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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전술에서 유래한 축구 선수의 셔츠 번호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팀 스포츠 선수들의 셔츠에는 번호가 표시되어 있다. 이를 지칭하는 이름도 꽤 다양해, 셔츠 번호, 저지(jersey) 번호, 스쿼드(squad) 번호, 유니폼 번호 등으로 불린다. 번호가 붙게 된 계기는 유사한 셔츠를 입은 선수들을 쉽게 구분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식별하기 위해 설계된 번호는 정서적인 애착을 거쳐 자부심과 명예의 원천이 되었고 때로는 미신과 연관되었다. 일부 스포츠에서는 번호로 선수의 포지션을 나타냈다. 축구가 대표적인 예다.아울러 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함께 어떤 선수에게는 번호가 자체 브랜드로 발전했다. 포르투갈의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는 그의 이름 이니셜과 셔츠 번호를 따서 CR7을 만들었다. 잉글랜드 축구의 공식 경기에서 셔츠 번호의 첫 등장은 1933년 FA컵 결승전 에버튼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의 대결에서 나왔다. 관중, 심판, 미디어 담당자가 선수들을 잘 식별할 수 있도록 에버튼은 1~11번, 맨시티는 12~22번을 셔츠에 새겼다. 당시 에버튼에는 딕시 딘(Dixie Dean, 딘은 1927~28시즌 1부 리그에서 60골을 넣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이라는 전설적인 공격수가 있었는데, 9번이 그에게 배정됐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9번은 골잡이인 센터 포워드를 상징하게 된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3-5-2와 4-4-2, 2000년대에 인기를 얻은 4-2-3-1대신 100여 년 전 축구에서는 2-3-5가 대세였다. 축구의 전술 역사상 최초의 포메이션이었던 2-3-5는 선수들 위치의 모양을 따서 피라미드라고 불렸다. 선수들의 포지션을 나타내는 셔츠 번호도 2-3-5 전술에서 영향을 받았다. 골키퍼는 1번을 달고,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순으로 낮은 번호에서 높은 번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또한 교체 선수는 더 큰 번호를 달았다. 1993년 잉글랜드축구협회(The FA)는 선발 라인업에 1~11번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정된 스쿼드 넘버로 전환했다. 이러한 스쿼드 번호는 포지션에 따라 부여될 때도 있고, 선수 이름의 알파벳 순서나 선수가 선호하는 번호로 정해질 때도 있다.현재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들이 1~99번 사이의 번호를 착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보통 숫자가 큰 번호를 단 선수는 신인이거나 팀 내 입지가 확실치 않은 경우다. 또한 스쿼드 번호가 높은 숫자에서 낮은 숫자로 변경될 경우는 해당 선수가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는 데뷔 시즌인 1998~99시즌 28번을 달았다가, 2년 후 17번으로 바뀌었다. 2004~05시즌 에밀 헤스키가 리버풀을 떠난 후 제라드는 헤스키의 번호인 8번을 꽤 차게 된다. 신인 때 부여받았던 스쿼드 번호를 끝까지 고집하는 선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첼시에서만 19시즌을 소화한 센터백 존 테리다. 테리는 26번으로 첼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센터백의 넘버인 5~6번을 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첼시에서 언제나 26번을 착용했다. 그런 테리도 국가대표팀에서는 6번을 달 수밖에 없었다.개인적인 이유로 특정 번호를 선호하는 선수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발로텔리는 인터 밀란에서 신인 시절 스쿼드 번호 36~50번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45번을 선택했는데, 4+5=9이고, 9는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의 번호였기 때문이다. 그는 45번을 달고 초반 4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는 행운을 누렸다. 그 후 발로텔리는 맨시티, 리버풀, AC밀란에서도 45번을 달고 뛰었다. 특정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번호를 달고 경기하는 경우도 있다. 2008년 리버풀이 유럽 문화의 수도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에버튼의 제임스 비티와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의 승인을 받고 특별한 번호를 달았다. 2006년 3월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비티와 제라드는 2008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번호이자 한자리 숫자인 8이 아닌 두 자리 숫자 08번을 착용했다.과거와 달리 선수들의 스쿼드 번호는 더 이상 포지션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메이커로서 10번이 안성맞춤이었던 지네딘 지단은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각각 21번과 5번을 착용했다. 그럼에도 특히 7~11번은 뛰어난 선수만이 달 수 있는 특별한 번호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8.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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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위 에버턴에 덜미 잡힌 리버풀…실망 폭발한 판 다이크, 동료들 향해 “정말 우승 원하나?”

