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시작한 곽빈(27·두산 베어스)의 피칭은 눈물로 끝났다. 지난 27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 일본과의 야구 결승에서 7회 동점을 내주고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7회 마운드를 내려오며 눈물을 흘리는 곽빈. 연합뉴스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7회 마운드를 내려오며 눈물을 흘리는 곽빈. 연합뉴스 현장까지 날아가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그리고 TV 앞에서 숨죽이며 이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었다. 한국이 3-1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따낸 뒤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운 게) 아니다, 아니다”라고 우겼다. 그렇게라도 감추고 싶었던 ‘사나이 눈물’이었다.
그가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는 안다. 이겨야 본전인 AG에서 엄중한 부담감이 얼마나 에이스의 어깨를 짓누르는지, 담 증세로 한 차례도 등판하지 못한 3년 전 항저우 AG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별리그에서 패한 일본을 상대로 얼마나 이기고 싶었는지.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모처럼 에이스의 피칭을 볼 수 있었다. 곽빈은 지난 21일 대만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최고 시속 157㎞의 강속구를 앞세워 6이닝 동안 10탈삼진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도 6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다.
21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대만전에서 역투하는 곽빈. 연합뉴스 투구수가 92개에 이른 상황에서 곽빈은 7회 등판을 자청했다. 경기 전부터 내린 비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나, 힘을 쥐어짜며 던졌다. 그러나 1-1 동점을 허용한 뒤 1사 1·2루에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투구수 111개.
그의 강속구만큼이나 진한 여운을 남긴 건 눈물로 폭발한 감정이었다. 에이스로서의 책임감, 꼭 이기고 싶은 간절함,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분함이 뒤섞인 것 같았다.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모처럼 에이스의 품격을 볼 수 있었다.
곽빈이 떠난 마운드를 조병현(SSG 랜더스)과 박영현(KT 위즈)이 지켰다. 그리고 8회 김도영(KIA 타이거즈)의 결승타와 문보경(LG 트윈스)의 쐐기타가 터졌다. 곽빈의 간절함이 팀 전체에 번진 것 같았다.
경기 후 그는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후배 문동주(한화 이글스)를 떠올렸다. 곽빈은 “항저우 대회 때 (결승전 6이닝 무실점) 문동주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번에 (결승전 선발을) 겪어보니까 동주가 어린 나이에 정말 큰 짐을 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내가 그 역할을 잘 이겨낸 것 같다. 한도 조금 풀렸다”고 말했다.
대만을 꺾은 뒤 김도영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곽빈. 연합뉴스금메달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배다운, 에이스다운 곽빈의 마음과 태도는 팀 전체에 전파됐다. 대회 기간 부진했던 김도영은 “(대표팀에서)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꼭 만회하겠다”고 말했다.
야구 대표팀 선발은 오래전부터 잡음을 일으켰다. 선발 과정부터 팀 구성 후 역할 배분까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논란을 이겨내는 해법은 결국 성적이다. 그 책임은 결승전 선발 투수가 가장 무겁게 떠안는다. 한국은 오랜만에 이 무게를 감당해낸 에이스를 얻은 것 같다. 야구팬에겐 현빈, 원빈보다 소중한 곽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