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등장곡은 고작 몇 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관중석의 분위기를 바꾸고, 등장하는 이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등장곡으로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름 달란트(재능)'를 활용한 등장곡이 있다. SSG 랜더스 김민은 본인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컨츄리 꼬꼬의 'Gimme! Gimme!'를 등장곡으로 택했다. 키움 히어로즈 전준표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 구준표와 이름이 같다는 점을 활용해 OST '파라다이스'를 등장곡으로 사용한다.
본인의 등장곡 응원 동작을 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강민호. 삼성 SNS 팬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높은 호응을 얻는다. 두산 베어스 양의지는 박재범의 '좋아'를 등장곡으로 택했다. '양의지가 좋아~'로 개사해 팬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면서 선수의 등장이 하나의 응원 구호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 강민호가 타석에 서면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울려 퍼지고 팬들은 하트를 날리며 '강민호'를 외친다.
반대로 팬들이 함께 즐기기 어려운 곡은 좋은 등장곡으로 자리 잡기 쉽지 않다. 응원 구호를 붙이기 어려운 외국 힙합, 가사가 복잡해 떼창이 어려운 곡, 야구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발라드 등은 선수의 취향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팬들과 호흡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등장곡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취향과 선택이다. 기분 전환을 위해 바꾸기도 하고,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 새로운 곡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선택 자체를 두고 팬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노래를 함께 부르고 즐기는 것은 결국 팬들이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는 등장곡을 두고 "선수 개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농담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 KIA 제공 실제로 등장곡을 바꿨다가 팬들의 간곡한 요청에 다시 변경한 사례도 있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은 기분 전환을 위해 등장곡을 바꿨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타임밤(Timebomb)'으로 돌아와 달라", "타임밤을 석방하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김도영의 타석에 '타임밤'이 울려 퍼지자 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팀을 옮겨도 자신의 등장곡을 지키는 선수도 있다. 손아섭(두산)은 장미여관의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2014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이에 손아섭은 '자이언츠 오빠', '다이노스 오빠', '이글스의 오빠'에 이어 '베어스의 오빠'가 됐다. 손아섭은 구단 유튜브를 통해 "등장곡만큼은 제 색깔을 버리면 안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좋은 등장곡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선수와 잘 어울려야 하고, 이름이나 캐릭터를 살릴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팬들이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야구장에서 울려 퍼지는 10초 남짓한 음악만 들어도 어떤 선수인지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등장곡은 이미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