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떡락하는 대한민국 매력도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면 한식 세계화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정부 가 나서서 한식 세계화를 한답시고 외국인에게 한국 음식을 공짜로 먹이는 행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프랑스가, 이탈리아가, 음식 맛있다고 소문난 그 어떤 나라가, 우리처럼 그러든가요. 여러분은 그들 나라에서 주는 마카롱 하나, 파스타 한 접시 공짜로 얻어먹어 본 적이 있나요. 제발 우리 그런 거 하지 맙시다. 국가적 자존심 좀 지킵시다. 부강하고 매력적인 나라이면 그 나라 음식도 맛있어 보입니다. 한식 세계화가 성공하려면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게 먼저입니다.”이명박 정부가 한식 세계화를 한다고 국가 예산을 낭비할 때에 언론에다 대고 반복적으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한식 세계화 관련 정부 예산을 받아다 쓰는 곳곳의 사람들은 저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들의 목에도 포도청이라 불리는 목구멍이 있을 것이니까요. 이래저래 정부의 눈먼 돈은 누군가 챙기게 되어 있고 그걸 어쩌다가 자신이 챙기는 것뿐이니 아주 나쁜 짓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겠지요.거창하게 국가 단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도 음식 그 자체보다는 그 음식을 내거나 먹는 사람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맛이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갓집 며느리가 하는 음식은 뭔가 다르리라 생각하고, 재벌이나 연예인이 자주 찾는 식당의 음식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보통은 다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먹는 이유가 대체로 그러합니다.한국 음식이 산업화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달고 매워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100년 이래에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음식이 저 혼자 맛있어서 뜨는 것이라면, 한국 음식은 벌써 떴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야 K-푸드 열풍이냐 하면, 이제 와서야 대한민국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매력적이고, 이 매력적인 대한민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매력적일 것이라고 세계 시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K-푸드라는 단어가 장기적으로 외국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차후에 따 져봐야겠지만 한식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음식들까지 이 단어 아래에 둘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합니다. 가령 서울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견과류(수입 원료를 국내에서 가공한 제품)는 한식이라고 보기가 어렵지만 K-푸드에는 포함됩니다. 문화상품은 잘 팔리는 것이면 되었지 굳이 문화적 정체성까지 강요할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여간, K푸드라는 한국 음식이 떴습니다.한 국가의 매력도는 매우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멋진 자연도 매력도를 높여주지만 말끔한 도시 풍경과 그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여유롭고 세련된 사람들이 매력도 상승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매력적인 국가가 되려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하며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대한민국은, 세계 시민들 눈에는, 식민지였었고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미국 원조를 받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 독재자가 지배하는 나라였습니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하고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이 같은 국가 이미지는 단번에 개선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러다 마침내 한국 것이기만 하면 그 어떤 것이든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대가 문재인 정부 때에 문득 열렸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에 더하여,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질서 있게 극복해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 시민들 눈에는 매우 세련된 사람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 팝 등이 매력도를 더하였습니다.“여러분, 세계 시장으로 나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한국 음식이기만 하면 됩니다. 대한민국은 매력적인 국가이고, 이 매력을 우리는 우리 음식에 붙여서 파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판이 다소 시끄러워도 대한민국은 무척 매력적인 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었고, 외식업 하시는 분들께 이런 말을 자주 하였습니다. 지금은, 자신 없습니다. 외신에서는 대한민국을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정치 후진 국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국민이 애써 쌓아온 대한민국 매력도가 ‘떡락’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매력적인 대한민국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합니다. 2025.01.09 07:2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무정치의 세상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

