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세계에서 ➄ 그리고 아이는 자라난다(2) 完
박지효 기자
여로의 단조로운 목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후회. 그 단어에, 수술실에서 본 형의 얼굴이 기억 속에 선연히 떠오른 탓이다. 부정하고 싶던 하나의 가설이, 여러 증거들과 맞물리며 서서히 힘을 얻어갔다. 형은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과거, 날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잘 보존되어 있던 내 방이, 거친 글씨로 쓰여 있는 이 단어가… 인간미 없는 마루와 대조되어, 그것이 사실임을 부정하지 못하게 했다.
“… 형은 파멸 전에 있는 언어나, 그걸로 쓰인 문학을 본 적도 없어. 근데 왜…”
그런데, 대체 왜 저것들이…
독백하듯 방향 없이 나온 말이 애처롭게 떨렸다. 말을 하면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조각 중 하나가 머릿속에 선연해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후회를 했냐고 직접적으로 묻는다면, 도저히 비탄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그 비탄의 시발점은 그 옛날의 것이었다. 형이 병에 걸리기 전에, 내 존재 빼고는 모든 것이 괜찮았을 때.
나는 왜 문학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까. 왜 여로의 어떤 손짓이, 성호를 긋는 옛 종교의 행위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면서도, 슬픔은 낯선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의문의 해답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기억으로 모조리 설명이 되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잠들지 못하는 어느 날 밤에 본 형의 얼굴이었다.
저 달에도 토끼가 산단다. 달에게 소원을 빌면, 언젠가는 이뤄질지도 모르지.
형은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으로 밤의 어둠에 울먹이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날 형이 내게 속삭인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한, 옛 문학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내가 여로에게 끌린 건, 문학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찬미할 수 있는 영혼이 남아 있던 건, 없어졌다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내음 때문이었다. 그 잔향이 나를 살게 한 것이다. 현실이 두려워 숨어버린 형을 애도하며, 나는 그 미숙한 사랑을 다시금 품에 안았다.
“… 기억 나. 아, 아… 그러니까, 형은,”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짙은 감정은, 오히려 내보이기도 힘들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 나는 문학을 알았어. 형은 그 아름다운 세계를 내게 남겨두고, 다시 내게서 그것을 지웠어. 살아가게 하려고….”
나를 지워야 했을 형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형이 너무나 미웠다. 아름다운 세계를 알았으면서. 내가 그것을, 잔향으로만 남은 것의 이름을 떠올리려 할 수도 있다는걸, 생각할 수 있었으면서…
아니, 허상을 좇게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형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허상인 이 세계는, 진짜 허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하려고 눈을 가린다.
나는 조금 고요해진 감정으로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결론을 내리긴 이르다… 조금 더 실체를 좇은 후에 형을 마주해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턴, 시간이 많을 테니까.
“… 저것들은 어떤 책이야?”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신곡은 지옥과 연옥과 천국… 그러니까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이야. 국가는, 이데아라는 이상 세계를 설명한 철학자의 저서고.”
그 외에도 어떤 다른 세계에 대한 책이 몇 권 있다고, 여로는 덧붙여 설명했다.
“이상 세계… … 저 멀리 간 이후를 본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옛사람들은, 그 초월적인 것에 대한 공포를 잊으려 신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니까.”
조곤조곤 들리는 말이 무게추라도 된 듯 감정을 저 낮은 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통증을 겨우 눌러 참아야만 했다.
잊으라고 잔인하게 말했던 형은, 아무런 미련도 갖지 말라 말했던 형은 사실… 죽음을 두려워했던 걸까.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같은 비이성적인 것들을, 누구보다 이성적이고자 노력했던 형이 직접 찾아 읽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너무나 아팠다. 형은 잊지 못한 나와의 시절로 나를 보내고 자신을 보냈다. 모든 것 덮어두려고 했던 나는…
그때 여로의 손이 가만히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시야에서 그의 푸른 눈이 사라지고, 대신 따뜻한 체온이 몸을 감싸 안는다. 여로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아마도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주인공이 너랑 비슷하거든.”
여로의 시선이 책장에서 나로 옮겨갔다.
“… 닮았다고? 나랑?”
“응. 열차에서 형이 보내오는 편지는 항상 학교 선생님들과 비슷했다고 했었지. 근데 적어도… 세계가 너를 짓밟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야.”
저 주인공도 그랬어. 여로는 조금 슬픈 목소리로 덧붙였다.
“알고 있었다면, 왜… 그것에 대한 말을 하는 거지?”
여로가 내 사정을 전부 알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의문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동앗줄과도 같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내뱉기라도 하는 것은.
