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중력을 거스르며 온갖 위험을 이겨낸 톰 크루즈가 이번엔 난해하고 장황한 서사 속에서 살아남았다. 화려한 액션을 걷어내고 오롯이 연기만으로 존재를 증명해 내며 ‘디거’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히어로는 히어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3대째 석유 재벌로 살아온 디거 록웰(톰 크루즈). 그에게 세상은 거대한 이윤 창출의 도구다. 최소한의 손실과 최대한의 이익만 좇던 디거는 니라브 가네쉬 박사(리즈 아메드)로부터 그린란드 극지방에 있는 자신의 시추 시설에서 미세한 균열이 감지됐다는 보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이를 사소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묵살하고, 방치된 균열은 거대한 재난으로 번져간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디거는 자신이 초래한 멸망의 위기 앞에서 직접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초유의 기로에 선다.
‘디거’는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석유 재벌을 앞세워 자본주의의 말로를 겨누는 블랙코미디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그의 삶을 통해 현실의 기후 위기와 이상기온이라는 당대적 화두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동시에 극중극을 품은 액자식 구성을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란하며 한층 기묘한 방향으로 서사를 확장한다.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타픽션적 형식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관객에게 낯선 충격을 안긴다.
‘디거’ 스틸 /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경지에 오른 톰 크루즈의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오랜만에 비(非) 프랜차이즈, 비 액션 영화에 출연한 그는 거침없는 열연으로 통제 불능의 억만장자를 체화한다. 톰 크루즈는 수십 년간 이어온 에단 헌트(‘탑건’), 매버릭(‘미션 임파서블’)이라는 히어로의 자리를 내려놓고, 우스꽝스러운 외양으로 무대 위를 배회한다. 여기에 묵직한 존재감을 더하는 존 굿맨(컴슨 대통령 역)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와 기묘하게 설계된 무대, 공간의 미장센 등이 작품의 기묘한 분위기를 한층 배가한다.
물론 한계도 명확하다. 영화는 환경 재앙과 자본주의 풍자를 넘어 인간의 탐욕과 권력 구조, 예술과 연극에 대한 성찰까지 끊임없이 쏟아낸다. 거대하고 야심 찬 아이디어들은 각각의 파편으로서는 독창성을 뿜어내지만,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매끄럽게 봉합되지는 않는다. 장황한 서사를 채우는 과도한 대사량도 관객의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영화적 실험을 즐기는 시네필에게는 황홀한 지적 유희가 될 수 있으나, 정교하게 다듬어진 대중적 서사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난감한 미로처럼 느껴진다.
반면 엔딩이 남기는 여운은 강렬하다. 영화 속 관객이 연극을 보고 나설 때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작품의 가장 기괴하고도 섬뜩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