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사진=IS포토
생성형 AI가 K팝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소용돌이 속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쫓아간 기록이 가리키는 실상은 단순한 기술적 공포나 환호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술의 발전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을 비집고,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와 제작 환경의 재편이 무서운 속도로 밀어닥치는 현실이었다.
눈앞에 닥친 AI 혁명이 K팝 생태계를 파괴할 재앙인지, 혹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단순히 기술 만능론이나 막연한 공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부딪히는 치열한 작업실과 무대 뒤편의 공정을 직접 들여다보며 이 거대한 지각변동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이 진짜 변화를 읽어내는 첫걸음이었다.
본 기획 시리즈 [K팝과 AI 혁명]은 K팝 프로덕션의 세 가지 핵심 축인 작곡·작업실, 버추얼 아이돌·팬덤, 그리고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을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① 뛰는 기술, 멈춰 선 저작권…혼란에 빠진 현장, ② 멜로디 중얼거리자 5분 만에 뚝딱...‘유령 어시스턴트’ 침투, ③ “제작비 1000분의 1 수준...K팝은 AI의 완벽한 먹잇감”으로 작곡가 및 작업실을 들여다보았고, ④ 음주운전·학폭 없다…버추얼 아이돌, ‘무한 확장’ IP로 부상, ⑤ 화면 넘어 현실로…플레이브 팬덤이 연희동에 만든 연대의 낙원, ⑥ “기계는 인간 대체 못해...버추얼 아이돌 핵심은 인간의 교감”을 통해 버추얼 아이돌과 팬덤의 결속을 조명했다. 이어 ⑦ 수억 세트비 ‘0원’으로...MV 제작비 절벽 뚫은 ‘단가 다이어트’, ⑧ 렌즈도 세트장도 없다…모니터 화면에서 태어난 아포칼립스, ⑨ “버튼 누르면 뚝딱? 착각이다...연출가 무기는 안목과 휴먼 터치”로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의 최전선을 누비며 생생한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AI 도입 여부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현장 앞에서 이미 무의미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AI 음악 등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가 22일 만에 백지화하고, 크레딧에 떳떳하게 올리지 못하는 이른바 ‘유령 어시스턴트’를 작업실 곳곳에 두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현장은 이미 AI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특히 27년 차 베테랑 뮤지션인 김원종 프로듀서의 작업실에서 보듯 곡의 초안 작성부터 가사, 편곡, 믹싱에 이르기까지 AI는 송라이팅 캠프를 대체하며 제작비를 기존 대비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여주는 강력한 협업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멜로디를 가볍게 중얼거리면 단 3분 만에 곡의 초안이 쏟아지고, 아이돌 그룹 어센트의 소속사인 뉴웨이즈컴퍼니 박광원 대표와 AI 영상 제작사 찹스틱 스튜디오의 사례처럼 수억 원을 호가하던 뮤직비디오 실물 세트장과 VFX 비용이 AI와 입체 촬영 기술의 결합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모습은, 이 거대한 기술의 파고가 K팝 산업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임을 보여줬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기존 창작자의 역할도 완전히 재정의되고 있다. AI가 대량의 소스와 시안을 순식간에 제작하는 동안, 작곡가와 연출가는 전체 콘셉트를 조율하고 기술을 통제하는 지휘자로 진화하고 있다. 제작사 스튜디오 사피엔스 대표이자 연출가인 노지훈 감독의 지적처럼 “버튼 하나 누르면 뚝딱 완성된다는 것은 오해이며, 수많은 시도와 프롬프트 수정 끝에 원하는 컷을 건져내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안목과 취향”이다. 제작비 절감과 공정 단축이라는 효율성 이면에서 신인들이 경험을 쌓을 사다리가 흔들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창작자들은 자신만의 안목과 비전으로 새로운 생존 방식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중이다.
AI 기술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모든 기술이 향해야 할 최종 종착지는 분명했다. 바로 그 콘텐츠를 직접 마주하고 소비하는 리스너들과 팬들이다. 완벽해 보이는 알고리즘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그 지점에 존재했다.
서울 연희동의 플레이브 오프라인 카페(십카페)에서 버추얼 아이돌 팬덤이 가상 세계관을 유지하기 위해 본체 신상 정보를 뜻하는 ‘빨간약’을 철저히 금기시하며 침묵의 연대를 이어가는 모습은 이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버추얼 그룹 스킨즈를 제작하는 오경선 브릿지 엔터 제작총괄 등 현장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듯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리스너들과 팬들이 찾는 것은 인간 고유의 경험과 깊은 교감이라는 ‘휴먼 터치’였다.
결국 현 시점에서 산업이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무엇을 AI로 대체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AI가 현장 깊숙이 침투한 상황에서, K팝의 과제는 ‘기술로 대체되지 않는 요소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울 것인가’에 있었다. 화면 넘어 리스너들과 팬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도록,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과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해내는 것이 앞으로 K팝이 넘어야 할 거대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