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➃ 붉음과 어깨를 나란히 (1)
박지효 기자
등록2026.08.28 15:28
수정
2026.08.28 15:30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제1회 하이니티 청소년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 김재인 작가의「반항의 향」
4.붉음과 어깨를 나란히
‘이모션 사이클, 전국구의‘반항아’센터에 시행되나….”
서화가 학생 대표로서 클록터와 교류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도청기는 의심스러울 만큼 쉽게 제거되었다. 그와 동시에 각종 매체에서는 이모션 사이클의 강제 시행에 대해 보도했다. 수많은 기사가 나열된 스마트폰 화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남의 반 출입 금지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뭘 그리 열심히 보나 궁금해서.” 서화에게 기사 화면을 보여주었다. 딱히 감흥이 없어 보였다. “알고 있었어. 기사 띄울 거라 그랬거든.” 생각보다 클록터와 연이 깊나 보다. 오늘 아침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서화가 클록터와 교류한 이상 내 계약을 숨길 필요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오랜만입니다, 이류 양. 당사는 배서화 군을 제1센터의 학생 대표로 선출했습니다. 서화 군이 상당히 정중하게 사과하더군요. 저희 클록터 측의 신념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관리 부서와 나눈 대화를 전해 들었습니다.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직 서화 군은 이류 양이 저희와 계약을 맺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입니다. 당부를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계약은 계속 비밀리에 진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뒤에도 뭐라 떠들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제저녁부터 머릿속이 어지럽다. 눈을 감아도, 운동을 해도,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잡음이 섞인 것처럼 머리가 흐리다. 최악이다. 메일의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저번부터 궁금한데, 제가 왜 정보라는 겁니까? 어차피 센터 안에 있는 이상 모두가 같은 취급 당하는 거 아시잖습니까. 정말, 복잡하고 골치 아프네요. 서화에게는 계속 비밀로 하겠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어서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교실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탄식을 내뱉었다. 모든 게 짜증 났다. 배서화는 먼저 가버린 눈치다. 심해지는 두통에 가방 속 비상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물병에 남은 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한 모금이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그 탓에 알약이 목 점막에 부딪히며 넘어가는 껄끄러운 느낌이 생생했다. 기숙사로 향하는 길이 찌그러진 종잇조각처럼 보였다. 복도에 철퍼덕 쓰러지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서둘러 현관문을 닫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늘어지는데 책상 위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무선 이어폰이 올려져 있었다. 서화가 두고 간 걸까. 투명한 초록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일 이상한 점은, 왼쪽 한 짝만 올려져 있었다. 불평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자마자 갑작스러운 굉음이 들렸다.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에 눈앞이 찌릿했다. 진정하려 애쓰면서 갑갑한 넥타이를 풀었다. 어디선가 응어리가 들끓었다. 전자기기가 뜨거워지듯이 뇌가 과부하 상태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느낌이었다.
와중에 스마트폰을 교실 책상 서랍에 두고 돌아와 버렸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교실이 있는 본관과 기숙사인 별관 사이는 생각보다 멀었다. 교실에 도착해서는 책상 의자에 엎어졌다. 바닥만 보며 걸었더니 시야가 희미해져 고개를 쳐들었을 때였다. 왼쪽 귀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클록터입니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음질이 좋아서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기분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안 그래도 너희 때문에 뒤지겠는데 무슨 부탁 타령이야.” 그러자 내 심정을 파악했다는 듯이 음성이 멈추었다. 급하게 말을 내뱉은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본사에서의 만남 일정을 조금 앞당겼으면 합니다. 시행 중인 프로젝트의 기한이 급박해져 부탁드립니다.” “자기 맘대로 조정하는 거 맘에 안 들어.” “이류 양은 아직 미숙하시네요. 저희의 제안은 협박입니다.” 급격하게 가라앉은 공기가 일의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이어폰 생김새 하나는 싸구려 같은데, 내 말도 송출이 되는 거였어? “아…. 네. 뭐, 언제 방문해야 할까요?” “최대한 이른 시일 내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어떠십니까?” “그렇게 합시다.”
