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톱타자는 중심타선에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출루에 주력하고 센스있는 주루 플레이로 투수를 흔들어 놓으면서 공격에 활로를 찾는다. 그러나 텍사스의 추신수(32)처럼 출루율은 물론 장타력을 겸비한 '신개념 리드오프'가 점차 각광받는 추세다. 올 시즌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두산의 톱타자 민병헌(27)이 10할대 OPS(출루율+장타율)로 활약하며 전통적인 리드오프의 개념을 탈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로야구 제10구단' kt에도 신개념 리드오프로 팀 타선을 이끄는 선수가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김사연(26)이 그 주인공이다. 김사연은 29일 현재 타격 전 부분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최다안타(55개) 1위, 타율(0.374) 2위다. 물론 톱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지는 도루도 20개를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퓨처스리그 개막전 경찰야구단과의 경기에서는 퓨처스리그 21번째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며 시즌 초부터 돌풍을 예고했다. 비록 퓨처스리그에서의 성적이지만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김사연은 자신의 이름처럼 사연이 많은 선수다. 세광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한 그는 2007년 신고선수로 한화에 입단했지만 성장세가 크지 않았고 부상까지 겹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결국 군입대 후 팀에서 방출을 당하며 아픔을 겪게 된다. 이후 또다시 프로의 문을 두드리며 넥센의 신고 선수로 입단했지만 1군 무대로의 진입은 철옹성같았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0.290, 도루 27개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한창 상승세에 있던 넥센의 타선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결국 프로구단 입단 후 단 한 차례도 1군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김사연은 "한 때는 1군에 콜업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한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김사연에게 kt는 순탄치 않았던 야구 인생의 반전을 가져다줄 기회의 팀이다. kt는 김사연의 빠른 발과 타격센스를 높이사 넥센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풀린 그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했다. 본인에게 있어서도 성장의 계기가 됐다. 아직 시즌을 ⅓밖에 소화하지 않았지만 모든 면에서 지난해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사연은 "kt에 와서 새로운 코치님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테이크백을 짧게 가져가는 등 기술적으로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무엇보다 이숭용 코치님께 투수와의 수싸움과 타이밍 잡는 법을 조언들었다. 160일간의 전지훈련을 통해 새로운 야구가 몸에 배면서 조금은 나아진 것을 느낀다."며 당차게 전했다.
특히 '공격형 1번 타자'는 김사연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김사연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를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빠른발과 주루플레이를 들었다. 이미 20개의 도루로 자신이 지난해 기록한 27개를 넘어서는 건 시간 문제다.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한 개막 첫 경기에서는 홈스틸도 성공시키는 등 단지 빠른발뿐 아니라 센스까지 겸비했다. 거기에 이번시즌엔 장타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번 시즌 홈런 5개와 2루타 12개(리그 3위)를 치고 있다. 겨우내 웨이트트레이닝에 충실했고,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배운 기술도 숙성되고 있다. 김사연은 자신만의 야구를 만들려고 고민하던 차에 이숭용(43) 타격 코치의 한마디가 새로운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숭용 코치님께서 지난 캠프 때 공격적인 1번 타자가 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마음에 딱 와닿았다. 평소 연습배팅을 해도 비거리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발도 빠르다고 자신한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이거다' 싶은 마음으로 계속 노력했다. 요즘 민병헌가 내가 생각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라. 물론 1군에서 활약하는 선수와 당장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언젠가 같이 경쟁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고의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김사연이지만 '만족'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운지 오래다. 벌써 데뷔 8년차. 9년차가 되는 내년에야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현재 손에 티켓을 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온 시기라 더욱 마음을 다잡고 있다. kt가 외국인 선수와 FA, 신인선수, 자신과 같은 2차 드래프트 등을 통해 1군 진입전 다시 한 번 전력보강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김사연은 "만족을 하면 결국 성적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타율 4할에서 점점 떨어져 3할7푼까지 떨어졌지 않나. 끊임없이 다시 채워야겠다는 욕심을 가져야 유지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팀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선수가 되서 다가올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도록 하겠다"며 각오을 전했다.
김사연은 과거 장종훈(46) 한화 코치를 우상으로 여겼다. 고등학교 선배인데다 신고선수 출신 대스타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같은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소 생각이 달라졌다. 김사연은 "지금은 장종훈 코치님이 우상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누구를 따라하기보다는 내 야구를 하고 싶다. 누군가를 롤모델로 하면 그 선수를 따라가게 되더라. 그 선수만 보면서 파헤치고….그러다 보면 나만의 특색이 있는 야구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찾고 있는 과정이지만 나만의 야구를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며 힘주어 말했다.
김사연은 내년 시즌 신생구단 kt의 선전에 핵심이다. 그가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1군무대에서 자신의 목표처럼 '신개념 리드오프'로 활약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