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가을야구 무대를 밟기까지 입단 후 12년이 걸렸다. 2022년 트레이드로 LG 트윈스를 떠나 KT 위즈에 둥지를 튼 장준원의 이야기다. 기회를 잡을 때마다 부상에 발목 잡히고, 돌아오면 다시 경쟁해야 했던 그가 이제 한국시리즈(KS·7전 4승제) 주전 유격수로 섰다.
장준원은 지난 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KS 1차전에 선발 유격수로 출전했다. 입단 12년 만에 나선 생애 첫 포스트시즌 경기였다. 첫 가을의 출발점이 우승을 다투는 KS, 그것도 선발 출전이었다. 4일 2차전에도 선발 유격수로 나설 예정인 그는 경기를 앞두고 “가을야구에 나간 게 처음이라 긴장 반, 설렘 반이었다”며 “어쨌든 어제 이겼고, 큰 실수 없이 마무리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LG에서 시작한 프로 생활은 2022년 트레이드를 통해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KT에서도 자리를 잡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크고 작은 부상이 겹쳤다. 장준원은 “계속 기회를 받을 때마다 다쳤고, 그러면서 경쟁을 계속했다. 올해도 시즌 초부터 다쳐서 못 뛰었다”고 말했다. 몸을 회복해 돌아와도 자신의 자리가 보장돼 있지는 않았다. 다른 선수들이 먼저 나선 자리에서 다시 출전 기회를 얻어야 했다.
KT 장준원. KT 제공
올 시즌도 막판까지 KT 유격수 자리는 경쟁의 장이었다. 지난해 주전으로 자리 잡은 권동진과 신인 이강준, 부상에서 돌아온 장준원이 자리를 다퉜다. 탄탄한 내외야진을 갖춘 KT에서도 유격수는 고민이 남은 포지션이었다. 이 감독은 장준원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는 것으로 답을 찾았다. 한두 타석의 결과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야구를 펼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이 감독은 지난달 11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시즌이 20~30경기 남았을 때였나. 준원이에게 ‘네 자리 줄 테니까, 너 안 뺄 테니까 해봐’ 했는데, 그 뒤로 홈런 치고 호수비하고 다 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실제로 장준원은 9월 20일부터 정규시즌 종료까지 15경기에서 타율 0.290(31타수 9안타), 4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감독의 확언에 공수 활약으로 답했고, KS 주전 유격수 자리까지 꿰찼다.
선수에게도 그 말은 큰 힘이었다. 장준원은 “한 타석, 두 타석 치다가 세 타석, 네 타석 칠 수 있고, 내일도 나간다는 보장이 있으면 준비를 더 확실하게 한다”며 “그런 게 쌓이면서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 마음도 편해졌다. 준비하는 데 있어서 더 편하게 준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음 날에도 기회가 있다는 믿음은 하루하루의 준비를 바꿨다. 오랫동안 경쟁을 거듭했던 장준원이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힘이었다.
KT 장준원이 KS 1차전에서 1회 김지찬의 도루를 잡아내고 있다. KT 제공
그렇게 맞이한 첫 KS는 정규시즌과 사뭇 달랐다. 장준원은 무엇이 달랐느냐는 질문에 “다 다르던데요”라고 답했다. 열정적인 응원도, KS라는 무대가 주는 압박도 새로웠다. 잠자리에 들어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꾸 깼다고. 그는 “아무래도 긴장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생각보다 긴장이 많이 됐다”며 “이 타이틀이 주는 압박을 저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긴장을 덜어낸 건 준비했던 수비였다. 1차전에서 상대 1번 타자의 타구를 잡으면서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상대의 빠른 발로 내야 안타가 됐지만, 그 공을 잘 잡아 던진 행동 하나만으로 부담을 덜어 놓는 계기가 됐다. 장준원은 “연습할 때부터 코치님과 열심히 준비했다”며 “처음 타구가 왔을 때 큰 실수 없이 마무리한 뒤 조금 편하게 수비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점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공이 자신을 피해 가길 바라기보다 다음 타구에 집중했다. 그는 “안 온다고 해서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다”라며 “타자들의 스윙과 투구 내용, 반응을 보면서 어떻게 칠지, 타구가 어떻게 올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 준비를 하느라 더 바빴다”고 설명했다.
KT 장준원. KT 제공
입단 12년 만에 찾아온 첫 가을이지만, 무언가를 더 보여줘야 한다는 욕심은 내려놓았다. 선배들로부터 "더 잘하려고 욕심내다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조언도 들었다. 장준원은 “내가 뭔가를 하겠다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려고 한다. 출루라도 한 번 더 하고, 팀 배팅 같은 것부터 더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감독의 믿음 속에 생애 첫 가을을 KS 주전 유격수로 시작한 장준원. 오랜 기다림에 대한 개인적인 보상보다 팀의 승리가 먼저다. 그는 “팀이 좀 여유가 있을 때 한번 욕심 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