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 사진=CJ ENM 제공
“영화를 보고 실존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올 상반기 ‘군체’로 595만명의 관객을 만났던 연상호 감독이 신작 ‘실낙원’으로 다시 극장을 찾았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실낙원’은 5억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로,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앞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쓴 세 페이지 분량의 글이 출발점이었어요. 나쁜 짓을 하는 아들과 그 아들 때문에 본인의 삶이 고통스러워지는 엄마의 이야기였죠. 엔딩은 영화와 같았고요. 글을 읽으면서 집착이자 사랑인 그 심리가 궁금했어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 안에서 소멸시키려는 마음이 너무 기묘했죠. 그 마음을 현대에 맞는 질문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연 감독은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해 보려 했던 시간이 꽤 중요했고, 이해하고 싶은 욕망도 굉장히 강했다”면서도 “결국 그 끝을 알기는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실존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지금의 ‘실낙원’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이 말한 지금의 ‘실낙원’은 원안에 존 밀턴의 동명 서사시가 결합된 작품이다. 연 감독은 이를 통해 주제적 깊이를 더하는 동시에, AI를 주요 소재로 끌어들여 현대 사회와 인간의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요즘에는 AI가 제일 재밌어요. 영화를 만들다 보면 보편성을 고민하는데, AI가 보편성의 끝단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죠. 사회인이자 개인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수록 더욱 재밌고요. 지금은 AI를 빼놓고 무언가를 상상하기가 힘들죠. 전작인 ‘군체’도 같은 이야기였고요. 지금도 AI 이야기를 몇 개 더 준비 중이에요.”
연상호 감독 / 사진=CJ ENM 제공
극을 이끄는 김현주와 배현성의 연기에는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아들의 낯선 모습에 흔들리는 엄마 소영과 9년 만에 살인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 선우를 각각 연기했다.
“김현주는 제가 굉장히 신뢰하는 배우죠. 제 생각보다 더 많이 고민해서 표현해 주기 때문에 항상 믿고 맡겨요. 요즘 ‘100일의 거짓말’을 보면서도 ‘또 한 번 진가를 발휘하는구나’ 싶죠. 배현성은 ‘지옥2’를 함께했어요. 이번 작품을 제안했을 때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줬죠. 영화 내내 기묘하고 나른한 분위기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좋은 캐스팅이었죠(웃음).”
저예산 영화 제작에 대한 연 감독의 솔직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연 감독은 ‘실낙원’에 앞서 지난해 제작비 2억 2000만원을 투입한 ‘얼굴’을 선보였다. 개봉 사흘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얼굴’은 최종관객수 108만명을 기록하며 독립 영화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 감독은 “‘얼굴’로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봤고, 그 수익으로 ‘실낙원’을 만들 수 있었다”며 “‘실낙원’이 너무 심하게 망하지 않는 이상 다음 작품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구조가 허락하는 범위, 스태프들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런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한국 독립영화계가 오랫동안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 왔고, 이제 해외처럼 일종의 레이블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산업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싶지는 않아요. 이 영화들로 독립예술영화 지원이나 인증을 받지 않는 것도 그래서고요. 그저 대형 배급사들이 이런 규모의 작품에 함께함으로써 넓은 방식으로 배급되는 기회들을 늘리고 싶죠.”
충무로의 대표적인 다작 감독답게 연 감독은 현재 문근영, 고아성 주연의 ‘예토’의 후반 작업에 한창이다. 이와 함께 자신이 불행하다고 믿는 여고생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아내의 아이디어로, 역시 저예산 영화로 기획·개발 중이다.
“물론 상업영화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 역시 저의 직업이죠. 어쨌든 영화는 대중 매체인 만큼 보편적인 만족을 얻어야 하고, 조금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하는 숙명을 지닌 작품을 만드는 것도 재밌어요. 그런 기획을 통해 얻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요. 요즘 좀비 영화를 안 하냐는 질문도 다시 받는데, 그중에는 좀비 영화도 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