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제1회 하이니티 청소년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 김재인 작가의「반항의 향」
세상을 접어서 한꺼번에 집어삼키고 싶은 날이 있다. 숨이 막혀 울렁거릴지언정 꾸역꾸역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싶은 기분. 어쩌면 그날의 나는 무수히 많은 세계 중 하나를 삼켰을지도 모른다. 물이 넘칠 듯이 아슬아슬하게 가득 찬 수영장과, 횡설수설 단어를 뱉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마른 입술. 수영장에 담가져야 했던 건 온몸이 뜨거웠던 나였다. 고요히 내 애정을 집어삼켰던 푸름을 본 어린 나는 블랙홀이 있다면 아마 저런 생김새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사회에 딱 맞는 물병,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재상이었다. 어머니는 내 몸에 노력과 끈기, 약간의 광기만 부으면 우리 가족이 더욱 호화로운 미래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순적이라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보육원에 틀어져 있던 영상 매체에서 나온 대저택과 견주어도 될 만큼 성공한 사람의 집이었다. 이보다 더 호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한 욕심이었다. 이제야 모순을 깨트릴 이유를 찾았다. 내 가족은 나를 이용해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재산과 명예를 넘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가족관계. 그러한 이유로 입양아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혈연이나 모성애는 변명으로 통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나를 그저 실험체와 제물 사이 어딘가의 어중간한 생물로 보았을 거다.
소름 끼치는 ‘퐁당-’ 소리는 나와 기타를 함께 잠식시켰다. 물에 흠뻑 젖은 그것들을 딱히 건져 올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몇십 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나도 못 하는 짓을 네가 왜? 나도 완전히 삼킬 수 없고 견디지 못하는데 수영장이 뭐라고 내 목표를 이루어 버리는지. 분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힘들게 견뎌 보라고, 쌤통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인정이 두려워서 나타난 회피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렸으니까. 어렸을 뿐이니까…. “배서화!” 거센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류가 익숙한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팔짱을 낀 모습을 보아 시시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졸은 모양이었다. 그 사이 무언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머리 아팠으니까 잠깐 눈 붙인 건 오히려 잘 된 셈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드니 이류가 입을 우악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혼날 것 같아.’ 이류는 온몸으로 상황을 설명한 후에 문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벌세우려고 찾아왔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한이류 이 자식 때문에 센터를 멋대로 벗어난 적이 많았다. 얘 혼자 내보내기에는 의리가 없다고 해야 할까. 결국에는 잡혀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센터 관계자에게 들킨 날에는 복도에서 벌을 섰다. 워낙 구시대적인 사람들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이류는 감시가 사라진 틈을 놓치지 않고 자꾸 나에게 장난을 걸었다. 그런 태도 불량의 대가는 복도 청소였다.
어느새 나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이불을 덮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거슬려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이제 머리가 아프다 못해 아찔할 정도였다. 나는 평생을 도망자 신세로 살고 싶지 않았다. 지겹게 해온 놀이는 질리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뭐가 됐든 당장 짓뭉개버리고 싶었다. 반항이라고 말해야 할까나….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질렸다’는 항복과 동의어이며 나의 반항은 이류를 떠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니까.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선홍빛 혈흔이 묻어나왔다. 내 치아가 고새 여린 살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습관도 참, 고쳐야 하는데. 침대 옆 서랍장에 어질러져 있던 껌 하나를 집어 입에 구겨 넣었다. 날씨가 이래서인지 표면이 녹아내려 끈적했다. 허술하게 닫아놓은 커튼 틈새로 보이는 창문에 매미가 붙어 있었다. 이어폰을 빼니 혼자 열심히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처럼 우는 대신에 껌을 씹어댔다. 고무에 내 피가 배어버려서 씹으면 씹을수록 비린내가 올라왔다.
