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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자 ROTC, “남자친구?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
"때려!…대충한 거죠?"(교관) "아닙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 교정. 살을 애는 듯한 강추위도 아랑곳않고 목청이 터져라 외친 주인공들은 총검술 훈련을 받는 첫 여자 ROTC 후보생들이다. 지난 10일부터 오는 28일까지 3주 동안 남자 후보생들과 함께 편성돼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 60명의 여자 ROTC 후보생들은 '대한민국 최초'라는 자부심으로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따뜻한 방안에서 외모를 가꾸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총을 잡은 이들을 만났다. 추위가 최대의 적 이들은 지난해 11월 평균 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숙명여대 등 7개 대학에서 선발된 재원이다. 2400명의 남자 후보생들과 함께 편성된 총 12개 교육대 중 6개 교육대에 학교별로 10명씩 배치됐으며, K-2 개인소총도 지급받았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이들은 2013년 3월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다. 이들이 여자라고 해서 봐주는 건 조금도 없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 영점 사격·제식훈련·행군 등 남자 후보생들과 똑같은 훈련 과정을 거친다. 제식훈련 시에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일 때마다 비틀거렸고, 착검을 할 때는 칼을 총에 거꾸로 꽂는 등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전에서 통할 수 있는 장교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다. 남자 후보생에 섞여 함께 훈련받던 이예지(22·명지대) 후보생은 "여자라서 훈련에 힘든 점은 없다. 영점 사격에서 고전했지만 기록 사격에서 당당히 합격해 자신감을 얻었다"면서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강하고 당찬 소대장으로 거듭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 후보생들의 가장 큰 적은 강추위다. 정희경(23·숙대) 후보생은 "다른 무엇보다도 추위와 싸우는 게 가장 힘들다. 그렇지만 동기와 함께 있어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훈련 기간 동안 총 80㎞의 행군이 남아있다. 남자 후보생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옥의 코스다. 낙오된다면 군인 자격을 얻을 수 없다. 군 8년차 정주희(33) 대위는 "후보생 10명 당 1명의 야전 경력을 가진 대위급 여장교가 붙어있다. 남자보다 더 악착같이 하기 때문에 행군 낙오자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혹독한 훈련, 가족의 힘으로 버틴다이들이 남자 후보생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이를 악문 채 견딜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가족이다. 네 자매 중 둘째인 조수연(21·강원대) 후보생은 중학교 3학년 때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예비역 아버지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여자 ROTC에 도전한 애절한 사연을 지녔다. 그는 "아버지는 우리가 여군이 되길 바라셨다. 언니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군의 길을 가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면서 "내가 ROCT에 합격하자 언니가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여자로만 바라보는 남자친구의 걱정어린 시선도 이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정희경 후보생은 "남자친구가 있지만 입소할 때 따라오지 않았다. 왜 따라오나"라고 반문하며 "남자친구도 3월에 입대한다. 서로 상대방의 꿈을 밀어주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남자 후보생들과 함께 힘든 훈련을 받고 있지만 여자로서의 섬세함을 감출 수는 없다. 곱상한 얼굴의 민지현(21·숙대) 후보생은 "딱딱한 군인이 아니라 부드러운 리더로 봐달라"고 강조했다.성남=글·사진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showplayiframe('2011_0119_172804');
2011.01.20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