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2023년 한국시리즈(KS) 당시 왼손 타자가 즐비한 LG 트윈스를 상대하며 "(쓸 만한) 왼손 불펜이 없다"고 한탄했던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3년 만에 드디어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이동하는 좌완 자원 로건 앨런과 오원석 덕분이다. 이강철 감독은 2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가을야구 선발진 구상을 밝혔다. 토종 에이스 고영표와 새 외국인 에이스 데이비스 데니얼, 아시안게임(AG) 대표팀에서 돌아오는 소형준, 그리고 최근 페이스가 좋은 배제성으로 4선발 로테이션을 꾸릴 예정이다.
자연스럽게 오원석에 이어 외국인 좌완 선발 로건도 포스트시즌에는 불펜으로 이동한다. 기존에 홀로 분투하던 전용주에 더해 150km대 강속구를 뿌리는 로건과 긴 이닝 소화가 가능한 오원석이 가세하면서 단숨에 두터운 좌완 허리진이 완성됐다. 이 감독은 "두 선수가 1이닝씩만 확실히 막아주면 불펜 운용이 훨씬 다채로워지고 마무리 (박)영현이까지 가는 길도 한결 편안해진다"고 설명했다.
KT 전용주. KT 제공
일반적으로 왼손 타자에겐 왼손 투수가 강하다. 공교롭게도 순위 경쟁 팀인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는 좌타자가 대거 포진해 있다. 3위 LG는 이전보다 우타자 비율이 늘었지만 문보경, 박해민, 오지환, 홍창기, 신민재 등 여전히 주축 타선이 좌타자들이다. 2위 삼성 역시 구자욱, 르윈 디아즈, 최형우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과 김지찬, 김성윤 등의 테이블세터진이 모두 왼손 타자다. KT로서는 좌완 불펜 카드가 많아지는 것이 다가올 가을야구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다.
흥미로운 점은 이강철 감독의 '좌타자 봉쇄 전략'이 단순히 좌완 수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요즘 삼성 같은 팀을 봐도 좌타자가 좌투수에게 약하다는 건 옛말이다. 왼손 타자들이 왼손 투수를 워낙 많이 상대해 눈에 익다 보니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요즘엔 사이드암 투수들이 좌타자를 더 잘 잡는다"고 덧붙였다.
KT 김정운-우규민. KT 제공
이 대목에서도 KT는 자신감이 넘친다. 선발 고영표를 비롯해 베테랑 우규민, 그리고 임시 마무리를 맡고 있는 김정운까지 수준급 사이드암 자원을 3명이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야구 불펜의 핵심 축이 될 김정운의 올 시즌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182로 극강의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우규민 역시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0.275로 우타자(0.282)보다 더 강했다.
이 감독은 "과거와 달리 요즘 사이드암 투수들은 체인지업이나 포크볼 등 종으로 떨어지는 결정구가 확실하다"며 "공이 옆으로 휘지 않고 타자 밑에서 뚝 떨어지니 헛스윙을 유도하기 쉽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다 떨어지는 궤적을 좌타자들이 가장 까다로워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마운드에서 씩씩하게 자기 공을 뿌리는 김정운에 대해 "(김)정운이는 스트라이크 존에 거침없이 공을 때려 넣어 볼넷 걱정을 안 시킨다"며 "벤치가 정말 편하게 믿고 쓸 수 있는 카드"라고 깊은 신뢰를 보냈다.
정통 좌완 로건, 오원석, 전용주에 이어, '좌타자 킬러'로 거듭난 사이드암 김정운과 우규민을 승부처에 투입하는 등 KT는 가을야구에서 상대 좌타 라인을 무력화할 다채로운 무기를 쥐게 됐다.
"왼손 투수가 없다"며 눈물을 삼켰던 3년 전의 아쉬움은 이제 끝났다. 막강해진 좌완 릴리프진과 진화한 사이드암 듀오를 앞세운 KT가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진격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