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가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우규민(41)은 KT 위즈의 정규시즌 1위를 이끌며 데뷔 19년 만에 한국시리즈(KS) 출전을 앞둔 박경수(은퇴)에게 진심 어린 덕담을 전했다. 그의 이름 이니셜(KS)과 최종 무대의 약자가 같은 걸 착안해 "KS는 너의 시리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박경수는 그해 KT의 KS 우승을 이끌고 시리즈 최우수선수(MVP)까지 수상했다.
우규민과 박경수는 2003년 LG 트윈스 입단 동기다. 박경수는 19년 만에 '무관'의 한을 풀어냈지만, 우규민은 지난해까지 KS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그사이 우규민은 삼성에서 KT로 이적했고, 마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지난달에는 역대 우완 투수 최초로 900경기 등판을 해냈다.
그렇게 버틴 프로 무대 23년. 마침내 우규민이 박경수의 축하를 받게 됐다. 지난 5일 KT가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하며 KS 직행 티켓을 거머쥔 것. KT는 홈(수원 케이티위즈파크) 롯데 자이언츠전 9-0 완승을 거뒀고, 2위 삼성 라이온즈가 두산 베어스에 패하며 남은 매직넘버 '2'가 지워졌다.
우승 세리머니 현장에서 눈물을 보인 우규민. 사진=KBO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먼저 경기를 마친 KT 선수들은 케이티위즈파크 전광판을 통해 삼성전을 지켜봤다. 우규민은 삼성의 27번째 아웃카운트가 잡힌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눈물을 흘렸다. 가장 먼저 후배 투수 고영표가 그를 안았고, 김현수·김상수 등 다른 베테랑들도 23년 만에 KS를 밟게된 선배를 축하했다. 이런 사연을 잘 알고 있는 장내 아나운서는 축하 세리머니를 진행하며 주장 장성우 다음으로 우규민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경기 뒤 만난 우규민은 "겨울마다 KS에 등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하지만 (입단) 20년이 지난 뒤에는 '이루질 수 없는 꿈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돌아봤다. 친정팀 LG가 지난 시즌 KS를 제패한 뒤 올 시즌 내내 '챔피언 패치'를 유니폼에 달고 있는 걸 그저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음을 비운 우규민은 "후배 투수들이 힘들 때, 팀이 필요할 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투수가 되는 것만 생각했다. 순위는 하늘이 결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동료와 지도자를 만나 비로소 이렇게 꿈을 이루게 됐다"라며 감격했다. 이어 그는 "팀이 보탬이 되는 선수였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KT와 삼성의 1위 경쟁이 달아오른 지난달 초, 삼성 주전 포수 강민호는 "(우)규민이 형은 2등부터 거친 뒤 KS를 경험해야 한다"라고 넉살을 부린 바 있다. 두 선수는 6년(2018~2023) 동안 배터리로 호흡한 1년 선후배 사이다.
며칠 뒤 "맞는 말이긴 하다. '이바겸(이 바닥은 겸손해야 한다)'하고 있다"라며 강민호의 '훈수'를 받아들인 우규민은 KS 진출을 확정한 직후에는 "(강)민호를 저격하지 않겠다. 잘 준비해서 KS에 올라왔으면 좋겠다. 내가 우타자 상대로 등판할 가능성이 높아 맞대결 가능성이 있다. 이전부터 민호와 승부를 자주 상상했다.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오히려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