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지난 12일 서울 잠실구장.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정규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공연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도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잠실구장에 울려 퍼진 노래는 44년간 추억을 함께 쌓아온 야구장에 건네는 팬들의 작별 인사였다.
1982년 7월 15일 개장한 잠실야구장은 올해를 끝으로 철거된다. 44년간 한국 야구의 상징으로 자리했던 잠실은 2032년 3만 석 규모의 돔구장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경기 시작 전부터 팬들은 잠실의 마지막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느라 분주했다. 익숙한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휴대전화에 담고, 탁 트인 하늘과 노을을 눈에 오래 담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구장 외벽에는 영어로 '우리의 시간, 우리의 기억. 고마워 잠실(Our time, our memories. Thank you Jamsil)'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작별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경기는 2만3750석이 모두 팔려 나갔다. 44년간 추억을 쌓아온 공간을 떠나보내는 팬들의 아쉬움이 경기 전부터 잠실 곳곳에 묻어났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잠실구장 은퇴식이 진행됐다. 두산 레전드 박철순, 김형석, 정재훈, 김재호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박철순은 "내가 뛰던 그때가 벌써 40여 년 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다치고 구르고 울고 웃던 모든 순간들이 꽤 오래된 기억들일 텐데, 이곳에 서니 마치 그때의 생생한 순간들이 눈앞에 떠오른다"며 "앞으로 더 좋은 환경을 위한 잠시만의 이별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잠실"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김원형 두산 감독에게도 잠실은 특별한 공간이다. 그는 "2019~2020년에 두산에서 코치를 하면서 처음 우승을 해봤고, 그러다 보니 내게는 뜻깊은 곳이다. 선수 시절에도 이곳은 대한민국의 상징이니까 잠실에 오면 더 승부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그는 "잠실에서의 마지막 해에 내가 두산에서 감독을 한다는 것 자체도 뜻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산 팬 황현(24) 씨와 아버지 황성욱(53) 씨에게 잠실은 세대를 이어준 공간이다. 황현 씨는 "첫 방문이 언제일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기억이 없을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잠실구장을 왔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찾은 야구장은 어느새 자신의 추억까지 켜켜이 쌓인 장소가 됐다.
두 사람은 잠실에서 잊지 못할 풍경으로 노을을 꼽았다. 황현 씨는 "노을을 보면서 부르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못 잊을 것 같다"며 "잠실구장에서 바라본 노을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롭게 들어설 돔구장은 날씨와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전망이다. 다만 지붕 아래에서 경기를 즐기게 되면서 탁 트인 하늘과 그라운드 너머로 펼쳐지던 노을을 지금처럼 마주하기는 어려워진다. 더 나은 관람 환경을 향한 기대와 오랜 시간 당연하게 누려온 풍경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이유다.
잠실구장에서의 정규시즌은 막을 내렸지만, 이곳의 야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는 14일부터 LG 트윈스와 두산의 와일드카드(WC) 결정전이 잠실야구장에서 열린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팬들은 남은 경기 하나하나에 더 깊은 추억을 새기고 있다.
김수민 기자 bysumin@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