저는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직업입니다. 어쩌다가 방송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장기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를 연예인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연예인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냥 글쟁이입니다.) 그 덕분에 많은 연예인과 친해졌고 그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저는 SNS에서 정치적 입장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제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부터 정치적이었고,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나가면서도 정치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정치적이고, 죽을 때까지 정치적일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 여러분이 정치적 의견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며 살아가듯이 저 역시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과 똑같이 그러고 사는 겁니다.연예인은, 그런데,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격 살인에 직업 박탈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이 정치적 의견을 내면 정치적으로 반대편이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하차시키기 위해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은 기본이고 떼를 지어 여기저기에 항의 전화를 합니다. 연예인에게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미지에 심대한 손상을 입혀서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녀사냥입니다. 이런 일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언론은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오히려 마녀사냥을 부추깁니다.그래서 연예인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숨김없이 대중 앞에서 말하는 연예인도 존재합니다. 그분들은 정말이지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겁니다.연예인은 공인이니까 정치적 견해를 밝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게 공적인 일이냐 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고 해석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연예인은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명하다고 공인인 것은 아닙니다.연예인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제게 한 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우리라고 왜 정치적 입장이 없겠어요. 아시다시피,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잖아요. 우리는 말을 못 할 뿐이에요. 아니지요. 우리 사회가 말을 못 하게 해요. 한마디라도 하면 난리가 나잖아요. 난리가 나면 우리는 일을 못 해요. 우리 사회가 ‘너희는 조용히 해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무정치의 세상에 삽니다.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어요.” 외국은 사정이 어떤지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정만 살피면 됩니다.모든 국민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표현의 자유가 일부 직업인에게는 억압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합니다.“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 가수 임영웅의 이 말을 정치적 논리로 따지는 것 말고 또 하나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는 한국 연예계의 독특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윤리인 양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임영웅은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의 곤란한 입장을 저는 이해합니다. 연예인은 무정치의 세상에 살아야 직업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저도 압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 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배달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치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민주공화국은 그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모든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도 민주공화국에서 억압과 차별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국민이 라는 점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무정치의 세상을 유지하려면 “제가 정치인인가요?” 같은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묻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 살인과 생계 박탈의 마녀사냥을 당하기보다는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이 더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외부 칼럼은 일간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01.02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지난 여름날의 민어회

