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밥’ 이준익 감독 (사진=레진스낵 제공)
“할아버지도, 손녀딸도, 아들, 며느리도 모바일 디바이스는 다 갖고 있잖아요. 3대가 같이 보는 채널도 필요하단 생각입니다.”
나무에 공을 들이던 그가 숲까지 살펴 본 선택이었다. 21년 전 ‘왕의 남자’로 천만 축포를 쐈던 이준익 감독이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을 들고 나타난 이유가 그랬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만난 이 감독은 숏드라마 입문 계기에 대해 “사실 연출부 후배들에게 떠밀려서 시작했다”고 웃으며, “적은 비용으로 신인 창작자들이 상업 시장에 진입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권했더니 ‘이름있는 사람이 도전하면 숏폼이 마이너란 취급을 덜 받을 것’이라더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극장 개봉 후 오는 17일 레진스낵을 통해 공개되는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은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가부장적인 남편 하응(정진영)의 요구에 맞춰 평생 집밥을 만들어온 아내 순애(이정은)가 사고로 요리법을 잊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밥 한 끼는 흔하고 뻔하죠. 그런데 얼마나 소중했으면 지난 수천 년간 뻔했을까요.”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선 자극적인 소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짧은 시간 안에 시선을 끌어야 하는 숏드라마 시장이지만 이 감독은 ‘뻔함의 미학’을 꺼내왔다.
그는 “(전작)‘라디오스타’처럼 명절에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가족 드라마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있다. 관객들이 ‘무자극’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했다”며 “알고리즘으로 인해 가족 안에서도 취향이 세대 간 분극화됐지만, 좋은 걸 보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극장이 아닌 각자의 기기로 보더라도 3대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집밥’ 이준익 감독 (사진=레진스낵 제공) ‘아버지의 집밥’은 매회 2~3분 길이의 에피소드 61편으로 제작됐으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것을 계기로, 146분 분량으로 재편집해 지난 9일 정식 개봉했다. 모바일 화면 비율은 그대로 유지한 ‘세로형 시네마’다.
화면을 통해 담을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됐으나 인물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단 장점은 이 감독에게도 발견이었다.
그는 “촬영하고 편집할 땐 기술적으로 집중하느라 안 보였는데 극장에서 보니, 가로 영화와 달리 세로 화면에선 모든 인물이 주인공처럼 내면이 깊이 있게, 복합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 감독과 전작을 함께하며 믿고 보는 호흡을 자랑하는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명복 역)뿐 아니라, 손녀딸을 맡은 아역 박지윤까지 놀라움을 줬다.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대화를 나누던 변요한이 연기를 까먹는 게 보여요. 조연 꼬마가 인물의 존재감을 발휘할 정도란 게 세로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이 감독은 ‘아버지의 집밥’이 숏드라마로 출발한 만큼 목표한 극장 관객 수는 없다고 했다. 다만 주인공 부부와 동년배인 중장년층에게 “대우받는 듯한 작품으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했다.
아직 국내에선 태동기인 숏드라마 시장의 발전 전망을 묻자, 이 감독은 “글로벌 OTT 서비스의 대응 전략이 될 것이다”며 숏드라마는 영화와 OTT보다 글로벌 콘텐츠 소비자에게 곧장 도달하는데 이점과 경쟁력이 있다고 짚었다.
“물론 난 알고 시작했다기보다 떠밀려서 시작했지만.(웃음). 숏드라마를 응원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