누군지 모를 목소리는 내가 대답을 마치자마자 사라졌다. 손바닥에 올려 둔 이어폰에서 비릿한 향이 올라왔다. 이어폰을 그대로 쓰레기통 속에 던져버리고 교실 문밖으로 나섰다. 몸 상태는 왜인지 모르게 점점 나빠졌다. 몸 곳곳에서 응고된 혈액을 녹이는 건 제법 어려웠다. 구석구석에 응어리가 남아 있었다. 너무나도 징그러웠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저앉으려던 참에 서화가 나타났다. 혐오스럽다. “뭐하냐?” ...혐오스럽다고? “표정이 왜 그래.” 무엇이? “아파? 방까지 데려다줄게. 내가 평소에 운동 좀 하라고 했지.” 숨소리가, 들숨이, 손가락 끝의 자잘한 신경에 모였다. 불안이 조금씩 고개를 들어 보였다. “네 알 바 아니지 않아?” “진지하기는. 그래, 운동 같은 거 하지 말고 쉬어.” 서화가 장난스레 웃으며 나를 툭 쳤다. 아, 왜 이렇게…. 짜증 나지. 혈액은 동맥을 타고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나의 무언가가 그것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됐다. “왜 명령질이야?” 당황할 새도 없이 뱉어졌다. 내 어깨를 쥐고 부축하던 서화가 조용해졌다.
“장난이 지나치네.” 가라앉은 목소리는 조금 전의 통화를 연상케 했다. 안 좋은 예감이 나를 덮쳤다. “친구가 그래도 되는 거야?” “나 싸우고 싶지는 않아. 가자.” 흐르는 혈액이 뜨거웠다. 살갗까지 데일 것 같아 괴로웠다. 갑자기, 뜬금없이. “최악이야.” 무미건조하게 말한 네 글자는 후회를 불러일으켰다. 서화의 얕은 미소가 사라졌다. “..그, 다 너를 위해서야.” 서화의 한마디에는 풀어쓰면 세 문단 정도 될법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나는 알았다. 한마디 후에 아무 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생긋 웃어 보이는 네가 싫었다. 썩어가던 검붉은 응어리가 역류한 혈액과 만나 터졌다. “싫어.” “그래.” 항상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가 발버둥 쳐봤자 자기 손안이라는 듯, 마음껏 투정 부리라는 것처럼. 그게 저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뭔데? “배신자.” 서화의 목을 바라보니 핏대가 서 있었다. 얼굴은 결코 쳐다보지 못했다. 호흡이 부족해서 온몸의 근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휘청거리며 복도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서화가 들릴 듯 말 듯 한 한숨을 내뱉고는 나를 따라 자리에 주저앉았다. “맞아.” 서화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게 내리꽂힌 눈동자는 반듯했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는 나에게 작은 물병을 건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갑자기 왜 이럴까,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터졌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흘렀다. 잠깐, 슬프지 않다, 슬프다? 머릿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게 뭐지…. 눈물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몸을 식히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런 나 자신이, 두려웠다. 어딘가 고장 난 괴물 같았다.
잠시 후 돌아온 서화는 내게 이온 음료를 내밀었다. “물이 없네. 이거라도 마셔. 두통약 먹었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기를 망설이자, 서화가 괜찮다고 뭐라 뭐라 다독였다. 머릿속에 담기지는 않았다. 일단 급한 대로 목을 축였다. 인공적인 복숭아 향이 씁쓸했다. 기도로 넘어간 한 방울이 기침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눈물은 주룩주룩 흘렀다. 정신이 요란했다. “쉬어.” 서화의 부축으로 기숙사에 돌아왔다. 이상하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응고됐던 혈액이 갑작스레 터져 끈적하게 눌어붙었다. 찐득한 액체가 내 숨통을 아주 조금씩 조이고 있었다. “나, 좋댔지. 맞아?” “응, 쉬어.” “그거 까먹으면 안 된다.” “너 지금 상태 안 좋아. 괜히 씻다가 쓰러지지 말고 얼른 자.”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현관문이 닫혔다. 황급히 자리를 뜨는 서화의 행동에는 걱정이 절제되어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곤혹스러웠다. 어딘가 망가졌나 보다. 휘청거리는 몸을 침대에 내던졌다. 기계의 전원을 종료하듯 기억이 끊겼다. 마주한 건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었다. 지구가 아니었다. 지구의 하늘이 눈 아플 정도로 쨍할 리 없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사는 시대의 하늘은 말이다. 형형색색으로 채워진 하늘은 페인트를 엎지른 바닥과 비슷해 보였다. 저 멀리 떠오른 형광 초록과 분홍이 섞여서 번졌다. 그것들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되어서 추적추적 내 머리카락에 달라붙었다. 소매에 묻은 색들을 문질러보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몸 곳곳에 반점처럼 늘어날 뿐이었다. 내리던 비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거대해졌다. 물감 덩어리같이 생긴 그것이 나를 감쌌다. 그 속에 깔려버렸다.
