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10.30/ 인생의 한 시기가 저물 때, 누군가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영화 ‘폭설’은 서로 다른 시점에 선 두 남자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본다. 묵직한 이야기 속에 웃음과 씁쓸함을 함께 담아낸 김윤석과 구교환의 만남에도 기대가 모인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폭설’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현장에는 홍의정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윤석, 구교환이 참석했다.
‘폭설’은 폭설로 고립된 시골 기차역 설오역에서 퇴직을 앞둔 역장 갑수(김윤석)와 새로 온 후임 현택(구교환) 앞에 의문의 시신이 발견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영화다. 두 사람이 근무 교대를 앞둔 마지막 하루, 평온했던 설오역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10.30/ 김윤석은 시나리오의 매력에 이끌려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일단 시나리오의 힘에 매료됐다. 정말 군더더기 없이 뼈대만 남은 영화다. 오랜만에 이런 작품을 만나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김윤석이 연기한 갑수는 설오역에서 오랜 세월 홀로 근무하며 자신만의 일상을 지켜온 인물이다. 그는 “영화에 갑수가 직접 담근 담금주가 등장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지냈으면 담금주까지 담갔을까 싶다”며 “외로운 생활 속에서도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갑수가 퇴직을 단 하루 앞두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갑수의 삶은 그가 머물던 공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윤석은 “영화를 보면 갑수의 공간에 담금주와 수석이 굉장히 많다. 젊은 시절부터 손수 펜으로 기록한 수십 권의 업무일지도 있다”며 “그런 소품 하나하나가 결국 갑수라는 사람을 닮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윤석은 퇴직을 앞둔 갑수의 모습에서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또래들의 삶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그는 “저도 이제 점점 나이 든 인물들을 맡게 되고, 주변에도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친구들이 많다”며 “은행에 다니던 친구는 퇴직 후에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가죽바지를 입어보겠다며 바지까지 사놨다더라. 평생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한 번도 길러보지 못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마치고 나서야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는 친구들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며 “갑수도 평생을 보낸 일터를 떠나 인생의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인물이다. 저 역시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갑수의 마음에 공감이 많이 됐다.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도 갑수의 고민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10.30/ 구교환은 갑수의 뒤를 이어 설오역에 부임한 현택을 연기한다. 구교환은 “현택은 설오역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설오역은 곧 갑수이고, 갑수에게는 이곳이 전부”라며 “그래서 현택은 갑수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어 한다”고 소개했다.
김윤석과 구교환은 지난 2021년 개봉한 ‘모가디슈’ 이후 다시 호흡을 맞췄다. 구교환은 “무엇보다 ‘모가디슈’ 이후 윤석 선배와 꼭 한 번 더 작품을 하고 싶었다. 당시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는데 이번에 다시 만나게 돼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고 밝혔다.
두 배우는 실제로도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한 관계를 자랑했다. 김윤석은 구교환을 “피터팬 같은 배우”라고 표현하며 “저는 나이가 들어도 동심을 간직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70세, 80세가 돼도 눈빛이나 표정에서 순수함이 느껴진다”며 “‘모가디슈’에서 구교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동심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세 허물없이 친해졌고, 오랜만에 만나도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에 구교환은 “그렇다면 제가 본 윤석 선배는 팅커벨인 것 같다. 선배 역시 동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저를 그렇게 봐주신 것 같다”고 웃었다. 이어 “‘폭설’을 촬영하면서 장면 안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후 촬영한 작품들에도 선배에게 배운 것들이 녹아 있을 거다”며 “다시 한번 함께 작품을 한다면 배우로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존경을 표했다. 사진=서병수 기자 qudtn@edaily.co.kr /2026.10.30/ 홍의정 감독은 두 배우의 만남에 강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두 배우가 한 화면에 담겼을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가 없다”며 “김윤석 배우는 촬영 모니터를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감탄하게 만드는 연기 천재”라고 극찬했다. 구교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로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어떤 질문을 해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다.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늘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기대 이상의 연기를 펼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홍 감독이 특히 공을 들인 것은 설오역이라는 공간이다. 그는 “설오역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때는 분명 쓸모가 있었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외딴섬처럼 보이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눈으로 뒤덮인 기차역의 쓸쓸한 풍경에도 시간의 흐름과 쇠락의 정서를 담았다는 이야기다.
또한 홍 감독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시종일관 웃을 수도 있고,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이야기”라며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생각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