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선발 투수 원태인이 불펜의 이승민에게 하던 말이었다. 필승조 이승민에게 남은 이닝을 잘 지켜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에는 순서가 바뀌었다. 원태인이 필승조와 마무리 역할을 맡으면서 셋업맨인 이승민의 뒤를 잇는 상황이 생겼다. 이번에는 이승민이 “네가 막아줄 거라 생각하고 갔다 올게”라고 말을 돌려줬다. 그러자 원태인은 “그래도 역시 네가 해줘야 된다”며 다시 공을 넘겼다. 삼성 라이온즈의 가을 뒷문을 지키는 동갑내기 두 투수의 유쾌한 대화다.
삼성은 지난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5차전에서 6-1로 승리,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KS) 진출을 확정했다. 이날도 이승민이 먼저, 원태인이 나중이었다. 선발 아리엘 후라도가 7이닝을 책임진 뒤 이승민이 8회를 막았고, 원태인이 9회 마운드에 올라 KS 진출을 확정했다.
경기 뒤 만난 이승민은 “(원)태인이와 같이 불펜에서 던질 줄은 몰랐다”며 “서로에게 뒤를 부탁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뒤에 태인이가 있어서) 기분 좋게 올라가고 있다”고 웃었다.
원태인뿐만이 아니다. 이승민은 이번 PO 5경기에 모두 출격했다. 정규시즌에도 팀에서 가장 많은 74경기에 출전해 지칠 법도 했지만, 이승민은 팀 동료들의 격려와 믿음에 힘을 내고 있다.
삼성 이승민. 삼성 제공
이승민의 말에 따르면, 동료들은 그에게 “조금만 더 고생하라”, “네가 해줘야 된다”는 말을 건넨다고. 승부처마다 마운드에 오르는 그를 향한 믿음의 표현이다. 이에 이승민은 “그냥 던질 수 있다는 게 좋다”며 “올라가면 열심히 던지면 되고, 안 올라가면 그날 하루 쉬면 된다”고 말했다. 부담스럽지도, 특별히 의욕이 더 솟는 것도 아니라는 답이었다.
그런 이승민도 선배 한 명의 등장에는 눈치를 봤다. 이승민이 인터뷰를 할 때 그 앞을 조용히 지나간 김재윤이었다. 사연이 있었다. 김재윤이 평소 “형은 인터뷰할 때마다 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네 기사에는 형 이름이 한마디도 없는 것 같더라”고 장난스럽게 서운함을 표현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이승민은 “(김)재윤이 형을 위해 한마디 하겠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어진 말에는 진심이 담겼다. 김재윤은 PO를 앞두고 부상을 당해 이번 시리즈에 나서지 못했다. 이승민은 “재윤이 형이 부상을 당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저보다 형 자신이 더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서 크게 티를 내지는 못했다”며 “그래도 같이 동행하면서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저한테 고생 많다고 격려도 많이 해주신다”고 말했다.
삼성 김재윤. 삼성 제공
김재윤은 마운드 밖에서도 후배의 긴 시즌을 돕고 있었다. 11월까지 이어지는 가을야구, 추워진 날씨 속에서 몸을 준비하는 일부터 선배의 경험이 힘이 됐다. 이승민은 “제가 이렇게까지 길게 던져본 적이 없다. 재윤이 형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펜에서 어떻게 팔을 풀면 더 좋은지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며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재윤이 형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승민의 시선은 이제 KT 위즈와의 KS로 향한다. 이승민은 “힘들어도 막상 마운드에 올라가면 재미있다. 긴박한 상황의 긴장감을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며 “KS도 전 경기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다짐했다.
2년 전에는 상대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봤다. 이번에는 동료들과 마지막까지 웃고 싶다. 그는 “확실히 세리머니는 바라보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좋다는 걸 느꼈다”며 “아직 저희 세리머니는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더 남았기 때문에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