지난 여름에 부안 격포 앞바다로 민어 낚시를 갔습니다. 한여름에 배를 타고 바다에 떠 있는 일은 정말이지 힘듭니다. 햇볕을 가리려고 긴 옷을 입고 차양 모자를 쓴 탓에 고온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진정한 낚시꾼이면 이 정도는 이겨내어야 합니다. “여름에는 민어잖아” 하고 나섰습니다.낚시의 성과를 ‘조과’라고 합니다(조심해서 발음해야 합니다). 이 조과는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노력한 만큼 조과가 나온다면 낚시는 벌써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을 수도 있습니다. 낚시꾼은 용왕님이 주는 만큼 받는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고, 그래야만 꽝을 쳤을 때에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덜어지기도 합니다.부안 격포의 여름 바다는 뜨거웠고 민어 낚시꾼은 그 뜨거움과는 별도로 심하게 열을 받았습니다. 용왕님이 저희를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벌겋게 익은 얼굴로 배에서 내려 식당에 모여 앉았고, 그럼에도 우리 앞에는 민어회가 놓였습니다. 방송 촬영을 겸한 낚시여서 촬영용으로 준비를 한 민어회였습니다.민어회에 대한 썰을 맛칼럼니스트인 제가 풀어야 했습니다. 조과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분풀이를 약간 보태어서 말이지요. “복날에 서울 양반들이 민어를 먹었다고 하는데, 이건 뭐 근거가 별로 없어요. 민어는 옛날에는 흔했어요. 무지 잡혔어요. 전남 해안에서부터 인천 앞바다까지. 그러니까 민어는 쌌고, 그러니까 양반 상것 할 것 없이 여름이면 민어를 먹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왜 민어가 서울 양반 복달임으로 소문이 났느냐 하면, 요즘 민어가 잘 안 잡혀서 그래요. 민어가 비싸지니까 양반이 먹는 것으로 소문이 난 겁니다. 그러면 옛날에 우리 조상은 민어를 어떻게 먹었느냐 하면~.”이 다음이 갑자기 기억이 안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문헌의 이름을 제가 쓰윽 꺼내어야 전문가로서의 ‘가오’가 사는 법인데 말이지요.“아, 그 책이 뭐냐 하면, 그러니까, 에, 조선시대 경북 내륙 지역에서 쓰인 책인데, 거기에 민어회가 나옵니다. 그 책 이름이.”제가 더위를 먹은 겁니다. 사람들은 더위를 먹은 제 얼굴만 멀뚱멀뚱 보았습니다. 민어회를 다 먹을 때까지 그 문헌의 이름은 끝내 기억이 나지 않았고, 주요 내용만 추려서 말하고 말았습니다.“그러니까 우리 조상은 민어포를 먹은 겁니다.” 사람은 뒤끝이 있어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나가니 지난 여름의 일이 생각났고, 그 때에 조선시대 민어회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라도 마저 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제가 그 때에 기억해 내지 못한 조선시대 문헌의 이름은 ‘신의전서’입니다. 1800년대 말의 것입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魚膾(어회) : 민어 겁질 벗기고 살노 얄계 졈여 가로 결노 가날게 쎠흘어 기름 발나 졉시에 담고 겨자와 고초장 윤즙은 식셩대로 쓰라.”현대문으로 풀면 대충 이러합니다.“생선회 : 민어 껍질을 벗기고 살을 얇게 저며서 살결대로 가늘게 썰어 기름을 발라 접시에 담고 겨자와 고추장 윤즙(초장?)은 식성대로 쓰라.”시의전서는 발견 지역이 경북 내륙이고 경상도 사투리가 나옵니다. 여름에 서해 혹은 남해에서 잡힌 민어가 어떻게 경북 내륙 지방에까지 갈 수 있을까요. 당시에 냉장 시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동차나 기차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말려서 가져갔겠지요.그러니까, 시의전서의 민어회는 민어포라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얇게 저며서 가늘게 썰어 기름을 바르는” 조리법의 정체가 분명해집니다. 포니까 얇게 저며지고 가늘게 썰어지는 것이지요.한 해가 지나면서 지난 여름의 일을 이렇게 기록해 두는 것은 내년 여름에도 민어 낚시를 갈 것이라는 계획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때에는 매직으로 ‘시의전서 민어포’라고 쓴 말린 민어를 낚시 조끼에 넣고 갈 것입니다. 2024.12.26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만찬에 올리지 못했던 개마고원 감자

음식은 맛있어야 합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그러나 행사 음식은 맛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 행사의 의미를 요리에 담아서 내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흔히 “음식에 스토리를 붙인다”고 말합니다. 제가 맛칼럼니스트로서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음식 스토리 개발입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만찬 기획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강원도 일대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니 강원도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내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만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무엇이 만찬 테이블에 올라가야 합니다. 이런 거 하라고 저를 부른 것입니다.