눈을 뜨니 식은땀 범벅이었다. 땀이 투명한 액체여서 다행이었다. 꿈속에서 본 분홍색이나 노랑, 초록색이었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거다. 비록 악몽을 꾸었지만.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훨씬 나았다. 공기를 들이마셔도 비릿하지 않았다. 더 이상 손가락 신경이 시리지 않았다. 회복된 상태는 곧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아스라이 보이는 기억이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다. 잊었다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도려낸 느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청명했다. 어중간한 새벽이었다. 스마트폰 알림창에는 서화의 간결한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답장을 보낸 지 조금 안 된 시점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왜 찾아와?” “환자를 두고 혼자 잠이나 자기는 그렇잖아.” 안 아프다고 중얼대봐도 들을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서화가 침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벌어진 창틈으로 들어온 서늘한 공기에 눈가가 시렸다. 서화의 따끔한 눈빛에 나는 변명하며 상태를 보고해야만 했다. 이야기를 나눈 지 어언 삼십 분째였다. 원초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하나가 이상해. 기쁨이나 슬픔을 이론적으로는 익히고 있지만 정작 내가 언제 그것들을 느끼는지 모르겠어. 모순적이지 않아? 익히고 있는 감정을 느낄 줄 모른다.” “너는 가끔 과도하게 관념적이야.” “무슨 소리야?” “그냥. 가끔은 비이성적인 면모를 갖춰. 허상에 기대도 된다고. 다 같이 현실에 집착하기보다는 혼자라도 추상적인 존재를 따르는 게 네 건강에 좋을걸.” “신이라도 믿으라는 거냐?” 이런 알 수 없는 말은 질색이었다. 친구끼리 똑 닮아서는 나를 괴롭혀, 자꾸. 복잡한 마음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서화의 목이었다. 도청 장치를 제거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사했어? 도청기, 아예 밴드로 막아버렸잖아.” “별말 안 하던데. 그랬던 거 들키면 너 때문이라 하고 도망칠 거야.” 그때 침대 옆 창문에 달아둔 커튼이 흔들렸다. 생각보다 새벽바람이 거칠었다. 연약하게 고정되어 있던 커튼의 천은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버려 시야를 가렸다. 쌓여 있던 먼지가 날려서 기침을 일으켰다.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서화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상의 곳곳에 묻은 먼지를 털기 위해 화장실에 들르려던 순간 숨어 있던 서화가 나를 놀라게 했다. “가지가지 하네!” 빵 터진 서화의 웃음소리와 놀란 심장을 부여잡은 내 고함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소음이 너무 컸는지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기숙사 방 안에 두 명이 함께 있는 건 교칙 위반이라서, 서화를 화장실에 숨기고 문고리를 돌렸다. 눈앞에는 빨간색 넥타이가 떡하니 보였다. 고개를 올리자, 저번에 만났던 클록터의 직원이 서 있었다.