시시했다. 센터의 운영 방식이며 사회가 의의라 부르는 행동까지. 어째서? 어떻게…. 저리 멍청할 수가 있지. 이곳에서의 정의는 잘못된 열망에 불과했다. 흔들렸다. 애초에 인간이 멍청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이모션 사이클은 세상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약자들이 외치던 예전의 사회를 나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적자생존이야말로 공평한 사회의 토대 아닐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회를 더럽히던 소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현대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오늘은 그렇다. 익숙함의 꾀에 넘어가 진실을 놓친 거나 다름없다. 도망이라. 무엇을 위해서? 끊임없이 늘어지던 푸념을 중단시킨 매미의 울음이 유독 돋보였다. 연둣빛의 작은 지우개를 새총 삼아 그곳으로 던졌다. 매미가 화들짝 놀란 듯 힘찬 날갯짓과 함께 도망갔다. 매미에게 적중한 지우개가 내 허벅지로 떨어졌다. 올해는 유독 여름이 기네. 여름? 이제 거의 다 끝났잖아. 순간 서늘한 공기가 내 무의식을 건드렸다. 숨을 몰아쉬었다. 엉성하게 쳐진 커튼 사이로 아침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찌푸렸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네. 한창 여름이었을 때, 의도치 않은 충동 때문에 이모션 사이클을 무턱대고 신청했었다. 그 대가로 이류와 냉전을 벌였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때 내가 해바라기밭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말을 섞지 않았을 거다. 오늘따라 보고 싶네. 망할 반항아가.
책장에서 낡은 악보집을 꺼냈다. 오래되어 측면의 스프링이 끊어져 있었다. 스프링 밖으로 색이 바랜 악보가 빠져나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삐뚤빼뚤한 손 글씨는 과거의 잔상을 비웃듯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어보니 청아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 곡이 아니었다. 이류와 휘연 두 명이 장난스레 낙서 해놓아 탄생한 곡이었다. 내가 직접 써 내려간 곡은 대부분 정신없고, 연주하기에도 까다로웠다. 그 때문에 눈물도 여러 번 짜냈다. 그럴 때면 어린 이류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지. 반면 두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곡은 엉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맑았다. 순수하고도 깨끗했다. 마치 나른한 오후의 비눗방울처럼. 더 이상 줄을 튕길 수 없는 나는 온전히 새겨진 굳은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굳은살은 점점 자취를 감춰 말랑해지고 있었다. 이마저 사라지면 생생한 감각을 완전히 잊게 될까 무서워서 손끝을 열심히 지분거리고는 했는데, 그 분주함이 정말 바보 같았다. 항상 작은 귀에 아프더라도 쑤셔 넣었던 빨간색의 줄 이어폰은 몇 달 전부터 노이즈가 끼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다. 흐릿해지지 않으리라 믿은 것들이 다가오는 갖가지 색에 덮였다. 정신없는 색이 이를 감싸더라도 빛을 뿜으며 뚫고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건 내 오산이었나.
이제는 제 쓸모를 잃은 종이들을 구겼다. 순간 스쳐 지나간 여린 그림자가 흑연을 번지게 했다. 시든 음표, 그딴 게 뭐가 중요해. 오선지 저편의 조각이 선잠 하나로 모조리 시들어버렸는데. 먼지 덮인 커튼으로 창을 꼼꼼히 차단한 탓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방에 조용히 갇혀 지내다 보면 클록터 직원들이 들이닥칠까? 내 스마트폰은 아직도 추적당하는 중일까? 셋에서 둘, 곧 하나. 카운트다운 하듯 세 내려가는 숫자는 믿음의 뜻을 잊게끔 했다. 많고 많은 재학생 중 왜 하필 나와 이류인지, 비밀을 빌미로 나를 속박하려 하는지. 억울했다.
얼마 전, 메일 알림이 또다시 울렸다. 내용은 ‘감정 순환의 원리 피실험자.’ 라는 문서 한 장이었다. 감정 순환의 원리라는 거창한 말은 이모션 사이클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클록터가 전송한 이 명단의 의미나 사용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충 흐린 눈으로 훑어보고 넘길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임상 실험자에 당황하던 도중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이류는 지금까지 그날이 생생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다. 무의식이 고통을 잠재시키려 끙끙댄 건지 선휘연이 실험을 받은 그날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의 온습도, 어딘가 비릿한 약물의 냄새, 선휘연의 눈동자가 어땠는지까지도 안개 낀 듯 뿌옜다. 먹먹한 심장을 붙잡고 메일을 삭제하려던 참이었다. 수증기를 한껏 머금은 심장에서 온수가 솟구쳤다. 세 글자, 획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그것도 빨간 줄로 강조까지 된 특별한 피실험자.