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있기 200일 전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음식 기획에도 제가 참여를 했습니다. 감자전, 메밀전병 같은 평창 토속 음식으로 차렸고, 제가 행사 참석자들에게 음식 설명을 하며 이런 요지의 말을 하였습니다.“감자 하면 다들 강원도를 떠올리지만, 분단 이전에는 개마고원 감자가 유명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한다면 개마고원 감자로 요리를 하여 함께 나눠 먹으면 좋겠습니다.”북한은 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북한 참가의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겨우 200일 남은 시점에서 큰 기대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개마고원 감자를 가져오고 우리가 감자 요리를 하여 전 세계 귀빈들 앞에 내놓을 밑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감자는 신대륙 작물입니다. 우리 땅에 본격적으로 재배를 한 것은 1890년대 이후입니다. 함경도와 강원도 등 산간지에 주로 심었습니다. 일제가 1930년대 개마고원을 관통하는 혜산선을 놓고 거기에다 감자를 집중적으로 심었습니다. 감자는 전분으로 가공해 운송을 했는데, 혜산선을 타고 길주까지 와서 다시 함흥으로 보내졌습니다. 전분이 녹말이고, 녹말의 함경도 사투리가 농마입니다. 함흥의 개마고원 감자 전분으로 뽑은 국수가 농마국수이고, 이 농마국수가 분단 이후 남으로 내려와서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개마고원 감자는 북한의 주요 식량 자원입니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대대로 감자를 거둘 때가 되면 개마고원에 가서 감자 작황을 살피는 사진을 찍습니다. 분단이 되면서 우리는 개마고원 감자와 이별을 하게 되었고, 남한에서는 감자 하면 이제 강원도를 떠올리게 됐습니다.남북으로 분단되기 이전에 한반도의 먹을거리 사정을 개마고원 감자 스토리로 풀어서 동계올림픽 만찬장에 내놓고 싶었습니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에 저는 혼자 신이 나서 ‘개마고원 개마고원 개마고원’을 외며 다녔습니다.“많은 양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몇 박스만 보내주면 됩니다.”북쪽에 개마고원 감자를 보내올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북쪽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유엔의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과는 어떤 물자로 오갈 수 없다는 말을 며칠 후에 들었습니다. 파는 것도 아니고 행사 음식 재료로 쓸 것이라는 사정 따위는 전혀 통하지가 않았습니다.행사 음식은 하나에만 스토리를 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만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철조망을 녹이는 디저트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사진으로 담아갔습니다. 철조망 디저트를 보며 울었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개마고원 감자를 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워서 만찬장 구석에 앉아 ‘개마고원 개마고원 개마고원’ 했습니다.여의도 시위에 나가려고 방한용품을 찾다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받은 바람막이와 방석 등을 발견했습니다. 2018년의 일인데 까마득히 먼먼 일로 여겨져 울컥했습니다. 금방 다 이룰 것 같았던 남북 교류와 화해는 다 어디에 가고 어쩌다가 전쟁 걱정을 하며 다시 시위를 나가는 처지가 됐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도를 놓고 개마고원을 가로지르는 혜산선을 손으로 짚으며 ‘개마고원 개마고원 개마고원’ 하고 앉았습니다. 2024.12.19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첫 크리스마스 단팥빵

저는 유물론자입니다. 제 세상에는 ‘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종교적 행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절에 가면 부처상에 절을 하고, 교회 가면 예수상에 고개를 숙입니다. 부처와 예수를 신으로 모시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인류의 큰 스승으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제 생각의 많은 부분이 그분들의 말에서 온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제 글을 종교적 의미를 담아서 해석하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이렇게 먼저 사족을 답니다.거리는 벌써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르게는 11월부터 상가들이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였습니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달뜨게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고, 누군가와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에 연말이고 이어서 또 설날이니까 두어 달 겨울 축제가 진행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저에게 첫 크리스마스는 빵과 함께 왔습니다. 학교에 가기도 전이었으니까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요. 예수의 존재를 모를 때였습니다. 우리 동네에 하얀 건물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가까이 가지 않던 건물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크리스마스 이브였을 것입니다. 거기 가면 빵을 준다는 말이 떠돌았습니다. 누가 이끌었는지, 자발적이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교회에 빵을 얻어먹으러 갔습니다.교회 문이 무거워서 어른들이 열어주었습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습니다. 