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패러게임(APG)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정영아(47·서울특별시장애인체육회)가 후배들에게 전한 말이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지체장애를 갖게 된 이미규(38·울산장애인체육회)도 탁구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선수가 손을 맞잡고 아시아 정상에 섰다. 이미규의 첫 APG 2관왕이자 정영아의 생애 첫 APG 금메달이었다.
이미규-정영아 조는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스카이홀 도요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APG 탁구 여자복식(스포츠등급 WD10)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의 위짓트라 자이온-와사나 스링암 조를 3-0(11-6, 11-3, 11-9)으로 꺾었다.
극적인 금메달이었다. 앞서 중국 조에 패했던 두 선수는 태국을 3-0으로 이겨야 우승할 수 있었다. 이미규는 전날 장영진(33·성남시청)과 혼합복식(XD7) 금메달을 따낸 뒤 "태국을 3-0으로 이겨야 금메달을 딸 수 있다. 쉽진 않지만 한번 해보겠다"고 다짐한 바 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첫 두 게임을 11-6, 11-3으로 잡았고, 3게임에서 상대의 추격을 받았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두 선수는 3승 1패로 승패 동률을 이룬 태국·중국 조에 게임득실에서 앞서 금메달을 확정했다.
23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탁구 여자 복식(스포츠등급 WD10)에서 우승한 이미규-정영아 조. 도요타(일본)=윤승재 기자·대한장애인체육회
이미규는 2014 인천 여자 단식, 2022 항저우 여자복식 우승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2관왕에 올랐다. 그에게 탁구는 삶의 방향을 바꿔준 운동이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지체장애를 갖게 된 그는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휠체어 선수들이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탁구에서 아시아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정영아도 탁구를 만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2년 친구들과 겨울 산행에 나섰다가 추락 사고로 양쪽 다리를 절단한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2005년 창원시장애인복지관에서 탁구를 접했고, 21년 만에 APG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2014 인천 대회에서 은메달 3개, 이번 대회에서 여자 단식 은메달과 혼합복식 동메달을 따낸 끝에 통산 여섯 번째 APG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정영아는 "금메달을 따서 너무 기쁘다. 파트너(이미규)와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 상대가 중국을 꺾고 올라온 강팀이라 부담도 있었지만 끝까지 집중했다"고 웃었다. 이미규는 "금메달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안 될 것 같아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며 "언니에게 계속 천천히 하자고, 하던 대로 하자고 했다"고 돌아봤다.
23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 탁구 여자 복식(스포츠등급 WD10)에서 우승한 정영아-이미규 조. 도요타(일본)=윤승재 기자·대한장애인체육회
두 선수는 자신들의 경험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도전의 계기가 되길 바랐다. 이미규는 "운동을 하면서 삶의 질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자신감도 생겼다"며 "다른 장애인분들도 운동에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어린 친구들은 더 빨리 접하면 빨리 성장할 수 있으니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아는 "메달을 딴 선수들만 보면 좋아 보이지만 그 뒤에는 도전하고, 열심히 하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있다"며 "탁구도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3~5년 정도는 기본기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때는 사비를 들여 코치님께 배우고 복지관이나 체육관에서 훈련했다. 탁구가 아니어도 좋다. 흥미를 갖고 도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선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미규는 다음 달 세계선수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정영아 역시 다시 훈련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두 선수는 세계선수권에서 서로 파트너를 바꿔 여자 복식 경기에 나선다. 두 선수는 이구동성으로 "복식에서도 단식에서도 결승에서 만나 맞붙고 싶다"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서로 다른 시작점에서 라켓을 잡았던 두 선수는 마침내 금메달을 합작했다. 정영아는 "우리를 보면서 (많은 장애인이) 동기부여를 받았으면 좋겠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하면 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