“세계 속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니까. 어른들은 겁이 많아. 세계 속에 갇힌 채로… 커버리지 못한 아이들은, 두려움을 품은 채 두려움을 전달하는 어른이 돼.”
두려움을 전하는 어른. 그래, 여로의 설명이 정확했다. 형은 나를 준비시켜 중급 학교에 보냈고, 높은 성적을 유지할 것을 종용했다. 혼자서도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차라리 그것을 지워내는 것을 택한 것이다. 아무리 사랑했던 것들이라도. 아니, 어쩌면, 그런 이라도…
“문학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감히 짐작하건대, 혼자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세계 속에 밀어 넣은 너를 가장 아파하셨겠지. 그것과 닮은 이야기가 문학엔 종종 있어.”
여로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규칙적인 리듬감과 온기에도, 여전히 가슴이 저릿했다. 눈가가 붉어지는 게 선연히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 아픈 사랑은. 비극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과거로만 덮어두려 했던 그 사랑은. 사실 지금까지도 그의 아픔이었던 걸까. 남겨질 나를 보며, 후회로 가득 찬 형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울어도 돼. 괜찮아.”
입술을 내리 문 나를 보며, 여로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간단한 말이, 어떤 촉매제가 됐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이 무릎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묵힌 감정은 생각보다 깊이가 깊었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나는 한참을 섧게도 울었다. 이 냉골에서 날 그렸을 형을 생각하면서, 어긋나고 어긋났으나 끝내는 내가 행복하길 원했던 그 아픈 사랑들을 선연히 느끼면서… 여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했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우는 동안, 그 품 안에서는 무너져 내려도 괜찮았으니까.
“내일은, 내일은 안 울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울게. 나는 여로의 옷자락을 간절히 부여잡았다. 놀랍게도, 그리 모든 것을 쏟아내며 우는 동안… 머릿속 어딘가가 명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날 찾아온 복지사는 내게 상속될 것이나 앞으로의 처우, 형의 장례 절차를 일러주었다. 전날 이미 흘려둔 눈물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어, 나는 꽤 담담히 그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끝내고 난 뒤에는, 형을 만나러 가야 했다. 집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동안, 나는 형에게 전할 것들과 전날 한 결심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여로는 병원의 로비까지 동행해 주고는, 병실로 올라가려는 내 어깨를 단단히 두드려 주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보단 기계들에 둘러싸인 풍경 속, 나는 그저 낮은 눈으로 살포시 웃으며, 내내 품어왔던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혹시… 네 죄라는 건 뭐야?”
언젠가 보랏빛 석양 아래서 나눴던 말이었다. 내 모든 원죄이자 사랑을 마주하러 가는 길, 나보다 훨씬 짙을 것이라 얘기한 여로의 죄라는 것이 문득 궁금해졌다. 내 물음에 여로는 그저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광야로 향해버린 거.”
그는 죄를 고해하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초연한 태도로, 그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죄를 지어. 굳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꼽자면… 난 하나의 손을 놓쳐버렸어.”
하나? 의문스러운 수사(數詞)에 잠시 고개를 저었으나, 여로는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쨌든… 차차 알게 되겠지. 그는 언제나 의문을 의문으로 남겨두지 않았으니까. 내가 길을 찾으면 여로는 항상 그 앞에서 뒤돌아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잠시 뒤를 돌아 있어도 괜찮았다.
어깨에 와닿은 그 온기는 한 번 더 나를 나아가게 했다. 나는 그에게 마주 웃어 보이고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A-13.
3층으로 올라간 나는 익숙한 번호를 찾았다. 우연일까. 형의 병실 번호는 내 학생 번호와 같았다. 나는 푸른색으로 각인되어 움푹 들어간 그 번호를 잠시 쓸다가, 문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리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응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형의 위독을 알린 것도 우리의
사정을 지켜보고 있던 지역 복지사라 했다. 형은 오히려 조용히 떠나려 했다고… 복지사가 말해준 바 있었다. 형의 성정으로는 무언의 응답이 돌아오거나, 내 방문을 끝내 거절할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병실의 내려앉은 공기와 함께, 나는 마지막 기억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말라버린 형을 마주했다. 나와 채도가 같은 그 눈의 색이, 이 사람이 정말 내 기억 속의 형이라는 것을… 겨우 증명해 줄 뿐이었다. 형의 눈동자는 나를 보고 일순 굳더니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린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잘 지냈냐는 상투적인 인사나, 곧 떠날 이를 향한 슬픔이나 원망 따위도 없었다. 형과 내 사이에는 이런 담백함이 차라리 어울렸다. 온갖 질척한 감정이나 붙잡음보다도.
“형."
“…….”
“형.”