반질반질 빛나는 나무 마루가 바다처럼 넓어 보였습니다. 연단이 있는 쪽으로 아이들이 모여서 앉아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맨질맨질한 나무 바닥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가 아이들 속에 섞였습니다.여자 어른이 아이들에게 이름을 물어 노트에 적었습니다. 저도 제 이름을 말했습니다. 연단에 누군가가 올라가 노래를 하였고, 연극인가 뭔가를 하였고, 누군가가 고개를 숙이라고 하여 숙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어린 저는 빵은 언제 주나 하는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마침내 여자 어른이 빵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 차례가 올 때까지 저는 손을 내밀지 않고 꾸욱 참았습니다. 단팥빵이었습니다. 빵을 받은 아이들은 순서 없이 우르르 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신발장 앞에서 자기 신발을 찾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신발은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섞어놓으면 누구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신발 안쪽에 이름을 써넣는데 저를 비롯해 빵을 손에 든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갈 나이가 아니었습니다.저도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신발을 열심히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다 빠져나가고 겨우 몇 짝의 신발이 남았는데, 거기에도 제 신발은 없었습니다. 한 손에 빵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신발이 없는 아이는 저 혼자였습니다.여자 어른이 제 곁에 와서 이것저것 물었고, 신발이 없어졌다고 저는 울었습니다. 제 뒤에서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신발장 앞에서 밖을 향해 서서 울었습니다. 제게는 정말 긴긴 시간이었습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그 이후 기억은 둘로 나뉘어 존재합니다. 하나는, 해가 진 후에 형이 저를 찾으러 교회에 왔고 형이 가져온 신발을 신고 집으로 갔던 기억입니다. 또 하나는 해가 진 후에 교회에서 준 낡고 커다란 신발을 질질 끌고 혼자 집으로 갔던 기억입니다. 오래전에 들었던 형의 기억은 또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은 또 다릅니다. 저와 가족 모두가 공통으로 기억하는 것은 교회에 빵을 받으러 갔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이 모여서 파티를 합니다. 고기를 굽고 와인도 한잔합니다. 마지막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자릅니다. 그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저는 또 그 먼먼 옛날의 첫 크리스마스 빵 이야기를 꺼냅니다. “우리 동네에 하얀색을 한 교회가 있었는데 말야….” 2024.12.12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시금치를 사야 하는 타이밍

2024.12.05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자본주의적인 너무나 자본주의적이어야 하는 K-푸드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에 강력한 힘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김치나 고추장을 싸가면 세련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까지 했습니다. 그때에 그랬던 것은 외국에 나갈 일이 자주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한번 나가게 되는 외국이니까 그 나라의 문물을 충분히 느끼고 와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존재했습니다.요즘은 해외 여행을 가면서 김치나 고추장을 싸가네 마네 하는 논란 자체가 없습니다. 해외 여행이 흔한 일이 돼 굳이 여행 국가의 문물을 짧은 시간에 악착같이 알아가겠다는 과욕을 부리지 않아도 됩니다. 또 그동안에 우리의 입맛이 글로벌화됐을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아져서 외국 음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또 외국에 나가 우리 음식이 그리워져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계 곳곳에 한국 음식을 내는 식당이 영업중입니다.요즘은 한국 음식이니 한식이니 하지 않습니다. K-푸드라고 합니다. K-푸드라는 명칭이 한국 음식 또는 한식이라는 명칭에 비해서는 ‘자본주의적으로는’ 장점이 있습니다. K-푸드는 전통 논쟁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한때 국회에서 치킨과 고구마라떼를 두고 이게 한국 음식이냐는 논쟁을 했는데, K-푸드 앞에서는 그 모든 전통 논쟁이 사라지고 맙니다. 한국에서 팔리는 치킨은 K-치킨이고, 한국에서 팔리는 마카롱은 K-마카롱입니다.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간다는 과자가 견과류 가공품입니다. 아몬드 호두 아카다미아 등등 견과류는 대부분 수입 농산물이고, 이를 우리나라 가공 회사가 꿀이며 버터, 고추냉이 등등으로 양념해 포장합니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은 견과류 가공품의 재료가 어디에서 왔으며 또 그 견과류 가공품이 한국 고유의 맛을 실현하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Korea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이니까 K-푸드입니다.K-푸드 열풍입니다. 이전에도 “한국 음식이 세계적으로 붐이다”는 뉴스를 수없이 보았을 것입니다만, 지금의 K-푸드 열풍과는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국가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관급 홍보 뉴스에 한국 음식이 이용됐고, 지금의 K-푸드 열풍은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매력적인 국가의 반열에 오르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입니다. 