리버풀이 에버턴에 덜미를 잡혔다. 프리미어리그 역전 우승 꿈이 한발 더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리버풀은 25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구디슨파크에서 열린 2023~24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 순연 경기에서 에버턴에 0-2로 졌다.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 에버턴 원정에서 패한 건 2010년 10월 이후 14년 만이다. 에버턴은 프리미어리그 16위에 머물고 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승점 74로 리그 2위에 랭크됐던 리버풀은 승리했을 경우 선두 아스널(승점 77)과 승점을 나란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일격을 당하면서 추격에 실패했다. 오히려 3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73)에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맨시티는 리버풀, 아스널보다 2경기를 덜 치러 역전 기회가 더 있다. 리버풀은 에버턴전에서 볼 점유율 80%를 가져갔다. 그러나 전반 27분 만에 골을 내준 게 패착이었다. 에버턴의 프리킥 상황 이후 문전 혼전 상황에서 리버풀의 맥 앨리스터가 공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는 수비 실수를 하면서 실점했다. 제러드 브랜스웨이트가 틈을 놓치지 않고 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13분에는 도미닉 칼버트-르윈이 헤더로 추가 골을 넣었다. 코너킥에 이은 헤더 한방으로 점유율에서 밀리면서도 골을 넣었다. 리버풀은 전반 5분 만에 에버턴에 페널티킥을 내줄 뻔했으나 VAR 판독 결과 알리송 골키퍼의 파울이 나오기 전 오프사이드가 있었다는 게 판독돼 페널티킥이 취소됐다. 초반부터 기회를 만들었던 에버턴은 결국 승점 3점을 가져갔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리버풀의 수비수 버질 판 다이크가 경기 후 동료들의 우승 의지에 대해 강한 의심을 표하며 “그들은 정말 우승을 원하는가?”라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판 다이크는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런 식으로 플레이하고, 상대를 이겨내지 못한 채 프리킥 기회를 준다면 우린 우승할 기회가 없다. 여러 모로 실망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강등권에 있는 팀을 상대로는 더 잘해야 했다”고 말했다. 경기 후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14년 만에 리그 머지사이드 더비 원정에서 패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을 자주 이야기해줬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났고, 패배를 돌이킬 수 없다. 사과드린다”고 했다. 리버풀은 올시즌 리그 4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이은경 기자 2024.04.2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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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EPL에서 자제해야 하는 응원 도구는?

2009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세르비아와 A매치전을 가졌다. 이 경기는 대표팀이 런던에서 평가전을 가질 때 주로 이용하는 풀럼의 홈구장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열렸다. 당시 필자는 퍼트니 브리지 지하철역에서 구장으로 걸어가던 중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을 여러 번 마주쳤다. 눈길을 끄는 상품도 있었다. 바로 코리아와 세르비아가 반반씩 섞인 스카프였다.두 팀을 섞어 놓은 스카프에 필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름 수긍이 갔다. 한국과 세르비아는 축구 라이벌도 아니고, 특히 그 경기는 양국 간에 열리는 첫 번째 공식 경기이자 친선전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일〮전에 앞서 한국과 일본이 섞인 스카프를 판다면 짜증이 났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프리미어리그(EPL)의 라이벌 클럽 2개를 섞어서 스카프를 만든다면, 현지 팬들은 얼마나 화가 날까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이렇게 경기를 갖는 두 팀을 섞어 만든 스카프를 영어로 ‘half-and-half scarves(반반 스카프)’라고 부른다. 