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빈 선수가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테드 윌리엄스의 책, 타격의 과학을 읽고 있다. 문 선수는 책을 읽는 장점 중 몰입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제목이 질문이고, 답은 '타격의 과학'입니다. 『타격의 과학』은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자신의 타격 이론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는 스물한 살이었던 1939년부터 마흔 살을 넘긴 1960년까지 MLB의 위대한 타자였습니다.
이 책에는 공을 잘 때리는 자세 등 기술적인 내용만 설명된 것이 아닙니다. 관찰력이 뛰어났던 그는 인내심, 자신감 등 타자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연결해 타격을 설명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현대 야구의 타격 메커니즘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그의 책이 야구 현장 안팎에서 통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스트라이크존(S존)을 77개의 셀(cell)로 나눈 뒤 자신만의 '핫 존(hot zone)'에 들어오는 공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강조한 부분이 핵심입니다. 이는 의사 결정 이론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은 그의 사무실에 윌리엄스가 타석에 선 사진을 붙여 놓았습니다. 윌리엄스가 나눠 놓은 77개 셀에 각각의 기대 타율과 붉은색, 푸른색, 회색으로 표시한 S존 그림도 함께입니다. 한가운데 셀은 빨간색과 4할(0.400)의 숫자로 눈에 확 띕니다. 왼손 타자인 윌리엄스에게 가장 먼 바깥쪽 낮은 셀은 0.230과 희미한 회색입니다. 버핏은 1997년 주주 서한에서 윌리엄스 책을 인용해 이렇게 말합니다.
"투자의 비결은 공을 차례로 지켜보다가 자신의 스위트 스폿에 딱 맞는 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주위에서 '쳐라, 이 멍청아'라고 소리쳐도 무시하세요."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이슈를 몰고 오는 기업이 있어도 버핏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위대한 타자의 접근 방법에서 투자의 핵심 원칙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투자에서도 모든 기회를 잡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전문성이 있거나 강점이 있는 분야에서 최고의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프로 3년 차가 되는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 문현빈(21) 선수가 버핏처럼 그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호주 멜버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입니다. 문 선수의 전훈 계획과 시즌 목표를 다룬 기사에는 타격의 전설이 쓴 책에 대한 선수의 감상이 깊이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몰입하게 된다. 마음가짐을 다르게 했다. 새로운 시즌 앞두고 '후회 없이 하자'는 마인드가 생긴 것 같다"라는 정도의 코멘트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렇지만 젊은 야구 선수가 장거리 이동을 하는 상황에서 책을 골랐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야구 지식을 배우겠다는 자세 너머 독서로 마음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활자를 읽는 것이 영상 시청에 비해 집중력, 추론 등 뇌의 인지 능력을 키우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책 내용 이상의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게 됩니다. '몰입'을 언급하는 문현빈 선수에게서 그런 점을 발견합니다.
문현빈 선수는 책을 좋아하는 것으로 미디어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은 소감을 언론 인터뷰 중에 전했는데 그것이 제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책은 스웨덴 출신으로, 다국적 기업에서 20대에 임원을 달며 초고속 승진을 한 저자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태국에서 승려가 돼 17년을 수행하다 환속하고 루게릭병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자기 고백과 명상에 입문하고 수련하는 과정이 충실히 적혀 있습니다. 문 선수는 "마인드 컨트롤하는 법이 나오는 데 도움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음 수양에 대해 공부하는 어린 선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만 배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슬럼프를 겪거나 외부 충격을 받았을 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는 선배 선수들을 종종 봤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몸이 힘들고 바쁘지만 짬을 내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선수들이 인생에서 성공합니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 선수가 존경하는 구리야마 히데키 전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은 프로에 갓 입단한 오타니에게 책 읽기를 권합니다. "수준 높은 야구를 하려면 인간으로서 능력도 필요하다"라는 가르침과 함께였습니다.
문현빈 선수의 독서 목록이 궁금합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지메일닷컴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