그 무엇이든지 간에 한국적 터치만 가해지면 매력적인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K-열풍’ 안에 K-푸드가 있는 겁니다.K-푸드 열풍의 기회는 우리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 음식에다가 K-터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국 자본이 K-푸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글로 쓰인 간판을 걸고 한국 음식인 듯한 음식을 파는 외국 자본 식당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외식 시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한국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이게 한국 음식이 맞나?”문화적 관점에서는, 음식이 국경을 넘어가면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한국 음식이 타국에서 ‘고생’을 해도 우리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음식을 가져와서 한국적 터치를 가해 K-치킨, K-마카롱 등으로 즐기고 이를 또 외국에다 다시 넘기는 것도 문화적 관점에서는 인류 보편의 문화 교류 행위일 뿐입니다.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우리 문화 상품인 K-푸드가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이 매력적으로 보여서 K-푸드가 뜬 것이므로 폭발하는 K-푸드 시장의 혜택은 대한민국이 받아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음식은 문화다'라는 말은 음식을 문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것입니다. 음식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는 외식업계와 식품업계, 그리고 관련 정부기관 등의 입장에서는 음식은 문화가 아니라 문화 상품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음식을 돈벌이를 위한 도구로 보아야 합니다.세계 외식 시장은 음식 문화 논쟁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고 죽는 시장입니다. 최근에 중국 자본이 한식당을 열심히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참으로 고되었습니다. 그 과실을 우리가 제대로 따먹지 못하면 심히 억울할 것입니다. 2024.11.28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사라지는 가정요리

자연이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주기는 하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에는 인간이 먹으면 죽거나 탈이 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자연에서 먹을거리와 못 먹을거리를 ‘분류’하고 이를 후대에 ‘교육’하는 것이 인간 문명에 시동을 거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대를 물리는 가정요리는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류 유산이라고 저는 감히 생각하였습니다만, 현실에서는 가정요리가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어 가정요리의 문명사적 의미 같은 것은 맛칼럼니스트로서 음식 문화에 오랫동안 천착하다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각 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요즘 들어 가끔 하게 됩니다.다른 나라에서 가정요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른 나라에서 장기간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제가 잘 알지를 못합니다.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어떤 국가에서 살고 있든지 간에 가족 구성원이 점점 줄어들고 또 가족 구성원 전체가 노동을 해야 하는 고도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가정요리라는 존재가 지구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해봅니다.우리 대한민국은 매우 특이한 국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국가 중에 유일하게 부자 국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최빈국 상태에 있었습니다. 한민족 특유의 의지로 200년 걸린 서구의 산업화를 우리는 단 30년 만에 해치웠습니다. 시간을 크게 줄여서 성장했으니까 ‘압축 성장’이라고도 하고, 기적 같은 일이니까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합니다.저는 1962년생입니다. 제가 태어날 무렵의 대한민국 인구 구성을 보면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일부 개화한 사람들 외 대부분은 조선 유교의 관습대로 살았습니다. 반상을 따졌고, 이치를 논할 때에는 공자왈 맹자왈 했습니다. 남녀구별이 분명했습니다. 어른은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린 남자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는 여성을 유교 관습의 고전적 가정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때를 만나지 못해 여전히 부엌에만 있어야 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때의 우리 어머니는 우리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손에 물 묻히지 마라.”대가족은 농업사회에 적합한 피붙이 집단입니다. 산업사회에는 부모와 결혼하지 않은 자식만으로 구성된 핵가족이 적합합니다. 또 산업사회는 맞벌이가 기본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가정요리를 할 겨를이 없습니다.