반반 스카프의 등장은 현대 축구에 나타난 새로운 특징 중 하나다. 원래 반반 스카프는 특별한 경우에만 등장했다. 컵 파이널, 자선 경기, 국가 대항전, 또는 리버풀과 셀틱같이 특별한 관계에 있는 클럽에 한정해서 쓰인 것이다. 이렇게 특정한 경우에만 보이던 반반 스카프는 2010년대 초반 이후 EPL 경기장에서 급속하게 늘어난다. 현재는 리그의 모든 경기에서 이런 스카프를 구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반반 스카프의 대중화는 현대 축구의 소비자가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PL은 더 이상 영국인들만의 리그가 아니다. 수많은 외국 팬들이 EPL을 보기 위해 영국을 찾고 있다. 2019년 올드 트래포드와 안필드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만 44만 명에 달했는데, 반반 스카프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게다가 영국의 많은 젊은 팬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 다른 축구관을 가지고 있다. 유럽클럽협회(ECA)가 2020년 축구팬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24%의 영국인이 두 개 이상의 클럽을 서포트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로 한정하면 이 숫자는 크게 올라간다. 2019년 영국의 16세~24세를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46%가 최소 2개 이상의 클럽을 서포트한다고 나왔다. 3개 이상의 클럽을 응원한다는 비율도 무려 27%에 달했다. 또한 스타 선수의 존재 여부도 젊은 세대에게는 중요한 요소였다. 기성세대의 ‘찐팬’이라면 뒷 목 잡을 일이 젊은 세대에는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반반 스카프의 착용을 두고 찬반양론도 활발하다. 찬성하는 쪽은 “티켓을 기념으로 간직하듯이, 경기 날짜가 인쇄된 반반 스카프는 그 경기를 봤다는 기념품”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더비 경기를 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라온 외국 팬에게 이러한 스카프가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축구 문화와 소비자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도 말한다.반대하는 쪽은 “기념품으로는 반반 스카프보다 매치 데이 프로그램이 더 좋다”, “반반 스카프 대신 두 팀의 스카프를 사는 것이 더 좋은 기념품이다”, “진짜 축구팬이라면 한 팀만 응원해야 한다”, “품위를 가져라”, “반반 스카프는 중산층과 돈 많은 외국 관광객이 노동자들의 스포츠였던 축구를 빼앗아 갔다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전통적으로 영국인이 생각하는 축구팬은 단순히 어떤 브랜드의 고객이 아니다. 축구는 사회, 문화, 관습적으로 팬들과 함께 하며 그들 삶의 일부다. 하지만 반반 스카프는 팬을 단순한 소비자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은 화가 나는 것이다. 코로나 엔데믹 시대를 맞아 영국 축구장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숫자가 늘고 있다. 비록 팬 문화는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찐팬들은 반반 스카프(특히 라이벌 팀이 합쳐진)를 끔찍이 싫어한다. 우스꽝스러운 반반 스카프의 등장으로 라이벌 클럽 간의 열기는 밋밋해졌고, 이는 축구의 근본을 흔든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영국 축구장을 방문한다면 경기에 좀 더 집중하면 좋겠다. 셀카도 적당히 찍자. 설사 반반 스카프를 구입하더라도 이는 장식용 기념품일 뿐, 실제로 두르고 다니는 우를 범하지 말자.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0.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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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리버풀 FC vs. 에버튼’, 비틀즈의 선택은?

