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상훈이 황사영백서와 조선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재조명한 장편소설 ‘백서’를 출간했다.
‘백서’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정약용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 충북 제천 배론의 토굴에 숨어 작성한 ‘황사영백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역사소설이다. 정조 사후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가 권력을 장악한 뒤 천주교 탄압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했던 시대 상황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려 했던 인물들의 삶을 그린다.
황사영은 백서에 조선 천주교회의 상황과 신유박해의 전개 과정, 순교자들의 행적,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죽음을 기록했다. 아울러 폐허가 된 조선 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안으로 청나라와 서양 세력의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대목은 황사영을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가 됐다. 외세를 끌어들여 조선을 굴복시키려 했다는 비판과 극심한 박해를 멈추기 위한 절박한 호소였다는 해석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조선 정부가 황사영백서의 내용을 축소·편집해 청나라에 전달한 이른바 ‘가백서’의 시각에서 벗어나, 황사영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신앙적 고뇌를 새롭게 들여다본다. 작가는 황사영을 단순한 역적이나 논쟁적 인물로 규정하기보다 박해 속에서 신앙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로 재해석한다.
소설에는 황사영뿐 아니라 이벽, 이승훈,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정하상, 주문모 신부 등 한국 천주교 초기 역사와 밀접하게 얽힌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황사영의 아내 정명련과 아들 황경한의 삶, 신유박해 이후 흩어진 신자들이 신앙의 명맥을 이어가는 과정도 함께 담았다.
1801년 의금부에 압수된 황사영백서 원본은 갑오경장 이후 뮈텔 주교에게 전해졌으며, 1925년 한국 순교복자 79위 시복식을 계기로 로마 교황청에 전달됐다. 작품의 부제인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는 이 같은 역사적 여정을 의미한다.
정순택 베드로 서울대교구 교구장은 추천사를 통해 “사람답게 살고자 천주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한 신앙의 연대와 희생을 담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영제 요셉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기획본부장은 “한국의 청년들이 이 책을 통해 순교 역사를 깨닫고, 세계 청년들에게 순교 성인들의 숭고한 삶을 전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상훈은 소설 ‘한복 입은 남자’, ‘김의 나라’, ‘제명공주’,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 공주’, ‘칼을 품고 슬퍼하다’,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등을 펴낸 작가다. ‘김의 나라’로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받았으며,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