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굶는 것은 아닙니다. 맞벌이 핵가족의 먹을거리를 해결해주는 산업이 번창하고 있습니다.자본주의는 가족을 잘게 나눕니다. 그래야 시장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5인 가족도, 3인 가족도, 1인 가족(?)도 집은 한 채가 필요합니다. 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이 욜로니 뭐니 하며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고 앞장서서 떠들어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하여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1인 가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혼자 살면서 자기 혼자 먹기 위해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식당 음식을 배달해서 먹거나 조리된 식품을 사다가 데워서 먹는 것이 돈이 덜 들고 시간도 아낄 수 있습니다. 설거지할 것도 없고 음식물 쓰레기 치울 일도 없습니다.한국 음식의 미래에 대해 강연을 하였더랬습니다. 한국의 매력도가 급상승을 하고 있으니 한국 음식이 해외에서 크게 인기를 얻을 것이며 이를 잘 이용하면 우리 다음 세대가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한 분이 제게 다가와서 온라인에 번지고 있는 한국 음식 레서피에 대한 걱정을 했습니다. 너무 달고 짜고 자극적인 것만 있다고. 식당 요리가, 아니 술집 요리가, 가정요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돌아오는 길에 곰곰 생각했습니다. 가정이 뭔지 곰곰 생각했습니다. 가족이 뭔지도 생각했습니다. 가족이 잘게 잘게 해체되는 시대에 가정요리가 이래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도 멀리서 보면 참 우습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2024.11.21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알아두어도 별로 쓸데가 없는 꼼치과 생선 이야기

“겨울이 되면 후루룩~ 국으로 먹는 생선 있잖아요, 얼굴이 둥글하고 눈은 작으며 몸통은 납작한 생선이요. 입안에 넣으면 이게 살인가 푸딩인가 싶은. 주로 동해에서 아침 해장으로 먹는.” 이 정도 말하면, 이어서 이런 대답들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곰치.” “아니지 꼼치지.” “물곰이라 하지 않나?” “우리 동네는 물메기라고 하는데.” “미거지가 정답.” “잠뱅이 아니고?” 알아두어도 별로 쓸데가 없는 음식 이야기라고 여기에 연재되는 칼럼을 대충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집중 좀 해주셔야 합니다. 맛칼럼니스트인 저도 수시로 익히지만 잘못 말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내용인데, 이거 기억했다가 잘 써먹으면 한순간에 ‘박사급’ 대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얼굴이 둥글하고 눈은 작으며 몸통은 납작한 이놈은 꼼치과 생선입니다. 이 꼼치과 생선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동해에서 잡히는 것은 미거지이고, 남해와 황해에서 잡히는 것은 꼼치입니다. 학술적인 분류 명칭은, 그러니까 미거지와 꼼치 이 둘뿐입니다. 동해에서 곰치 또는 물곰이라 부르는 것은 미거지입니다. 남해에서 미거지 또는 물메기, 또 황해에서 잠뱅이 또는 물잠뱅이 등으로 부르는 것은 꼼치입니다. 이 박사급 지식은 현장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동해에 가서 “미거지국 주세요” 하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외계인 보듯이 할 것입니다. 남해와 황해에 가서 “꼼치국 주세요” 해도 마찬가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일단은 식당 간판에 적혀 있는 명칭대로 주문을 하시고, 이 박사급 지식은 일행에게 아는 척하는 용도로 써야 합니다. 박사급 지식을 뽐내다가 이런 질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거지하고 꼼치는 맛이 달라?”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미거지와 꼼치를 생김새로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맛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신의 경지의 일입니다. 저는 대충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맙니다. “미거지와 꼼치를 한 자리에서 비교하며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 그런데 미거지든 꼼치든 말이야, 맛있게 먹으려면 전날 밤에 술을 잔뜩 마셔야 한다는 것은 똑같아.” 우리나라의 몇몇 물고기 이름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지역민이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고 어류학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같은 혼돈을 발생시킨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현장에도 안 나가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비판했습니다. 요즘은 생각이 다릅니다. 헷갈리는 이름 덕에 오히려 그런 생선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들어서, 최종에는 그 생선을 더 맛있어지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이 맛을 만드는 것이지요.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꼼치과 생선을 해점어라는 이름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점어는 메기이니까, 해점어는 바다메기입니다. 물메기라는 명칭이 그때에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점어 아래에 미역어라고도 적어놓았는데, 미거지와 유사한 발음입니다. 미꾸라지처럼, 겉이 미끌미끌하니까 미거지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못생기고 맛이 없어서 버렸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어민은 이럽니다. “그 맛있는 것을 왜 버려?” 