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제공 “결혼해서 이해되는 폭이 넓어졌어요. 그래서 ‘스캔들’을 선택할 수 있었죠.”
배우 손예진에게 결혼과 출산은 삶뿐 아니라 연기의 폭도 넓힌 경험이었다. 그간 피해 왔던 사극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조선시대 여인인 조씨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도 달라진 삶과 무관하지 않았다.
손예진은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 인터뷰에서 “감히 그 당시 여성의 삶을 제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면서도 “그래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사대부 여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섬기는 것이나, 남편이 임금을 만난다고 했을 때 기뻐하는 감정 등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공개된 ‘스캔들’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조씨부인(손예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이 벌이는 위험한 사랑 내기를 담은 작품이다.
손예진은 뛰어난 글솜씨를 지녔지만 시대의 제약 탓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조씨부인을 연기했다. 조원에게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의 뒤틀린 감정은 위험한 내기로 번져간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손예진은 “조원을 분명히 보고 싶었을 텐데 서로 감정을 숨기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말이 안 되는 부탁을 한다. 소실의 배를 부르게 해달라고 하거나 과부인 희연을 건 내기를 제안한다”고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조씨부인이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잖아요. 갑자기 의도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오거나, 말을 뱉어놓고 ‘왜 이러지?’ 할 때요. 서로 마음을 감추고 시작된 변주들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죠.”
손예진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그 간극을 들여다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이기에 제약받는 상황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그래서 조씨부인이 어떤 결핍 때문에 이 선택을 하는지, 사람을 대할 때 왜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는지 계속 고민했다”고 밝혔다.
“21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조씨부인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조씨부인이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시대가 인간에게 가하는 속박과 제약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씨부인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도 겉으로는 정숙한 사대부의 여인으로 살아가죠. 다중적인 면이 매력이었죠.”
사진=넷플릭스 제공 ‘스캔들’은 손예진에게도 특별한 도전이었다. 정통 사극 출연은 2002년 개봉한 영화 ‘취화선’ 이후 약 24년 만이다. 그는 “사극을 피해온 것이 사실이다. 사극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한복을 입고 머리를 세팅하면 연기를 할 때 불편했다”며 “20여 년 만에 다시 사극에 도전한 건 만족한다. 간접적으로 그 시대를 체험할 수 있었고, 촬영하는 동안만큼은 그 시대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갔던 이야기와 사회상이 있어요. 현대극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연기이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8부작이다 보니 해야 할 이야기도 많고, 보여줘야 하는 이야기도 많았고요.”
그는 “대사가 정말 길었다. 대놓고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라 디테일한 표정이나 눈빛이 필요한 장면이 많았다”며 “감정의 텐션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장면이라 끊어가기보다는 한 번에 가는 게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 번 찍고 나면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서 목뒤가 뻣뻣해지기도 했어요. 촬영하면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죠. 그런데 카메라 각도 때문에 똑같은 연기를 계속 해야 했어요. 진이 정말 빠졌죠.”
공개 이후 이어진 호불호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스캔들’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누구나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씨부인도 마찬가지고 각자의 캐릭터들이 일차원적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극 장르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자극적이고 빠른 호흡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스캔들’은 호흡도 느리고 판소리가 등장하는 것도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어요. 반대로 그런 점이 주는 새로운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죠.”
사진=넷플릭스 제공 공교롭게도 이번 추석 연휴에는 남편 현빈과 안방극장에서 나란히 시청자들과 만나게 됐다. 손예진의 ‘스캔들’과 현빈이 출연한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의 공개 시기가 맞물렸다. 그는 “작품이 언제 공개되는지는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플랫폼에서 정하는 거라 저희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공개 시기를 듣고 신기해했다”며 “공중파처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것도 아니니 ‘흥미롭다’ 정도였다”고 말했다.
“둘 다 안타깝게도 서로 작품을 못 봤어요. 아이와 같이 자고 있는데 그냥 곯아떨어져요. 한 작품을 보려면 하루 꼬박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서 아직 못 봤어요.”
배우 손예진이 아닌 ‘엄마 손예진’의 일상도 쉴 틈이 없다.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다”며 “엄마는 육아를 하는 시간 외에도 아이를 생각해서 뇌를 풀가동한다. 아이를 케어하면서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은데 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힘들어도 아이가 주는 행복은 비교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면서 살고 있어요. 아프지 않고 가족이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렇지만 쉽지는 않아요.(웃음)”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들 자랑을 늘어놓은 이야기를 언급하자 손예진은 “제가 왜 그랬을까”라고 대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예능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활자화되니까 또 다른 느낌이었다. 글로 보니까 ‘너무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훗날 아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배우를 꿈꾼다면 어떨지 묻자 “저는 좋다. 주변에도 배우의 자녀들은 이쪽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며 “아빠가 어떤 일을 하면 아이는 그것을 보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재능이 없다고 해도 제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라고 할 것 같아요. 그러다 자기 길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돌아오라고 하겠죠. 지금 표현력은 많은 것 같은데 크리스마스 콘서트 같은 걸 하면 혼자 얼어 있어요. 무대 울렁증이 있는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느덧 배우로서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걸어왔지만 손예진은 여전히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스캔들’도 의도하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껴서 도전하게 됐다. 그다음 작품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 작품을 계속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고 더 경험할수록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던 것들, 보여드리지 않았던 얼굴을 보여주는 재미가 배우에게도 있고, 보시는 분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어떤 건 하고, 어떤 건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스스로 한정 짓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