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조로사 공식 SNS 촬영장 대신 공연장으로 향하는 중국 배우들이 늘고 있다. 조로사와 백록, 왕학체, 정우혜, 라운희, 우서흔 등 배우들이 잇따라 콘서트를 열거나 공연 계획을 내놨다. 셰나와 웨윈펑까지 가세했다. 노래가 본업이 아닌 연예인들이 줄줄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베이일보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었거나 준비 중인 비가수 연예인은 15명을 넘어섰다. 배우가 작품 OST를 부르거나 팬미팅에서 노래 몇 곡을 선보이는 수준과는 다르다. 수천~수만 석 규모의 공연장을 잡고 노래와 무대를 중심으로 한 정식 콘서트를 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티켓도 잘 팔린다. 백록이 지난 6월 쑤저우에서 연 데뷔 10주년 음악회는 예매 시작 직후 매진됐고, 조로사의 태국 방콕 공연 1만2000석은 38초 만에 동났다. 왕학체의 마카오 콘서트 3만2000석도 3분 만에 매진됐다. 전문 가수처럼 긴 디스코그래피를 갖추지 않아도 배우로 쌓은 팬덤이 콘서트 흥행을 떠받치고 있다.
배우들이 공연장으로 향한 시점은 중국 영상업계의 불황과 겹친다. 중국 영화·드라마 촬영의 중심지인 헝뎬에서는 올해 1분기 실사 숏드라마 촬영 개시 건수가 전년 동기보다 75% 줄었고 촬영장 공실률도 80%에 육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베이일보는 톱 배우의 출연료가 약 40%, 중간급 배우의 보수는 절반가량 줄었다는 현지 업계 상황도 전했다. 작품 수는 줄고 한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졌는데 수입까지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AI 콘텐츠 확산도 변수다. 실제 배우와 대규모 촬영 인력이 필요한 작품 대신 AI로 인물과 장면을 만들어내는 숏드라마가 늘면서 중소 규모 제작 현장을 중심으로 배우와 스태프의 일감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대로 중국 콘서트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중국 콘서트 티켓 매출은 2019년 42억5900만 위안(약 8599억원)에서 지난해 295억5800만 위안(약 5조9680억원)으로 약 7배 늘었다. 올해 1분기 대형 콘서트 티켓 매출도 41억700만 위안(약 829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4.2% 증가했다.
현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가 기획부터 촬영, 공개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반면 콘서트는 티켓 판매와 동시에 수요와 매출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배우들이 공연 시장으로 향하는 이유로 분석한다. 공연 준비 기간이 비교적 짧고, 티켓 선판매를 통해 수익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화권에서 배우가 가수 활동과 콘서트를 병행한 전례는 이미 있다. 임희윤 대중문화 평론가는 “1980~1990년대 중화권 스타들이 큰 인기를 얻었을 때도 배우들이 앨범을 내고 가수를 겸업하며 아시아 각지에서 콘서트를 여는 일이 많았다”며 “배우로 쌓은 스타성을 바탕으로 활동 영역과 수익원을 넓히는 방식은 당시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왕학체 공식 SNS 최근에는 영상업계 침체가 겹치면서 콘서트의 의미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임 평론가는 “영화와 롱폼 드라마 시장의 매출과 수익이 예전보다 줄고, 특히 중화권에서는 숏폼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며 “롱폼 작품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온 스타들에게는 일종의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렇다고 이들이 곧바로 숏폼 배우로 옮겨가기는 포맷도 다르고 여러 제약이 있다”며 “콘서트는 이미 확보한 팬덤을 활용해 티켓뿐 아니라 앨범과 굿즈 등으로 수익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배우의 콘서트 진출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지에서는 대표곡이나 전문적인 가창력이 부족한 연예인이 높은 가격의 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두고 팬덤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임 평론가는 “예전에는 콘서트에서 연주력이나 가창력이 훨씬 중요했다면 지금은 무대 연출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며 “AR이나 라이브 오토튠 등 가창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도 많아져 비가수가 콘서트에 도전하는 장벽도 낮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임 평론가는 온라인 중심의 콘텐츠 소비가 커질수록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팬들이 함께 모이는 경험의 가치가 커진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이 작은 화면으로 많은 콘텐츠를 소비할수록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함께 즐기고 연대감을 느끼는 오프라인 이벤트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팬덤을 만든 유튜버나 버추얼 크리에이터도 팬미팅과 콘서트를 결합한 행사를 여는 만큼, 콘서트 같은 오프라인 이벤트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제 콘서트는 일부 스타의 팬서비스를 넘어 배우 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배우와 가수의 경계가 옅어지는 가운데, 팬덤을 기반으로 한 공연 진출은 중국 연예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