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생계를 위해 꽃미남 카페에 위장 취업했고, SBS ‘미남이시네요’의 고미녀(박신혜)는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아이돌 밴드 멤버가 됐다. KBS2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박민영)는 남동생의 이름으로 금녀의 구역인 성균관에 입학했으며, KBS2 ‘연모’의 이휘(박은빈)는 죽은 쌍둥이 오라버니를 대신해 남장한 채 왕으로 살아갔다.
이처럼 K드라마 속 ‘남장여자’ 캐릭터들은 생계 유지와 신분 위장, 금녀의 공간 진입 등 사회적·제도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한 수단으로 남장을 택해왔다. 2007년 신드롬을 일으킨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은 이후 남장여자 로맨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2026년, 익숙한 남장여자 서사에 색다른 변주가 찾아온다. 오는 10월 10일 첫 방송되는 tvN 새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에서 배우 설인아가 기존과는 결이 다른 남장여자 캐릭터를 선보인다. 사진=tvN 제공 설인아는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재벌 3세 윤이준(임시완)을 미행하기 위해 그의 수행비서로 위장 취업한 특수부대 출신 형사 강재희를 연기한다. 강재희가 기존 남장여자 캐릭터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남장의 목적과 역할에 있다. 과거 남장이 주로 남성 중심의 공간에 진입하거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다면, 강재희에게 남장은 범죄 용의자를 밀착 수사하기 위한 적극적인 수단이다. 오히려 남자 주인공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역할까지 맡으며 익숙한 성 역할을 비틀었다.
그만큼 액션은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나의 유죄인간’ 연출을 맡은 김호준 CP는 tvN 예능 ‘무쇠소녀단2’에서 보여준 설인아의 활약을 보고 캐스팅에 확신을 얻었다. 당시 설인아는 복싱을 배운 지 4개월 만에 대회에서 금메달과 20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남다른 운동 신경을 보여준 바 있다.
캐스팅이 확정된 뒤에는 외형부터 움직임까지 강재희에 맞춰 변화를 줬다. 설인아는 곧장 쇼트커트로 변신했고, 특수부대 복무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에 집중해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설인아는 대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목소리, 걷는 자세, 몸짓 등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준비했으며 실제 특수부대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사전 조사를 거쳤다”며 “시청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광범위한 액션 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남장 연기의 완성도는 본 방송에서 확인해야겠지만 설인아 특유의 ‘잘생쁨’ 비주얼은 벌써 온라인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중이다. 사진=tvN 제공 설인아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봐도 ‘나의 유죄인간’은 손꼽힐 만큼 파격적이다. 설인아의 대표작 중 하나는 2022년 방송된 SBS ‘사내맞선’이다. 당시 메인 커플 안효섭·김세정 못지않게 김민규·설인아가 연기한 서브 커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설인아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밖에도 tvN ‘철인왕후’(2020),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 등을 통해 꾸준히 연기 변신을 이어왔다. 설인아의 강점은 안정적인 발성과 중저음의 목소리,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폭넓은 소화력이다. ‘사내맞선’에서는 털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재벌가 외동딸을, ‘철인왕후’에서는 욕망과 질투를 품은 조화진을 연기했다. KBS2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서는 보다 짙은 감정 연기를 보여주며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의 유죄인간’은 김호준 CP가 “호불호가 크게 갈릴 작품”이라고 호언장담했을 만큼, 이른바 ‘병맛’ 코드에 스릴러와 로맨스를 뒤섞은 복합 장르다. 작품을 향한 호불호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설인아의 변신만큼은 일단 ‘호(好)’에 가깝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잘생쁨’을 장착한 설인아가 유죄라면 시청자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기꺼이 공범이 되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