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표절’이라는 단어가 연일 뜨겁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을 이야기할 때 표절은 늘 바늘과 실처럼 따라오는 주제입니다.
지난주에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를 상대로 제기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가요계 역시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곡들이 표절 의혹에 휩싸이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중 한 사례로, 국내 유명 아이돌 그룹의 곡에 대해 한 작곡가가 자신의 선행곡을 표절했다며 소속사에 발송한 내용증명과 회사 측으로부터 받은 답변서 등을 온라인에 공개하였고, 이후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권 분쟁조정에 회부되었으나 ‘조정불성립’으로 종결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선행 작품의 창작자(또는 유족) 측이 유사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입니다.
◆‘왕사남’: 같은 역사, 비슷한 장면 그리고 표절 의혹
‘왕사남’의 표절 의혹은 극 중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엄흥도’의 31대손이자, 지난 2019년 별세한 연극배우 고(故) 엄모 씨의 유족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엄흥도’ 이야기의 드라마화를 위해 작성하여 방송사 등에 제출했던 시나리오 초고와 영화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유족 측은 유배 중인 단종(박지훈)이 엄흥도(유해진)의 권유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여는 장면, 낭떠러지에서 투신하려는 단종을 엄흥도가 구하는 설정, 그리고 여러 궁녀를 매화(전미도)로 합치는 등의 전개와 구체적 각색이 고인의 시나리오와 유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작사 측은 ‘왕사남’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창작물임을 강조했습니다. 기획 및 개발 등 제작 전 과정이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엄 씨의 시나리오를 접한 경로나 접점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후 유족 측은 영화 상영 및 OTT 제공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소재와 설정이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고인의 시나리오는 엄흥도의 충성과 헌신을 다룬 ‘유교적 충의 서사’인 반면 영화는 단종과 엄흥도, 마을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함께 변화하는 서사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법원은 두 작품의 주제와 서사 구조, 인물 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K팝 아이돌 음악의 표절 의혹 제기 사례
K팝 아이돌 그룹 음악에 대한 표절 의혹은 종종 제기되지만, 실제로 법적 표절로 인정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저작권 침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의 한 작곡가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K팝 아이돌 그룹의 곡이 자신이 이전에 발표한 곡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음악 전문 사이트 등에 게재했습니다. 해당 작곡가는 자신의 곡에 사용된 ‘네 음으로 구성된 선율’이 핵심 구간에서 반복되어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지적하며 소속사 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이후 소속사로부터 받은 답신 내용까지 외부에 공개했습니다.
공개된 소속사 측 답변서에는 문제가 된 구간이 한 마디 분량의 짧고 기초적인 음 배열이며 멜로디와 화성·리듬·장르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르다는 구체적 반박이 담겼습니다. 이어 저작권 분쟁조정 과정에서는 문제를 제기한 작곡가의 곡보다 먼저 발표된 팝송과 국내 가요의 선율 사례를 추가로 제시했습니다. 이후 사건은 조정 불성립으로 최종 종료되었습니다.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느낌만으로 끝나지 않는 표절 판단
표절 의혹은 대개 작품을 접했을 때 직관적으로 드는 ‘비슷하다’는 느낌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유사함을 느끼는 것과 표절로 평가하는 것, 나아가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우선 비슷한 지점이 작품의 소재나 아이디어인지, 장르나 스타일인지, 아니면 작가가 창작한 구체적인 표현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그다음, 유사하다고 지목된 부분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만한 창작성을 지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보호 대상이 되는 표현이라면, 후발 창작자가 선행 작품을 실제로 접하거나 참고했는지(의거성), 그리고 두 작품의 표현이 실질적으로 유사한지(실질적 유사성)를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음악 작품의 경우 단순히 같은 음의 개수를 세는 방식을 넘어 가락과 리듬, 화성, 박자와 템포는 물론, 해당 부분이 곡 전체에서 차지하는 질적·양적 비중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작품 역시, 역사적 사실이나 ‘위험에 빠진 인물을 구하는 장면’처럼 추상적인 소재와 관습적 아이디어만으로는 표절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이 어떠한 순서로 배열되고, 인물 간의 관계와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이를 어떤 구체적인 연출과 대사로 전달하는지를 유기적으로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왕사남’ 사건에서 법원은, 장항준 감독이 선행 창작자의 시나리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가능성까지 면밀히 따져보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K팝 표절 분쟁 사례에서도 소속사 측이 선행 작품의 온라인 노출 정도와 검색 가능성, 재생 지표 등을 근거로 “우연으로라도 해당 곡을 접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라며 의거성을 반박한 바 있습니다.
자신의 창작물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만큼이나, 하지도 않은 표절 누명을 쓰지 않을 권리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표절’이라는 단어는 법적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타인의 작품을 훔쳤다’라는 인상을 남기므로 공개적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표절’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저작권 침해’라는 법적 결론 사이에는 보호받는 창작적 표현인지, 실제로 의거했는지, 실질적으로 유사한지를 증명하는 촘촘한 단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직관적인 느낌을 넘어 감정적 비난을 거두고, 객관적 증거와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삼을 때 비로소 타당한 판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