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후배들을 향해 건넸던 말이다. 자신도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포기하지 말라고, 끝까지 달리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고 응원했다. 그 말을 남긴 삼성 라이온즈 김상준이 가을의 가장 높은 무대에서 꽃을 피웠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 첫 타석에서 때린 안타가 팀의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김상준은 지난 4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KS 2차전에 대수비로 출전해 공수에서 힘을 보탰다. 연장 12회 초 안타로 결승 득점의 기회를 이어갔고, 12회 말에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책임졌다. 삼성은 연장 혈투 끝에 3-2로 승리, 시리즈 전적 1승 1패를 맞추고 대구로 향했다.
기회는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10회 말 수비 강화를 위해 투입된 김상준에게 2-2로 맞선 연장 12회 초 1사 1루에서 타석이 돌아왔다. 벤치의 주문은 번트였다. 하지만 두 차례 시도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투스트라이크에 몰렸다. 생애 첫 가을야구 타석부터 부담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삼성 김상준. 삼성 제공
김상준은 “번트 사인이 두 번 나왔는데 원하는 코스도 잘 안 오고 변화구다 보니 잘 못 댔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위축될 법했지만,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후회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타석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흔히 있는 기회도 절대 아니다. 그냥 자신 있게 휘두르고 후회 없이 나오자는 생각으로 돌렸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김상준은 오원석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우전 안타를 만들었다. 이어진 이재현의 투수 땅볼 때 상대 수비 실책이 나오면서 삼성이 결승점을 뽑았다. 박진만 삼성 감독도 “번트 두 번을 실패하더라”며 웃은 뒤 “포스트시즌 첫 타석이었다. 적시타는 아니지만 흐름을 바꿀 수 있게 해줬다”고 칭찬했다. 수비를 믿고 내보낸 선수가 방망이로도 승리에 기여했다.
삼성 김상준. 삼성 제공
마무리도 김상준의 몫이었다. 연장 12회 말 2사 후 김현수의 땅볼을 처리하며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상준은 “저한테 올 거라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무조건 오면 잡아야겠다, 이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첫 KS를 치른 소감을 묻자 “보통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며 “이 경기를 항상 치르는 형들이나 후배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털어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무대다.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김상준은 대학 진학 직후 야구를 내려놓았다. 이후 군 복무 중 고교 1년 후배 김영웅의 1군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보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얻었다. 2025년 삼성에 육성선수로 입단한 그는 올해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7월에는 발목 인대 파열로 멈춰 섰지만 재활 끝에 돌아왔다.
2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삼성 김영웅과 김상준. 잠실=윤승재 기자
그렇게 복귀한 9월, 김상준은 미지명 후배들에게 ‘봄에만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라는 응원을 전했다. 그리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자신의 첫 가을야구에서 그 말을 증명했다. 김상준은 “처음에는 가을야구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와보니 책임감도 생기고 막중한 자리라는 걸 느꼈다”며 “난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또 언제 한국시리즈에서 뛸지 모르니, 후회 없이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 바라는 결실은 팀의 우승이다. 김상준은 “제가 주전으로 계속 나가서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최소한의 기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뒤늦게 피운 꽃을, 동료들과 함께 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가고 싶은 김상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