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 하이웨이의 타천사’=사진=CJ ENM 명탐정 코난은 좀처럼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보며 자란 독자들은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 일본은 이 시간의 차이를 산업으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의 만화를 어른이 된 뒤 찾아가는 여행으로 연결한 것이다.
2024년 극장판의 무대였던 하코다테는 영화 개봉에 맞춰 스탬프 행사와 캐릭터 전차, 기념 승차권을 마련했다. JR서일본의 ‘코난 미스터리 투어’는 2025년 스무 번째를 맞았다. 관광객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단서를 모으고 사건을 푼다. 풍경을 구경하는 관객이 잠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일본인의 미감이나 국민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핵심은 오래 좋아하는 마음을 낡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다. 만화를 좋아했던 아이에게 어른이 됐으니 그만 잊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어른의 방식으로 계속 좋아할 자리를 마련한다. 취향의 수명을 늘리자 산업의 수명도 길어졌다.
코난의 초대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는 처음부터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보는 작품을 지향했다고 밝혔다. 어린이는 추리를 즐기고, 청소년은 인물들의 관계에 빠져들며, 성인은 익숙한 세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작품이지만 살아온 시간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은 달라진다. 팬이 자라는 동안 콘텐츠도 그와의 관계를 바꿔온 셈이다.
그렇다고 추억에만 기대지는 않았다. 사건은 해결하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고, 영화마다 중심인물과 무대를 달리했다. 오래된 팬에게는 기다린 보상을 주면서 처음 온 관객에게는 도입부로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수십 년의 선행학습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익숙함은 지키되 새로 들어올 문은 닫지 않았다.
팬이 하코다테를 찾는 이유는 야경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장소의 가치는 풍경과 기억이 만날 때 달라진다. 가족과 함께 그곳을 걸으면 작품의 추억 위에 자신의 추억이 더해진다. 관광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다음 이야기가 된다.
이 대목에서 한국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흥행한 작품의 촬영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렸는지에는 민감하다. 그러나 열기가 식은 뒤 누가 다시 찾아올 것인지에는 충분히 답하고 있는가. 배우의 입간판과 촬영지 표지판만 남겨놓는다면 감동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시설물이 되고 만다.
물론 한국은 모두 실패하고 일본은 모두 성공한다는 구도는 사실과 다르다. ‘겨울연가’의 남이섬은 자연과 문화행사를 결합하며 오랫동안 방문객을 맞아왔다. 같은 한국 안에서도 지속성을 만드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국민성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운영의 차이다.
‘왕과 사는 남자’를 계기로 영월에 쏠린 관심도 같은 질문 앞에 있다. 영화의 흥행을 단종의 역사와 지역의 일상에 어떻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 촬영 장소를 확인하는 방문을 넘어, 이야기 해설과 공연, 계절마다 달라지는 체험으로 다시 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영화가 끝났다고 지역의 이야기도 끝날 필요는 없다.
장기간 이어지는 애니메이션과 한 편으로 완결되는 영화를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완결된 이야기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무리한 후속편보다 그 감동을 현실에서 이어갈 설계다.
이를 위해서는 작품을 만든 이들과 지역주민, 상인, 지자체가 함께할 운영 주체가 필요하다. 캐릭터와 영상의 이용 범위, 수익의 배분, 관리 책임도 미리 정해야 한다. 조형물을 세울 예산뿐 아니라 이야기를 새롭게 할 사람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주민에게는 생활의 보탬이 되고 팬에게는 환대의 기억이 남아야 다음 방문도 가능하다.
코난이 가르쳐주는 것은 일본 만화의 우월함이 아니다. 사람의 애정을 오래 대접하는 방법이다. 흥행은 사람을 한 번 불러오지만, 관계는 다시 돌아오게 한다. 문화산업의 진짜 실력은 얼마나 크게 터뜨렸느냐가 아니라, 그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무엇을 남겼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