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개막작 주역들이 입장하고 있다. 2026.10.6 / 사진=연합뉴스 제공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중반부를 넘어섰다. 경쟁 체제로 탈바꿈한 지 2년 만에 ‘A리스트’ 영화제로 승격하고 대상 수상작의 아카데미 진출 발판까지 마련했지만, 대중적 체감 온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관객의 관심과 축제의 활력으로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는 평가다.
지난 6일 개막한 제31회 BIFF는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지정하는 A리스트(A-Class) 영화제에 이름을 올린 뒤 처음 열리는 행사라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영화계 안팎의 관심을 받았다. 칸·베니스·베를린국제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위상을 갖추게 된 데다, 알폰소 쿠아론과 장이머우 감독 등 거장들의 참석, 한층 탄탄해진 상영작 라인업까지 더해지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막 이후 현장의 주요 화제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영화제 초반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은 정작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암살자(들)’이었다. 당초 이 작품은 BIFF 공식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으나 개봉 직후 불거진 역사 해석 및 왜곡 논란에 휩싸이면서 출연진의 개막식 참석과 야외 무대인사부터 주연 배우 이민호의 ‘액터스 하우스’까지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여파는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으로도 번졌다. 주요 기자회견에서 ‘암살자(들)’ 관련 질문이 잇따르면서 작품을 둘러싼 논쟁은 현장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첫 공식 입장문 발표 당시와 마찬가지로 관련 사안과 거리를 두는 BIFF 측의 태도는 오히려 비판을 키웠다. 개막작 ‘낮과 밤은 서로에게’ 기자회견에서는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한 심은경에게 관련 질문이 주어졌지만, 답변 기회가 사전 차단되면서 대응의 적절성을 둘러싼 의문도 제기됐다.
이 같은 상황은 이튿날 열린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으로까지 이어졌다.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심사위원장인 장이머우 감독은 “창작의 자유와 관객의 다채로운 수용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함께 자리한 정주리 감독은 같은 창작자로서 느끼는 심리적 위축을 털어놨다.
영화인 20여명이 8일 오전 해운대해수욕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영화를 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고 촉구했다. 2026.10.08 / 사진=연합뉴스 제공
영화인들도 부산에서 목소리를 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지영·이명세 감독 등 영화인 20여 명은 지난 8일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를 정치적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라”며 ‘암살자(들)’과 관련한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전날에는 BIFF 기간에 열리는 부일영화상에서 ‘암살자(들)’의 주역 유해진이 전작 ‘왕과 사는 남자’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관련 논란을 다시금 환기했다.
더욱이 이 기간 다른 초청작들이 이렇다 할 화제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암살자(들)’은 영화제 전반부의 관심을 독점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제의 가치를 대중적 화제성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으며, BIFF 역시 신진 감독 발굴과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며 30년간 쌓아온 성과로 세계 정상급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면서도 “‘권위의 격상’이 곧 ‘대중의 호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번 영화제에서 드러났다”고 짚었다.
결국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는 것과 그 성과를 관객이 체감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다. 높아진 위상이 일회성 주목에 그치지 않으려면 국제적인 상영작과 게스트를 확보하는 데서 나아가, BIFF만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이 영화제를 직접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접점을 넓혀야 한다. 오는 15일 폐막까지 남은 일정에서 BIFF가 특정 작품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축제 본연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