나는 나조차 이름 모를 감정을 담아 그저 몇 번이고 형을 불렀다. 서툰 손짓으로, 쇠잔한 손끝을 붙잡는다. 기억의 조각 속 어느 밤, 여린 마음이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에 잠들지 못하고 그저 눈을 꾹 감고 있으면, 머뭇거리다 종내에는 따뜻하게 닿아오던 온기처럼. 나는 그 찰나의 머뭇거림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손끝은 더이상 온기를 품고 있지 않았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저 상급 학교 안 갈 거예요.”
“….”
“알고 있었죠? 그때 내 기억이 온전히 지워지지 않았었다는 거.”
“….”
“그러니까 지금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잖아요. 편지에선 항상 올바로 처신하고 있냐고 물어봤으면서.”
학생들의 보호자는 의무적으로 아이에게 일정 주기마다 편지를 보내야 했다. 학생 전부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에서, 향수병이나 외로움으로 학업에 지장이 가는 걸 방지하기 위한 학교의 선제 절차였다. 형은 의무 기간을 넘기지 않을 정도의 주기로만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거짓된 관계에 걸맞게, 마르고 버석버석했지만, 어딘가 짙은 슬픔이 느껴지곤 했던 편지. 나는 상투적인 내용을 써 보냈으면서도 부득불 손편지를 고집하던 마른 손의 감촉을 손 아래로 느꼈다.
항상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하라는 엄격한 말만을 남겼으면서. 정작 형은 세계를 떠나겠다는 내 말에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질책하지도 않고… 그저 고요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선이 쇠미하다. 형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도 잔뜩 지쳐 있었다.
“내가… 무슨 염치로 내게 어떤 말을 하겠니.”
한참 동안 그 고요한 것을 응수하던 형이 미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을 들어, 내 손을 아주 살짝 마주 잡아 오면서.
“널 사랑하지 못한 죄로, 네가 날 잊는 것을 감수하려 했어. 그런데, 아주 간단한 망각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결국 그런 눈을 하게 만들었구나.”
“….”
“미안하다. 아가, 형이… 정말, 정말… 미안하다.”
네가 그리 어렸던 날들에, 널 사랑하지 못해서. 그 어린 것을, 어릴 수도 없게 해서. 형은 이젠 너무나 흐려진 시절의 호칭으로 날 부르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그러나 기저에는 온갖 고통스러운 후회들을 품은 채, 제 죄들을 하나둘 꺼내놨다. 세계에서 항상 어른스럽고 강하고 담대했던 형은, 세계를 벗어나 후회라는 짙은 감정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온갖 감정들이 무용하다고 가르친 형은, 이제 그 무용한 것들로 내게 다가와 다시금 손을 뻗었다. 까슬까슬한 손끝으로 내 손등을 쓰다듬는 애상을 온전히 느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동요하지 않았다. 흘러오는 짙은 감정들의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게, 나는 아주 평온한 곳에 있었다.
“형, 나는 신을 찾으러 갈 거야.”
나는 입을 열며 여로를 떠올렸다. 열감에 취한 채 들은 달큰한 것들을, 이젠 내가 전달해 줄 차례가 되었다.
“나는 문학을 알아. 새로운 길이야. 방랑을 떠날 거고, 집시가 될 거야. 그럼 죽음도 두렵지 않을 테지.”
“….”
“달에게 소원을 빌 거야. 달의 뒷면은 아무도 몰라,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살풋 웃으며 형의 눈을 바로 마주했다. 그의 뒤로 살짝 보이는 창문 너머에도 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봐야 할 것은 형의 눈 속에 있는 달이다.
달님은 어둠이 무서워 숨어버렸어요. 나는 그런 결말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서 조금만 기다려 줘. 지금 형이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상처조차도 어쩌면 조금 일찍 따라간 뒤에… 어루만져 줄 테니까. 그러니까, 비탄하지도 말고. 원망도… 후회도 말고.”
한 음절 한 음절에 진심을 담는다면, 말하는 속도는 느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늦어도 괜찮았다. 속도에 쫓김 당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형의 차가운 손에 이마를 대고 조용히 기도했다. 아직 이름 모를 신에게, 비극적인 사랑의 끝에는 평안이란 단어를 선사해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형은 웃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아주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형은 아주 긴 여로를 떠났다.
“... 잘 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 괜찮아. 사랑해.
인간의 청각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나는 형이 잊지 않도록 계속해서 되뇌었다. 의사들이 들어오고, 차가운 선고를 내릴 때까지.
형이 떠날 때까지 울지 않던 나는 그때서야 조금 울었다. 아주 조금. 눈가가 살짝 붉어질 정도로만.
병실의 모든 것이 정리될 때까지 그곳에 서 있던 나는 큰 한숨과 병실에서 나오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병실 밖에는 여로가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자 나는 부러 붉어진 눈가로도 밝게 웃어주었다.
