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짓고 더그아웃에 샴페인 거품이 쏟아지던 순간, KT 위즈 이강철 감독의 시선은 화려한 조명 너머를 향해 있었다. 통산 두 번째 정규시즌 정상에 오른 환희의 자리에서, 이 감독은 5년 전 첫 우승을 합작했던 제자들의 얼굴을 함께 떠올렸다.
우승 기자회견에서 어떤 선수의 이름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는 이강철 감독은 2019년 부임 첫해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준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꺼내 들며 먹먹한 진심을 전했다. 이 감독은 "내 밑바닥을 만들어준 선수들이다. 내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그래서 난 절대 내치지 않는다"라고 힘줘 말했다.
올 시즌 KT는 대대적인 전력 보강으로 팀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김현수, 최원준, 한승택 등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은 물론, FA 보상선수로 품은 한승혁과 새 외국인 선수 전원 교체, 아시아쿼터 선수 합류까지 더해져 무려 10여 명의 새 얼굴이 합류했다.
새 얼굴들이 가세한 이면에서, 과거 왕조의 기틀을 닦았던 주역들은 세월의 흐름과 잦은 부상, 냉정한 팀 사정 탓에 벤치나 2군에서 이번 시즌을 버텨내야 했다. 시즌 초 이 감독은 "올 시즌 전력이 탄탄해지면서 백업 선수들에게 기회가 덜 돌아갈까 봐 미안하고 걱정도 됐다"라며 기존 선수들을 향한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강철 감독은 우승을 일궈낸 뒤에야 가슴 깊이 묻어둔 부채감을 털어놓았다. 이 감독은 "주권의 경우 지금은 팀 사정상 기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늘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속내를 전했다. 마운드에서 궂은일을 도맡았던 김민수를 향해서도 "민수도 함께 고생했다"라며 잊지 않고 챙겼다.
부상으로 우승 확정 현장을 함께하지 못한 배정대를 향한 아쉬움은 유독 짙었다. 이 감독은 "원래 정대와 우승의 순간을 함께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아파서(2군에 머물러 있어) 끝내 합류하지 못했다. 참 아쉽다"라면서도 "그래도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 고맙게 생각한다"라며 애틋함을 숨기지 못했다.
KT 제공
하지만 첫 우승 주역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제 몫을 다했다. KT가 장기 레이스를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들의 헌신적인 활약이 있었다. 이 감독 역시 "이런 상황에서도 백업 선수들이 빈자리를 잘 메워줘 다행이고 고맙다"라며 그늘에 있던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 감독은 "난 정에 약한 사람이다. 연봉 3000만원 받던 밑바닥 시절부터 함께 뒹굴며 커온 선수들이다. 그 선수들이 성장해 FA 대박도 치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 감독으로서 속으로 정말 뿌듯하다"라고 덧붙였다.
숫자와 효율, 냉정한 도태가 지배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이강철 감독이 빚어낸 KT의 두 번째 정규시즌 우승은 차가운 계산기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뎁스 경쟁에서 밀려난 백업들을 향한 미안함, 그리고 2019년 밑바닥에서부터 동고동락한 '개국공신'들을 끝까지 가슴에 품은 사령탑의 '정(情) 야구'가 원팀 KT를 다시 한번 정상으로 이끈 가장 단단한 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