리버풀은 잉글랜드의 북서부 머지사이드(Merseyside) 주에 위치한 도시다. 19세기의 리버풀 항구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을 담당했고, 한때 리버풀은 런던보다 부유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석탄에서 석유로 산업 구조가 변하면서 도시는 빠르게 몰락했다. 21세기의 리버풀은 도시 재생 사업 등을 통해 암흑기에서 벗어났다. 경제적으로도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게다가 유럽연합이 리버풀을 2008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할 만큼, 이 항구 도시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한다.리버풀은 음악과 축구의 진정한 중심지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다. 이와 연관된 세계적인 브랜드 2개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하나는 리버풀FC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었던 밴드 비틀즈다. 따라서 이 두 브랜드가 연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은 비틀즈가 얼마나 축구를 사랑했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 반영하듯 구글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비틀즈가 리버풀FC를 지지했는지 여부다. 비틀즈 4명의 멤버는 모두 리버풀 출신이다. 축구의 도시 리버풀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 리버풀FC와 에버튼의 연고지다. 이 도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로 하는 질문이 있다. “Are you a red or a blue?(당신은 레드입니까, 블루입니까?)” 즉 리버풀FC(레드)와 에버튼(블루) 중 누구를 응원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비틀즈는 과연 레드와 블루 중 누구를 사랑했을까?우선 비틀즈가 레드를 응원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1965년 빌 샹클리 감독의 리버풀은 FA컵 결승전에 올랐다. 이에 비틀즈는 멤버 전원의 이름으로 샹클리에게 전보를 보내 행운을 빌었다. 이 전보는 지금도 리버풀에 위치한 샹클리 호텔에 전시되어 있다. 1967년 비틀즈는 8집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을 발표했다. 이 앨범 커버 삽화에 들어간 유명인 중 축구 선수는 리버풀FC의 공격수 앨버트 스터빈스(Albert Stubbins)가 유일했다. 커버에 삽입될 유명인 리스트를 결정할 때 링고 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3명의 의견이 반영됐고, 존 레논이 스터빈스를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틀즈 역사학자 레이 오브라이언에 의하면 스터빈스가 포함된 이유는 존보다는 리버풀 팬이었던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레논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레논은 앨범 커버에 ‘예수 그리스도’와 ‘아돌프 히틀러’의 사진도 포함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음반회사 EMI는 이 제안을 거절했는데, 예수의 경우 레논이 과거에 한 인터뷰가 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1966년 레논은 런던신문 이브닝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이 예수보다 비틀즈에 더 빠져 있고, 기독교 신앙은 쇠퇴하고 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이 발언은 영국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기독교계가 크게 반발했다. 일부 라디오 방송국은 비틀즈의 음악을 틀지 않았고, 기자회견은 취소되었으며, 시위도 벌어져 밴드의 앨범을 태웠다. 이에 레논은 “자신과 밴드를 그리스도와 비교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며 거듭 사과했다. 그러나 레논의 경솔한 발언은 결국 그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1980년 12월 비틀즈의 팬이었던 마크 채프먼이 레논을 향해 권총 4발을 쏜 것이다. 채프먼의 살인 동기 중 하나가 ‘레논의 신성모독’이었다.한편 비틀즈는 1970년 그들의 12번째 이자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Dig It’이란 노래에는 “Matt Busby, dig it”이란 가사가 있다. ‘Matt Busby(맷 버즈비)’는 리버풀FC의 선수였기에, 비틀즈가 레드를 응원했다는 가설도 있다. 하지만 버즈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만든 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이렇게 추측만 있을 뿐 비틀즈가 레드를 응원했다는 구체적 물증은 없다. 게다가 비틀즈가 레드 혹은 블루를 지지한다고 밝히면, 라이벌 클럽 팬들로부터 배척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대중의 기대와 달리, 정답은 ‘비틀즈의 멤버 4명은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이다. 특히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여기에 속한다. 해리슨은 어느 팀을 지지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There are three teams in Liverpool and I prefer the other one(리버풀에는 세 팀이 있고 나머지 한 팀이 더 좋습니다)”라는 애매한 대답으로 특정 팀과 연계되는 것을 피했다.흥미롭게도 링고 스타는 아스날 팬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링고는 런던 출신의 아스날 팬이었던 양아버지와 함께 리버풀에 원정 온 ‘거너스(The Gunners, 아스날의 애칭)’ 경기를 보러 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링고도 열정적인 팬과는 거리가 멀었다. 폴 메카트니는 공개적으로 축구와 연관된 행보를 보인 유일한 비틀즈 멤버다. 