한이류. 네 이름이 왜 이곳에 고스란히 존재하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생각하려 애썼다. 나를 겁주기 위해 클록터가 꾸며낸 장난일지 모르잖아. 그 인간들은 그럴만한 사고를 지녔으니까. 하지만 기억의 잔예는 거짓을 논하지 않았다. 그동안 네가 했던 말, 어딘가 묘하게 경직되어 가던 네 행동. 스마트폰 화면에 그대로 갇힌 나의 동공이 향한 곳은 자그맣게 달린 각주였다. 빨간 줄의 의미를 찾아냈다. ‘임상 실험 실패. 추후 성장기 관찰이 필요함.’ 자신도 이제 감정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던 너는 이를 장난스럽게 클록터의 세뇌로 치부했다. 아니야. 단순한 세뇌가 아니라, 직접 네 혈관 틈틈이 네가 증오하는 정의가 흐르고 있었어. 점점 그 파랑이 꽃피고 있다고. 네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끔찍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파고든 과거 속으로 잠수할 여력이 충분했다. 그니까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잘못 지어진 매듭의 시작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할 말은 준비하지 않았다. 온전치 못한 기억과 땅바닥을 밟는 감각에만 의존해서 클록터로 향했다. 그날 반듯한 건물 일부는 내 감정에서 뿜어진 열기에 녹아내렸을 거다. 그가 나를 환자로 보든 반항아로 보든 상관없었다. 내 눈동자의 형태가 일그러졌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이류의 위치추적을 부탁받았다. 정확히는 계약을 맺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계약은 밤마다 내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 몰래 자그마한 칩 하나 붙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발달 된 기술 덕에 네모난 화면 속에서 네 움직임을 구경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지도를 따라 이동하는 작은 점이 안타까웠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이를 확인할 때면 속이 뒤틀렸다. 네가 싫어하는 그들과 지금의 나는 다를 바 없었다. 이담의 연락을 받았다. 이류가 곧 클록터에 제 발로 찾아갈 거라는 소식이었다. 며칠 후에 회장과 통화했다. 이류가 오래전 클록터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직접 밝혔다. 또한 의심 가는 직원이 한 명 있어 윗선에서 주시 중이라는 말, 이담의 이야기였다. 회장은 둘의 교류 관계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듯했다. 변조된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그의 차가움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가 내게 둘을 감시하라며 어떤 불량한 거리로 빠지지 않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거리에 관해 묻기도 전에 일방적인 통화가 끊겼다. 아마 불량한 거리가 네가 말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곳이겠지. 기어코 그런 곳에 발을 들인 게 너다워서 좋았어,
그날 이후로도 이담과는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담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이류에게 접근한 사실이 놀라웠다. 왜인지 모르게 섬뜩한 첫인상에 나도 경계했었는데, 이류라면 얼마나 망설였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담의 말에 따르면 이류는 아직 그의 정확한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였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잘만 따라다니는 게 정말 웃겼다. 믿음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속이고 속이는 상황 속 모순처럼 모조리 들어버린 너의 클록터 방문 약속. 그거 알아? 넌 거짓말 할 때면 미세하게 귀가 움직여. 네 기숙사 방에서 갑작스럽게 화장실에 숨겨졌던 날,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입은 잘만 움직이면서 귀는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하더라. 결국 다 불어버렸다. 스마트폰에는 통화 기록이 남는다. 클록터는 내 스마트폰을 감시하니까 머지않아 들켜버릴 거다. 그래도 더는 무리였다. 죄책감과 올라오는 역겨움을 몰래 게워 낼 바에야 깔끔하게 망치고 끝내는 편이 나았다. 도시와 센터는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지 당황한 네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이류야. 휘연이가 그랬어. 눈물은 마음과 마음의 접착제라고. 그래서 울음을 나눈 사이에는 더 깊은 애정이 피어오른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눈물은 더욱 소중하더라. 슬픔이란 감정에 불순물이 조금만 섞여 있어도 눈물은 쉽게 흐르지 않아. 숨겨 지녀왔던 애절한 로맨스 소설이나, 낡은 유에스비에 담긴 고전 영화를 보아도 마음이 답답할 뿐 울지 못했어.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왜 입술에 붙는지 알아? 아이스크림 표면이 체온에 녹고, 주변의 낮은 온도가 둘을 엉겨 붙게 한다네. 눈물도 같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눈물이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접착되는 거지. 안타깝게도 선휘연의 말이 맞았나 보다.
반항아? 그게 뭐야. 그냥 시시한 이름이잖아. 너는 한이류고, 나는 배서화야. 그게 진실이지. 그러니까 상관하지 말고 걸어. 둘이면 충분하잖아. 하나가 아니니까 걱정은 필요 없어. 셋에서 둘 된 게 뭐. 사람 한 명 줄었을 뿐이야…. 지금 혼자 울면 너의마음 뒤편에 네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내 마음만 엉겨 붙을까 겁나. 일방적일까 무서워. 그러니까 참아볼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때 쏟을게.
이제는 나도 이 응어리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 이류야.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➅잘못된 열망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