 비리와 관련해선 KBO로부터 자료를 받아 회계 감사를 진행한 바 있다.
지난해 중반에는 심판 금품 수수 논란이 야구판을 휩쓸고 지나갔다. 당시 KBO는 프로야구단 사장과 심판 간의 금전 거래 사실을 사전에 확인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아 많은 비난에 직면했다.
KBO 내부에서 많은 의혹과 논란이 발생하자 '쇄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국무총리 출신으로는 최초로 KBO 총재에 오른 정운찬 전 총리와 새롭게 손발을 맞출 사무총장으로 어떤 인사가 임명될지 야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구인부터 시작해 전임 구단 대표이사와 전임 단장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일련의 의혹과 논란에 문제의식을 느낀 정운찬 총재는 지난 3일 취임식에서 '클린 베이스볼'을 중요한 기치로 내세웠다. 정 신임 총재가 선언한 '클린 베이스볼'은 승부에서뿐 아니라 KBO 내부의 인적 쇄신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KBO 리그를 관장하는 조직이 먼저 '깨끗한 행정'을 통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KBO 사무총장은 총재가 제청하면 이사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이다.
사무총장은 말 그대로 총재를 '보좌'하는 자리다.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 총재 취임 뒤 새롭게 맡게 될 사무총장 자리에 초미의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예전과 다르게 늘어난 관중에, 늘어난 구단(8개 구단→10개 구단)으로 리그 살림살이가 그만큼 커졌고, 사무총장이 임명해야 하거나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 매우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론 양해영 전 사무총장이 그 정도로 조직을 망가뜨렸다는 방증이 아닐까. 새 인물을 통해 묵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야구계의 바람이 아닐까.
사무총장은 10개 구단 사장단 모임인 KBO 이사회의 일원이자 10개 구단 단장 모임인 KBO 실행위원회의 위원장이다. KBO 마케팅 자회사인 KBOP 대표이사직도 맡는다. 최종 결정권은 모두 총재에게 있지만, 행정 실무는 사무총장이 총괄한다. 내부 승진 케이스를 통해 리그를 관장했던 양해영 전 총장 체제는 사실상 실패라는 결론이 났다. 또 다른 내부 승진으로 사무총장의 후임을 결정하려고 했으면 아마도 1월 총재 취임과 동시에 발표가 났을 것이라는 게 야구인들의 전언이다.
감독 출신인 모 야구인은 "이참에 KBOP의 완전 독립 체제를 꾀하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면서 "야구계 현안을 잘 알아, 행정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야구단 사장 또는 단장 출신을 사무총장으로 선임하고, KBOP는 독립하는 것이다"며 사무총장-KBOP 이사 이원화 체제를 제언했다. 즉, KBOP 수장은 KBO 사람이 아니라 외부 스카우트를 통해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자는 것이다. 이는 정 총재의 취임식 때 발언과도 궤를 같이한다.
정 총재는 "한국은 여전히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아 안타깝다. 내가 잘하면 연봉도 받고, 인센티브도 받고 싶다고 한 것은 한국 프로야구 산업화에 대한 기초적인 행동이 아닐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물며 10개 구단 마케팅을 통합·총괄하는 KBOP 수장을 마케팅 업계 전문가를 인센티브제를 통해 '모셔 오는' 방안도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야구계 자리 싸움으로 비치고 있는 모양새를 불식시키는 방안이기도 하다.
새 총재와 함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나가야 할 사무총장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부와 내부라는 '프레임'에 얽매이기보다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판단하고 추진할 수 있는 새 적임자를 찾아내야 한다. 인적 쇄신과 새로운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