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이 우승을 확정한 뒤에야 털어놓은 고백이다. 선발과 불펜을 오간 가을, 마지막 등판에서는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수 강민호의 미트만 바라봤다. 어떻게든 5회까지 버티고 우승하자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왕조 재건의 주역이 되겠다던 신인은 그렇게 삼성의 정상 복귀를 이끈 에이스가 됐다.
삼성은 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2026 신한 SOL 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선발 원태인은 5이닝 동안 88개의 공을 던져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2차전 구원 등판 뒤 사흘만 쉬고 오른 마운드에서 제 몫을 했다.
경기 후 원태인은 “너무 힘들었다. 티는 내지 않으려 했지만 경기 전부터 팔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라며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지자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3회부터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강민호였다. 그는 “민호 형이 ‘가을은 원태인’이라고 해줬다. 미트만 보고 던졌다”라며 “5회까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우승하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던졌다”라고 돌아봤다.
삼성 원태인. 삼성 제공
베테랑들의 헌신을 보며 물러설 수 없었다. 구자욱은 햄스트링 부상을 딛고 돌아왔고, 강민호는 아픈 옆구리를 견디며 마스크를 썼다. 최형우도 외야 수비를 맡았다. 원태인은 “형들이 그렇게 해주니 젊은 선수들은 조금 아프고 힘들어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고참들의 헌신 덕분에 후배들도 더 활발하게 뛰었다. 형들의 투혼이 원동력이자 기세였다”라고 말했다.
KT를 향한 설욕 의지도 강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3연전을 모두 내준 것이 선수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원태인은 “너무 무기력하게 내주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올라가서 꼭 설욕하자는 이야기를 했다”라며 “강팀 KIA를 잡고 KS에 올라오면서 얻은 자신감으로 업셋까지 해냈다”라고 설명했다. 타이브레이커와 앞선 KS에서의 아픔도 이번 우승으로 털어냈다. 그는 “라이온즈파크에서 우승을 결정짓고 싶었다. 팬들과 약속을 지켜 기쁘다”라고 했다.
삼성 원태인. 삼성 제공
2019년 입단 당시 내걸었던 왕조 재건의 약속도 떠올렸다. 원태인은 “이제야 했다. 늦게 지킨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한 게 어디인가”라며 웃었다. 이어 “그동안 우승한 사람들이 참 부러웠는데 이제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라며 “2010년대 초반 삼성은 우승이 당연하다는 느낌이었다. 올해가 그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우승 순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강민호가 있는 포수 자리였다. 원태인은 “민호 형이 마운드로 달려가야 하는데 혼자 울먹이고 계셨다. 달래주러 갔다가 마스크에 얼굴이 찍혀 상처가 났다”라며 웃었다. 아픔도 느끼지 못할 만큼 기뻤다. 그는 “우리 팀 모두가 민호 형을 한 번 우승시켜주는 게 목표이자 꿈이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형에게 달려갔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시간이다. 원태인은 해외 에이전트를 이미 선임했다고 밝히면서도 “가을야구에서는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생각뿐이었다. FA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일 한번 전화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삼성과의 협상에는 웃음 섞인 기대를 드러냈다. “사장님께서 우승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승했으니 좋은 계약서를 들고 와주시지 않을까요. 사장님을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