가족의 영향으로 블루가 됐다는 폴은 어렸을 때 축구를 즐겼으나, 소질은 없었다.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던 폴은 TV로 축구를 보는 것은 즐기나, 열렬한 팬은 아니라고 밝혔다. 게다가 폴은 웸블리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리버풀 FC에서 선수와 감독을 지낸 케니 달글리시를 만난 이후, 레드도 응원하게 됐다고 한다. 폴은 기본적으로 블루와 레드 둘 다 응원하지만, 두 팀이 만나며 에버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비틀즈의 멤버 중 리버풀FC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밴드는 분명 축구에 열광하는 도시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비틀즈는 특정 클럽이 아닌 리버풀 도시 자체를 상징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09.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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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턴, 현수막 협박에도 불구하고 ‘라이벌’ 베니테즈 감독 선임 결정

에버턴이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과 3년 계약을 맺었다. 공식 임명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영국 ‘가디언’은 30일(한국시간) 에버턴이 무수한 반대를 무릅쓰고 베니테즈 감독을 에버턴 감독으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구단 공식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말했다. 베니테즈 감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에버턴의 머지사이드주 지역 라이벌인 리버풀 감독직을 수행한 바 있다. 그렇기에 팬들의 반발이 거세다. 게다가 2007년 에버턴과 리버풀의 ‘머지사이드 더비’ 직후 에버턴을 두고 ‘작은 클럽’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 에버턴 팬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구단의 베니테즈 감독 선임 결정은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협박 현수막도 걸렸다. 가디언은 지난 29일 구디슨 공원 근처 집 근처에 “우리는 당신이 사는 곳을 안다”는 협박 현수막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이후 조사 결과 현수막이 걸린 장소는 베니테스 감독의 거주지는 아니었다.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파하드 모시리 에버턴 구단주가 베니테즈 선임을 강행한 데는 감독 석이 공석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카를로 판타스티코(Carlo Fantastico)’라는 애칭까지 붙으며 에버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갑작스럽게 에버턴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했다. 역대 에버턴 감독 중 가장 큰 성과를 낸 감독이었고 이에 팬들도 그를 존경했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에버턴보다 재정 상태와 구단 순위 면에서 월등한 레알 마드리드로의 복귀를 택했다. 이후 에버턴은 데이비드 모예스, 누누 산투 등 여러 감독과 컨텍을 시도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편 베니테즈 감독은 리버풀에서 2004~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2006 잉글랜드축구협회(FA) 우승을 이룬 바 있다. 서지수 인턴기자 2021.06.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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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첼로티 감독 "리버풀이 두렵다, 그래서 잡을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더비, 리버풀과 에버턴의 '머지사이드 더비'가 펼쳐진다. 오는 21일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서 '머지사이드 더비'가 열린다. 현재 순위가 리버풀이 6위, 에버턴이 7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더비를 예상하고 있다. 경기를 앞둔 카를로 안첼로티 에버턴 감독은 결연한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나는 수많은 더비를 경험했다. 밀라노 더비, 마드리드 더비를 해봤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더비는 스페셜한 경기다. 더욱 압박감이 있다. 또 더욱 큰 두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안첼로티 감독은 이 두려움을 이용해 리버풀을 잡겠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그는 "두려움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당신 앞에 사자가 있는데 두려움이 없다면 고양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갈 것이다. 그것은 사자다. 두려움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두려움을 가지고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두려움을 가지고 리버풀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두려움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첸로티 감독은 "동기부여를 위해 두려움이 필요하다. 리버풀을 두려워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집중력 또한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경기에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가 가진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가 큰 압박을 받을 필요는 없다. 과거 더비에서 최악의 결과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 지금의 우리가 조금 더 나아졌다고 보여주면 된다. 더 좋은 기회와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최용재 기자 2021.02.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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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축구, 그 이상의 축구 '올드 펌 더비'