“여로야. 나랑 여행 가자.”
신을 찾으러.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찬, 그러나 어딘가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물기는 더 이상 침잠하지 않는다.
형의 장례를 마치고는, 한 번 여로를 떠나보려 했다.
에필로그. 붉은 토양
고향의 거리를 거니노라면, 이따금 포장되지 못한 도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식물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한 정제된 토양이 아닌, 아무런 생명력도 없는, 붉은 먼지 같은 흙바닥이 어린 시야를 가득 채웠다. 성마르고, 버석버석하고, 생명보단 죽음의 향기가 나는 곳. 조각조각 난 유년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 붉다란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뭐랄까, 조금은 이상한 얘기다. 도로 곳곳에 나 있는 잘 관리된 푸른 조경수보다, 유치 학교의 스마트팜에서 기르는 생명력 넘치는 작물보다, 나는 죽음의 내음이 풍기는 그 척박한 땅에 더 마음이 끌렸다. 학교에서 질리도록 들어왔기에, 위생적이지 못한 것을 잔뜩 품고 있을 거라는 위험성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예견할 수 없는, 어딘가 달큰한 냄새가 나는 매혹적인 것이었다. 잘 포장된 도로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그 유혹에 이끌려, 아직 어린 손을 뻗으려 했다.
그 마수로부터 내 손을 거칠게 잡아챈 것은 형이었다. 미쳤어, 너? 평소 잘 쓰지 않는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불같이 화를 내는 그 모습에, 어린 나는 금세 두려움부터 느꼈다. 잘못했어요, 라고 쉽게 잘못을 빌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등하굣길 도처에 있는 붉은 토양을 곁눈질할 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구든 기피하던 토양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애를 본 것이.
너 뭐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형과 같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붉은 토양을 만지던 그 애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애는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본 적도 없는 바다와 닮은, 아주 푸른 눈.
난 이곳으로 떠날 거야.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며 굽혔던 몸을 폈다. 또래로 보이는데, 나이가 많은가. 나보다 키가 훨씬 컸다.
여행? 여행을 왜 이런 곳으로 가? 나는 순수하게 물었다. 저 척박한 곳을 기피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그곳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 애는 아주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붉은 토양이 가득 묻은 손을 내게 보이면서.
여기는 존재했던 것들이 묻혀 있어. 또 다른 생명이 자랄 수도 있고. 그 애는 알지도 못할 말을 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게, 붉은 토양에게 이끌렸듯이, 이유도 모르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 여행이란 거, 나도 갈 수 있어? 지금은 못 갈 것 같은데, 형한테 허락을 받으면 갈게. 두서없는 말에도 그 애는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난 먼저 여로를 떠날 테니까, 천천히 와. 날 부르면 내가 먼저 찾아갈게. 그의 말에 나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 이상한 눈으로 보지도 않고, 같이 가주겠다니! 처음 보는 이인데도 그에 대한 호감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이름이 뭐야? 난 한인데. 이름을 알아야 부르지.
논리적인 말에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잠시 그쳤다.
한, 한… 하나. 그래, 이게 좋겠다.
그는 살짝 작은 내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을 살짝 굽히며 다정히 웃었다. 이름을 알려주랬더니, 괴상한 별명을 짓는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그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날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알아볼게. 나그네에게는 이름이 없어서 알려줄 수 없거든. 다만 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야.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는 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종종 마주쳐 이름을 물을 때마다, 여전히 의문스러운 말들만을 내뱉을 뿐.
시간은 흘렀고, 나는 숨을 쉬는 그 일말의 시간까지 모두 시험 공부에 쏟아부었다. 자연히 붉은 토양을 바라보게 되는 일도 점차 줄어들어 갔고, 그 아이를 보는 것도 드문 일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만난 건 입학시험을 치르러 가기 전날이었다. 처음 만난 그곳에 변함없이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 나는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형이 허락하지 않아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아이가 어른스럽게 사고하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는 그에게 이름을 묻던 작은 아이보다는 형의 눈빛을 한 채로, 나는 여행을 떠난다는 그 애에게 작별을 고했다.
노을을 맞으며 서 있던 그 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저 붉은 노을을 가리켰다. 그때의 노을은 아주 붉었다.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어. 그는 위로하듯 말했다. 거기서 어떻게 했더라.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펑펑 울어버렸거나,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은 것 같다.
낮은 시선으로 그 애와 본 붉은 토양을 구경한 것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입학시험을 본 나는, 곧 그 애를 잊어버렸고, 그 세계에서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다만 그 애는, 다시 만나게 될 날에, 품 안 한가득 산딸기를 따오겠다고 했다.
박지효 기자 jihyop@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