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페텔(24·레드불)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페텔이 어린 시절 동경했던 세 명의 마이클(마이클 조던·마이클 잭슨·미하엘 슈마허) 중 한 명인 슈마허가 이젠 그를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세운 역대 최연소 월드챔피언 기록은 시작에 불과했다.
페텔은 27일(한국시간) 끝난 F1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에서 5.303㎞의 서킷 58바퀴를 1시간 29분 30초 259에 달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18번의 대회가 남았지만 올 시즌 챔피언은 페텔로 정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페텔은 그동안 기복이 심했다. 선 굵은 공격적인 운전으로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고도 세밀함과 섬세함이 부족해 번번이 정상 문턱에서 돌아섰다. 페텔은 지난해 10차례나 폴 포지션(예선 1위로 결선 맨 앞에서 출발하는 것)을 잡았으나 그 중 세 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힘 있게 밟는 그의 운전에 머신은 자주 부서졌고, 종종 서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 그랑프리에선 엔진이 타 버렸다. 그런 페텔을 두고 “머신이 견뎌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페텔과 똑같은 머신을 타는 동료 마크 웨버는 한 차례도 고장을 일으키지 않아 그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베텔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 한 단계 도약했다. 이날 그는 스피드는 물론, 단점으로 지적된 타이어와 엔진 관리 능력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2009년 월드챔피언 젠슨 버튼(맥라렌)이 타이어를 막 바꾼 그에게 쉽게 앞자리를 내줬고, 베텔에게 추월당한 드라이버는 한 손에 꼽지 못할 만큼 많았다. 스피드에 운영 능력이 어우러진 눈부신 질주였다. 예선 2위였던 해밀턴은 “2위가 최고의 결과”라고 기뻐했다. 페텔을 따라잡기가 불가능해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 기쁘다는 뜻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페텔이 온 힘을 다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날 그는 올 시즌 다시 도입된 에너지 재생 장치(KERS)를 장착만 하고 사용하진 않았다. 이것은 엄청난 손해다. 한 바퀴당 80마력 이상의 부가적인 출력을 포기하는 것인데다 KERS의 무게 만큼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위 해밀턴과 무려 22초297의 격차를 냈다. 페텔은 “배울 것이 많은 레이스였다. 이 경기를 바탕으로 더욱 성장하겠다”며 “2라운드 말레이시아 대회부터 KERS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F1은 어떤 변수가 언제 터질 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 5승을 거둔 페텔이 올해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 가능성은 무척 높아 보인다. 가장 빠른 머신을 진화하는 챔피언 드라이버가 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최대 관심사는 누가 월드챔피언이 될 것이냐가 아니라 페텔이 몇 번째 대회에서 월드챔피언을 확정짓느냐가 될지 모른다.
멜버른(호주)=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