라이벌 팀 간의 경기는 선수나 팬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축구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 기반을 둔 라이벌 팀 간의 경기를 ‘로컬 더비(local derby)’ 혹은 줄여서 ‘더비’라고 부른다. 영국 영어는 다비(DAR-bee)로 발음한다. 잉글랜드에는 유명한 더비 경기가 꽤 많다. 특히 아스널과 토트넘의 북 런던 더비와 리버풀과 에버튼의 머지사이드 더비가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이벌전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엘 클라시코는 문화·정치적 차이를 배경으로 한 두 명문 클럽의 대결로 유명하다. 하지만 두 도시간의 거리는 차로 7시간이 걸릴 정도로 멀어서, 엄밀히 말해 엘 클라시코는 더비 경기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치열한 더비는 올드 펌(Old Firm)이다. 올드 펌 더비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도시 글래스고우를 연고로 하는 셀틱 FC와 레인저스 FC의 라이벌전을 의미한다. 스코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두 클럽 간의 경쟁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6세기에 나타난 종교개혁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가톨릭에서 신교의 한 교파인 장로교로 변한다. 1840년대 대기근의 여파로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건너온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글래스고우의 동쪽에 정착했다. 당시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성가신 존재였다. 특히 이들의 대부분은 가톨릭을 믿었기 때문에, 신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스코틀랜드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로교를 믿는 원주민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주택과 고용 문제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다. 그룹 간의 갈등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통적으로 셀틱은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가톨릭교도의 지지를 받아왔다. 또한 정치적으로 셀틱 팬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노동당을 지지한다. 글래스고우의 남쪽에서 1872년 창단된 레인저스의 지지층은 스코틀랜드의 원주민이자 신교도 들이다. 전통적으로 팬들은 레인저스가 영국 왕실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연합을 포용하는 영국 클럽(British club)인 점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치적으로 이들은 보수당을 지지한다. 레인저스는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인 선수와 계약하지 않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 레인저스는 셀틱 출신의 가톨릭 신자 모 존스턴과 계약하며 이러한 관습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팬들은 홈구장 밖에 모여 자신들의 시즌 티켓을 불태우며 강력히 항의했다. 심지어는 선수단 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존스턴과의 계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레인저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올드 펌, 엘 클라시코와 네덜란드의 아약스와 페예노르트 라이벌전을 경험한 스웨덴 출신의 헨릭 라르손은 올드 펌 더비를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으로 꼽았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더비,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의 라이벌 전과 올드 펌을 경험한 브리안 라우드럽도 라르손의 말에 동의했다. 두 클럽의 팬들은 라이벌 의식을 넘어 적대감을 오랫동안 보여왔다. 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 간의 결혼도 드물었다. 올드 펌 더비 경기가 열리는 주말에는 평소보다 폭행사건이 9배가 증가하고, 1996년과 2003년도 사이에만 더비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8명의 팬이 숨졌다. 이러한 상황은 축구 스폰서십에 참가하려는 기업들에게도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스폰서십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팀에 대한 서포터스들의 열정이 스폰서인 기업에 장기적인 혜택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도시가 반으로 나뉘어 서로 적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이 한 클럽만 후원하면, 상대편 팀의 서포터스들을 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셀틱과 레인저스는 셔츠 스폰서십을 1984년 처음 도입했다. 유리 전문 기업 ‘CR 스미스’는 두 클럽을 동시에 후원했다. 이러한 공동 후원(joint sponsorship)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통신회사 NTL과 맥주회사 ‘칼링과 테넌츠’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올드 펌 듀오인 레인저스와 셀틱의 셔츠 스폰서였다. 