“잠시 시간 되십니까?” “네?” 반사적인 대답이 튀어나온 탓에 목소리가 떨렸다. 이 사람은 내 방 안에 서화가 있다는 걸 모르겠지. 그리고 클록터와 내 관계를 서화가 알아서는 안 되고. 짧은 시간 안에 머리를 굴렸다. 다짜고짜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부탁한 후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찾아온 정적 속에서 서화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누구야?” “옆 방인데 조용히 해 달래. 이게 다, 네가 놀라게 해서 그렇잖아.” “치사하게. 소리 지른 건 너거든. 누가 개복치처럼 놀라래?” 얼른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서화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편의점 다녀온다. 방 어지럽히지 말고 거기 누워있어.” “편의점에 바친 돈만 모아도 부자 되겠어.” 서화가 재밌다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아무런 의심 없이 떨어져 준 게 오히려 고마웠다. 옷더미 사이 구겨진 모자 하나를 집어서 눌러썼다. 기숙사 복도에는 조금 전 찾아온 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서화와 마주치면 곤란하니까 직원을 데리고 기숙사 건물을 떠났다.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 안에 누구 있습니까?” “사생활까지 보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너무 새침하네. 긴장 풀어요. 죽일 거 아니니까.” 그가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얕보는 듯했다. “저번에 이어폰은 그쪽이 두고 가셨나? 학생 방에 맘대로 들어오는 건 실례 아닌가 싶은데.” “잘 전달이 됐나 보네요. 서화 군에게 부탁했습니다.” 배서화? 클록터랑 엮여서 좋을 거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왜 협조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 놓고 아무것도 모른 체를 한다. 그가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상황이 꼬였습니다. 상부에서 전달받은 내용이라 저도 확실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한 가지 알려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불안해하는 건가. 어울리지 않았다. “서화 군도 저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이요? 배서화가?” 계약이라면 서화가 강제적으로 떠맡은 학생 대표의 일과는 다른 개념일 거다.
“현재 이류 양에게 계약을 비밀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물론 저 말고 회장님이, 그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누구 편인데 계속해서 나한테 정보를 흘리는 걸까? “유치하네요.” “계약 내용은 이류 양의 위치추적 및 기타 관리. 그 정도입니다.” “맨날 센터에 갇혀 사는 처지인데 위치추적 해봐서 뭐 하겠대요?” 그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마쳤다. 기타 관리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로 숨기고 숨기는 상황이네요. 회장님이 옛날에 영화를 많이 보셨나, 이상한 거 시키시네.” “그러실 분은 아닙니다.” 장난도 진지하게 받아치네. 감정 억제라는 발상을 해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영화 보기가 취미는 아니겠지. “당신은 저를 돕는 측입니까? 왜 거슬리게 정보를 흘리는 건지 모르겠네요.” “중립입니다. 일이 질려서 말이죠. 적성에 안 맞는 회사에 들어가 버려서.” 중립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잘하면 유리한 도구가 되겠어. “기타 관리에, 제 감정 제어도 포함됩니까? 이상한 알약 하나를 먹은 적이 있어서요.” “모른다니까 그러네. 관심이 없습니다.” “은근슬쩍 말을 놓으시네요. 그리고 당신 말이야. 이모션 사이클 안 받았지?” 확신에 찬 말을 건네자, 그가 흠칫 놀라는 것이 보였다. “눈썰미 하나는 칭찬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웃으며 왼손에 찬 고급 시계를 바라보고는 일이 있다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다시 돌려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A4용지에 인쇄된 지도였다. 잉크가 부족했는지 군데군데가 뿌옜고, 모서리는 구겨져 있었다. 클록터 본사로 향하는 지도였다. 진작에 전달해 주지, 사람 헷갈리게 만드네. 분명한 건 문제의 이어폰으로 접촉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회장? 회장이 직접 나랑 접촉해야 할 이유가 있나? 생각할수록 이야기는 산으로 흘러갔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서화가 무언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내 과자 또 먹었냐?” “방치되어서 썩어가는 과자를 대신 처리해 준 거지.”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에 짜증이 올랐다. 한참을 티격태격하다가 서화가 물었다. “편의점은” 까먹어버렸다. 변명을 생각하는 침대 머리맡에 고스란히 놓여있는 지갑이 보였다. “지갑을 안 들고 가서. 못 샀어.” 바보라고 구박하는 서화를 방에서 내보냈다.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제 조심성을 길러야겠다. 너무 방심했다.
내가 품은 의문은 위치추적이었다. 당분간은 센터 안에서만 지내야겠다. 괜히 밖을 돌아다녔다가 밉보이면 곤란하다. 위치추적이라면, 칩을 이용하는 걸까? 말 그대로 ‘나’의 위치를 추적해야 할 테니 내 몸 어딘가에 이미 붙었을지도 모른다. 몸을 더듬다가 목덜미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왼쪽 귀 뒤편에 엄청나게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붙어 있었다. 씻느라 물이 흘렀는데도 멀쩡했다. 정말 치밀했다.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➃ 붉음과 어깨를 나란히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