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 등판한 삼성 크리스 페덱. 모자 한 쪽에 'BE PRESENT'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삼성 제공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 1차전에는 없었던 문구가 4차전 모자에 등장했다. 한쪽에는 팀의 포스트시즌(PS) 슬로건인 ‘VAMOS’가, 다른 한쪽에는 ‘BE PRESENT’가 적혀 있었다. 모자 챙 안쪽에도 여러 문구를 써놓았다. 삼성 라이온즈 크리스 페덱은 왜 갑자기 모자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페덱은 지난달 26일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1차전에서 4⅔이닝 5실점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팀과 팬들의 믿음은 물론,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도 컸기에 실망감이 남았다. 다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 기억부터 떨쳐내야 했다.
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만난 페덱은 “1차전은 정말 좋지 않았다. 팀도, 팬들도 나를 믿고 있었고 나 역시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운동선수들은 때때로 실패에 너무 얽매인다. 야구선수만, 미국에서 뛰는 선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라며 “우리도 사람이다. 재능을 갖고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지만, 실패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자에 다짐을 적었다. 팀의 구호인 ‘VAMOS’와 함께 새긴 ‘BE PRESENT’는 자신에게 건네는 당부였다. 이미 끝난 경기의 결과에 붙잡혀 있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상대 팀의 기세와 분위기에도 밀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지난달 30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 등판한 삼성 크리스 페덱. 사진=삼성 제공
기독교인인 페덱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다고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에 대한 걱정을 거두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 모자 바깥과 챙 안쪽에 적힌 문구들은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한 장치였다.
페덱은 연습투구마다 모자를 벗고 자신이 적은 말을 되새기며 ‘그래,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지나간 실패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당장 던질 공에 집중하려 했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단 한 공도 집중을 놓지 말자’고 이야기했다”며 “첫 번째 공이든, 열다섯 번째 공이든, 아흔두 번째 공이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영어로 표현한 ‘Don’t take a pitch off’에는 어느 한 공도 느슨하게 던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다짐은 투구로 이어졌다. 페덱은 PO 1차전에서 94개의 공을 던진 뒤 사흘만 쉬고 지난달 30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4차전 마운드에 올랐다. 짧은 휴식에도 99구를 던지며 5⅓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팀은 경기 후반 실책이 겹치며 2-4로 역전패했지만, 페덱은 1차전의 부진을 털고 부활에 성공했다.
삼성 페덱. 삼성 제공
5차전 승리로 KS에 오른 삼성은 다시 페덱의 어깨에 기대를 건다. 페덱은 4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리는 KT 위즈와의 KS(7전 4승제) 2차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 PO 4차전 이후 나흘을 쉬고 나서는 마운드다. 사흘 휴식 후 99구를 던진 데 이어 다시 나흘 만에 등판하는 만큼, 앞선 경기에서 쌓인 피로를 얼마나 회복했느냐가 중요하다.
팀 상황도 여유롭지 않다. 삼성은 3일 KS 1차전에서 0-8로 끌려가다 한 점 차까지 추격했지만, 끝내 7-8로 패했다. 경기 후반 살아난 타선의 기세를 승리로 연결하려면 이번에는 선발이 초반부터 버텨줘야 한다. 페덱에게는 시리즈를 1승 1패로 되돌리고 대구로 향해야 하는 중책이 주어졌다.
PO 4차전에서는 자신의 부진을 털어내는 호투를 펼쳤다. 이번에는 팀의 첫 패배를 만회할 차례다. 지난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손에 쥔 공에 집중하겠다는 다짐. 모자에 새긴 ‘BE PRESENT’를 되새길 페덱에게 삼성의 반격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