유럽의 어떤 라이벌 클럽들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러한 조인트 스폰서십을, 셀틱과 레인저스는 네 번이나 가진 것이다. 두 클럽 간의 라이벌 의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스폰서 기업들은 한 클럽만 후원할 경우 라이벌 클럽 팬들한테 배척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조인트 스폰서십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통신회사 NTL의 공동 후원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스폰서십을 통해 후원사의 인지도는 확실히 올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공동 후원사인 NTL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좋기도 하지만 싫었다”고도 한다. 특히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거나 열정적인 팬일수록 이러한 공동 스폰서인 NTL에 대해 거부감을 더 느꼈다. 결국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에 따른 수익 창출에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지 못한 NTL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2011~12시즌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레인저스는 법정관리를 신청하였고, 승점 삭감 등의 중징계를 받았다. 새로운 구단주가 레인저스를 인수했다. 하지만 시즌이 종료된 후 클럽의 거취를 놓고 벌인 투표에서 레인저스는 4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하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낸 레인저스는 4년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스코틀랜드 축구의 최고 히트 상품인 올드 펌 더비는 열리지 못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2.03 06:00
축구

'조금 늦어져도 괜찮아' 리버풀, 30년 동안 쌓인 우승의 한 풀러 간다

30년 만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100일 동안 중단됐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재개되면서 리버풀의 절박한 도전도 마지막 장에 접어 들었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3월 중단됐던 EPL이 18일(한국시간) 열린 애스턴 빌라와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경기로 2019~2020시즌 잔여 일정을 재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주어진 시간이 촉박해 리그 종료일까지 약 40일 동안 주중, 주말 모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 가혹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채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과 선수단의 체력 문제 등 여러 가지 우려되는 부분들은 있지만, 재정 문제에 부딪혔던 구단들이나 축구에 목말랐던 팬들 모두 EPL 재개를 반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리그 재개가 가장 반가운 팀은 단연 리버풀이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지난 3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리버풀은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리그 18연승을 달리며 압도적 1위로 승승장구하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우승을 채 확정 짓지 못한 채 리그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EPL 조기 종료 여부가 화두에 오를 때마다 올 시즌 순위 결정 문제와 함께 리버풀의 우승을 인정해야 하느냐, 혹은 시즌을 무효로 돌려야 하느냐 등의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시즌 취소·무효론이 대두될 때마다 자력 우승까지 단 2승 만을 남겨둔 리버풀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EPL은 무관중 경기 체제로 재개했고 아직까지 순조롭게 경기를 치르고 있다. 누구보다 리그 재개를 간절히 기다렸던 리버풀 역시 22일 지역 연고 라이벌 에버턴과 '머지사이드 더비'를 통해 경기를 치렀다. 오래 기다린 경기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리버풀이 만약 이날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우승까지 단 1승, 만약 23일 열린 맨체스터 시티-번리전에서 2위 맨시티가 패했다면 바로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버풀은 0-0 무승부에 그치며 승점 1점을 추가하는데 그쳤고, 맨시티는 보란 듯이 번리를 5-0으로 완파하며 리버풀의 조기 우승 확정을 방해했다. 여전히 리버풀(승점83)과 맨시티(승점63)의 격차는 승점 20점으로 광활하지만 마음 바쁜 리버풀로선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는 결과다. 더비 라이벌이다보니 치열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곤 해도, 리버풀의 경기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3개월이나 중단됐다가 재개한 뒤 치른 첫 경기라서인지 리버풀이 자랑하던 위력적인 공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위르겐 클롭 감독은 "시즌을 다시 시작할 때 생길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에버턴전에서 승리했다면 리버풀로선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클롭 감독과 리버풀은 여유가 있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맨시티가 전승을 하더라도 리버풀은 그 중 2승만 챙기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2년 EPL이 출범한 뒤 한 번도 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던 리버풀의 '한'이 드디어 풀릴 시간이 다가온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6.24 06:00