근거가 없다고 정색할 것은 없습니다. 꼼치과 생선은 이런 말을 하면서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미거지 또는 물메기라고 합니다만, 남해의 꼼치과 생선이니까 학술적 명칭은 꼼치가 맞습니다. 국으로 먹는데, 보통은 맑게 끓입니다. 이 생선만 맑게 끓이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든 감생이든 뭐든 싱싱한 생선은 맑은 국으로 끓입니다. 동해에서는 곰치 또는 물곰이라고 합니다만, 학술적 명칭은 미거지가 맞겠지요. 여기서도 국으로 먹는데, 보통은 김치를 넣습니다. 김치가 들어간 꼼치과 생선의 국을 처음 대하였을 때에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에 먹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가 40년이 넘었습니다. 먼먼 고향에 갈 일보다 동해의 고성, 속초 등지에 갈 일이 더 많습니다. 이제는 김치가 든 꼼치과 생선의 국에 익숙해졌습니다. 양념이 적어 쨍한 맛이 나는 강원도 동해의 김치여서 맑고 깨끗한 꼼치과 생선과 잘 어울립니다. 2024.11.14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살이냐 껍질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허영만 만화 '식객'에 고등어자반 굽는 법이 나왔는데 식객 공식 게시판을 통해 가사 선생님이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생선을 구울 때 살 쪽부터 굽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식객에는 다르게 나왔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만화 식객 제작진은 이 문제에 진지했습니다. 식객 제작진은 연구자가 아니라 기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어자반을 어떻게 구워야 맛있는지 연구하여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고등어자반 구이 방법을 찾아내어 만화에 반영하는 작업을 하였던 것이지요. 제작진은 “각종 조리법이나 조리과학은 오직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수학이 아님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고 전제를 한 다음에 관련 자료를 찾아서 게시판에 올려주었습니다.“생선은 살부터 굽는 것이 껍질이 깨끗이 구워지므로 (중략) 그러나 맛있게 굽고 싶으면 껍질을 먼저 굽는 것이 좋다. 그것은 껍질부터 굽는 것이 생선에 남는 맛있는 성분이나 수분의 양이 많고 부드럽다. 껍질 쪽을 60% 정도 굽고 나서 살 쪽에서 나머지를 굽는 것이 좋다.” ('누구나 알아두면 좋을 우리 생선 이야기' 김소미 외 공저, 효일)“석쇠를 중간 불로 달군 다음 기름을 발라 살 쪽부터 익힌다. 익으면 뒤집어서 껍질 쪽을 익힌다.”('중학1 기술' 삼치구이 편, 대한교과서 가정 자습서)식객 취재진은 여러 책에 실린 생선 굽는 법을 분석했고, 결론은 이러했습니다.“두산동아, 지학사, 교학사, 금성출판사, 형설, 천재교육에서 나오는 자습서를 확인해본 결과 굽는 순서에 대한 정확한 명시는 없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생선 굽기에 있어 등 쪽(껍질)이냐 배 쪽(살)이냐는 솔직히 무의미한 논쟁일 수도 있습니다. 맛으로 따져도 어느 쪽이 월등히 좋다라고 판단하기에 무리가 따릅니다. 그것은 조리에 수많은 변수가 따르기 때문입니다.”다소 뜬금없이 던지는 정답 없는 질문을 저는 좋아합니다. 버릇처럼 해오던 일도 “왜 그렇게 하는데?” 하고 질문을 받게 되면 그와 관련한 일의 근원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고,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도는 ‘망상’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그 무렵에 저는 어느 일식 조리서를 읽고 있었는데, 그 책에는 생선 굽는 방법에 대해 바다생선과 민물생선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었고, 바다생선 굽는 법은 이렇게 적어두고 있었습니다.“접시에 담을 때 위로 올라오는 쪽을 먼저 굽는다. 바다생선은 껍질 쪽을 위로 해서 올리므로 껍질부터 굽는다. 뒤에 굽는 부위는 불에 떨어진 기름이 타서 그을음이 생겨 모양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번역서인데 문장이 난삽해 제가 다시 고쳐 썼습니다.)'누구나 알아두면…'에서는 껍질을 깨끗하게 구우려면 살부터 먼저 구우라고 했는데, 이 책은 껍질을 깨끗하게 구우려면 껍질부터 구우라고 합니다. 이런 일은 불과 조리도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프라이팬에서 굽는가 아니면 직화로 굽는가의 차이. 그러니까 프라이팬에서 생선을 구우면 생선 껍질이 벗겨져 팬에 달라붙게 되고, 그 다음에 생선을 뒤집어서 구우면 팬에 눌어붙어 있던 껍질이 살에 달라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일식 조리서는 직화구이인데 껍질부터 구우라고 하고 '중학1 기술'도 직화구이인데 살부터 구우라고 합니다. 참 복잡합니다.고등어자반 굽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만, 그 방법들이 목표하는 지점은 ‘겉바속촉’으로 한결같습니다. 먼저 굽는 게 살이냐 껍질이냐 하는 결정은 ‘겉바속촉’으로 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프라이팬 구이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등어자반이 순살인지 등뼈가 붙어 있는 전통적 자반인지부터 검토해야 합니다. 여기에 전분이나 밀가루를 입힐지, 입히더라도 껍질 쪽만 입힐지 전체에 입힐지 결정합니다. 그런 이후에야 껍질과 살 둘 중에 어느 쪽을 먼저 구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단 하나의 방법이 정답이라는 주장은 재미도 없고 또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조건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요리의 세상입니다. 2024.11.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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