축구

리버풀, 강등 위기 왓포드한테 한 방 먹었다

‘지는 법을 잊었다’던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버풀이 끝내 쓰러졌다. 상대는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던 ‘말벌군단’ 왓포드였다. 말벌의 독침에 찔려 주저앉았다. 각종 기록 수립 행진도 막을 내렸다. 리버풀은 1일(한국시각) 영국 왓포드 비커리지 로드에서 열린 2019~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8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왓포드에 0-3으로 완패했다. 전반을 0-0으로 마친 리버풀은 후반에만 세 골을 내줬다. 후반 9, 15분 왓포드 공격수 이스마일라 사르(22·세네갈)에게 연속 실점했고, 후반 27분 트로이 디니(22)에게 한 골을 더 내줬다. 모하메드 살라(28·이집트)-호베르투 피르미누(29·브라질)-사디오 마네(28·세네갈)의 리버풀 공격진, 이른바 ‘마누라 트리오’가 모두 나서고도 무득점에 그쳐 패배의 뒷맛은 더욱 썼다. 이날 패배로 리버풀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공들여 쌓아 올리던 각종 기록은 와르르 무너졌다. 개막 후 27경기 연속 무패(26승1무), 최근 18연승,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44경기 무패(39승5무) 행진이 ‘올 스톱’됐다. 아스널이 2004년 작성했던 시즌 무패 우승(26승12무)과 최다 연속 무패(49경기) 기록은 추월을 눈앞에 두고 멈춰섰다. 희비를 가른 건 집중력 차이였다. 시즌 조기 우승을 눈앞에 둔 리버풀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몸이 무거웠다. 눈에 띄는 실수도 잦았다. 반면, 강등권에서 생존 경쟁 중인 왓포드는 선수들 눈빛이 날카로웠다. 왓포드는 올 시즌 한 번도 지지 않은 팀을 상대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공 점유율은 71%대 29%로 리버풀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하지만 슈팅은 14 대 7로 왓포드가 앞섰다. 리버풀의 세 차례 실점 장면 모두에서 수비진 실수가 두드러졌다. 첫 실점에선 왓포드 아담 마시나(26·이탈리아)의 스로인이 압둘라예 두쿠레(27·프랑스)를 거쳐 사르의 슈팅으로 연결됐다. 이 과정에서 리버풀 선수 다섯 명이 패스 루트 주변에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실점 장면도 비슷했다. 왓포드 윌 휴즈(25)가 발뒤꿈치로 패스한 공이 오른쪽 터치라인을 타고 흘렀다. 리버풀 선수들은 이를 그저 지켜봤다. 디니가 공을 잡아 바로 최전방에 찔러줬고, 사르가 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추가골로 연결했다. ‘골리앗’ 리버풀의 약점을 파고든 왓포드의 전략도 돋보였다. 경기 내내 최전방 공격수 디니가 리버풀 중앙수비수 데얀 로브렌(31·크로아티아)을 자극해 거친 몸싸움을 유도했다. 로브렌의 실수를 유발해 슈팅 기회를 만들려는 의도였다. 경기 후 디니는 “부상으로 빠진 리버풀 주전 센터백 조 고메즈(24) 대신 출전한 로브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작전을 짰다. 로브렌을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파트너이자 월드클래스 수비수 버질 판 다이크(29·네덜란드)보다는 수월했다”고 말했다. 위르겐 클롭(53·독일) 리버풀 감독도 완패를 시인했다. 그는 “누구나 진다. 패배를 기다린 건 아니지만, 분명 언젠가 일어날 일이다. 기록 도전은 끝났고, 우리는 이제부터 비로소 우리 축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리버풀이 털고 일어설지는 미지수다. 근래 리버풀 경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지난달 16일 노리치시티를 상대로 고전한 끝에 1-0으로 이겼다. ‘경고음’의 시작이었다. 사흘 뒤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에 0-1로 졌다. 지난달 25일 정규리그 웨스트햄전에서는 5골 난타전 끝에 3-2로 간신히 이겼다. 향후 일정도 리버풀에 불리하다. 5일 첼시와 FA(축구협회)컵 맞대결을 시작으로,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12일), 지역 라이벌 에버턴과 ‘머지사이드 더비’(17일)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정규리그 우승의 9부 능선을 일찌감치 넘은 리버풀에게 더 중요한 과제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제패"라면서 "무패 우승 등 대기록 도전에 실패한 게 리버풀 선수들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지 않는 팀’ 이미지를 잃은 건 반갑지 않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20.03.02 08:34
축구

리버풀-에버턴, 시즌 두 번째 머지사이드 더비서 0-0

리버풀이 에버턴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다.리버풀은 7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의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33라운드 에버턴과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무승부로 두 팀은 각각 승점 1점씩 나눠갖는데 만족해야 했다.초반부터 치열한 공방을 펼친 두 팀은 서로의 골대를 겨냥하며 골을 노렸다. 그러나 득점 없이 전반이 끝났고, 후반에도 서로의 슈팅은 골대를 외면했다. 막판 에버턴이 공격을 몰아치며 리버풀의 골문을 매섭게 노렸지만 마지막 도미닉 칼버트-르윈의 슈팅마저 골대를 빗나가며 득점 없이 경기가 마무리됐다.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2018.04.0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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