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제공)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이 화제입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김부장(소지섭)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딸 민지(서수민)와 마침내 재회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딸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낸 김부장은 다시 한번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했고, 마지막 미션과 위기가 숨 가쁘게 그려지며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김부장’은 23%에 육박하는 국내 시청률은 물론, 넷플릭스 비영어 TV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인기와 화제성을 수치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폭발적인 화제성과 별개로, 이 작품은 업계 안팎에 또 다른 화두를 던졌습니다. 초반 1, 2회에 등장한 김부장의 북한 시절 과거 신(Scene) 중 약 3분 분량, 즉 눈 덮인 도로에서의 총격전과 차량 추격, 전복 및 강물 추락, 그리고 대규모 건물 폭발 액션이 생성형 AI(인공지능)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김부장’의 제작에 참여한 시각특수효과(VFX) 전문기업 모피어스 스튜디오에 따르면, 화제가 된 3분간의 시퀀스에는 소지섭 등 배우들의 실제 촬영분이나 실사 소스가 단 한 컷도 없었으며, 그 대신 프롬프트 입력부터 이미지·영상·음향 생성, 편집까지 여러 생성형 AI 모델을 하나의 작업 흐름(Workflow) 으로 구동하는 AI 콘텐츠 제작 플랫폼 ‘에이크론(AICRON)’이 활용됐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몇 초 분량의 VFX 컷을 AI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목적을 명확히 해 하나의 완전한 시퀀스를 전 과정 에이크론 안에서 구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AI가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3분의 분량을 완벽히 완성해 냈음에도, 현행 저작권법은 정작 그 ‘창작자’를 정의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배우도, 실제 카메라도 존재하지 않는 이 장면의 저작권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 AI가 만든 장면, 인간의 창작물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의 밤거리에서 안경 쓴 소지섭이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고,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을 영화 같은 분위기로 연출해 줘.”
AI에게 3분 분량의 시퀀스를 구현해달라고 요청할 때, 프롬프트 창에 입력하는 명령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대개는 위와 같은 기본 명령어로 시작한 뒤, 생성되는 데이터를 확인해 가며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프롬프트를 수정·보완하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전문적인 영상 제작 경험을 가진 창작자라면 접근 방식부터 다를 것입니다. 장면별로 콘티를 짜고 인물의 위치와 동선, 표정, 카메라 앵글, 화면 톤, 건물의 폭발 시점 등 세부적인 연출 요소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입력하고, 이렇게 생성된 수많은 컷을 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옮겨 편집과 보정 등을 거침으로써 전체 영상의 일관성을 완성해 나갑니다.
SBS '김부장' 생성형 AI이미지. (사진=모피어스스튜디오 제공)
원론적으로 AI는 인간이 아니므로 저작자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창작적 기여 없이 AI가 독자적으로 산출한 영상 자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김부장’의 저작물성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문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어디서부터 인정할 것인가’입니다. AI를 사용했더라도, 활용 방식에 따라 창작적 기여가 같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트를 수백 차례 입력해 결과물을 얻었다는 사실은 투입된 ‘노동의 양’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의 판단 기준은 ‘몇 시간을 일했는지’ 혹은 ‘AI를 몇 퍼센트 사용했는지’가 아닙니다. 최종 결과물에 창작자만의 ‘독자적인 표현’이 담겼는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표현을 인간이 얼마나 ‘예측’하고 ‘통제’했는지가 핵심입니다.
결국 ‘김부장’의 3분 또한 AI를 사용했다고 해서 저작권이 있다, 없다의 이분법적 잣대로 가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주도한 각본과 콘티, 화면 구도, 컷의 선택과 배열 그리고 편집 등은 보호받을 수 있지만, 인간의 통제와 구체적인 결정이 아닌, AI의 예측 불가능한 생성 메커니즘을 통해 우연히 얻어진 프레임과 움직임까지 저작권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 ‘에이크론’에 연결된 AI가 학습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모든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장면의 ‘저작권자가 누구인가(권리의 주체)’와, 제작에 쓰인 AI가 기존 저작물을 ‘적법하게 학습했는가(권리의 침해)’는 또 다른 차원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입니다.
‘김부장’의 3분 시퀀스 제작에 연동된 AI 모델들이 과거의 영화나 드라마를 학습했다면 이용허락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습 과정에 법적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델이 산출한 모든 결과물이 자동으로 저작권 침해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에이크론’이 여러 상용 생성형 AI 모델을 통합 구동하는 플랫폼이라면, 운영 체제나 제작 도구 격인 플랫폼 자체의 법적 책임과, 그 안에서 작동한 개별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의 학습 데이터 책임은 엄격히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당 장면을 만들 때 어떤 모델과 버전이 사용됐는지, 그 모델은 어떤 이미지와 영상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그리고 데이터 수집과정에 적법한 라이선스를 확보했는지까지 촘촘히 살펴야 합니다.
총을 든 인물이나 차량 추락 같은 액션 장르의 흔한 아이디어를 독점할 수는 없지만 카메라 각도, 액션의 순서, 슬로모션의 타이밍까지 겹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과거 논란이 됐던 만화의 ‘트레이싱(베껴 그리기)’에서는 원작을 따라 그린 주체를 찾을 수 있었지만, ‘AI판 트레이싱’은 다릅니다. 특정 원작을 직접 참고한 사람은 없는데, AI가 학습한 원작의 표현과 유사한 구도가 튀어나옵니다. 상업 작품에 이 결과물을 선택해 사용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이 독특한 표현이 정확히 어느 작품에서 유래했는지는 정작 AI 툴 사용자조차 알 길이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김부장’의 3분 시퀀스는 향후 AI가 상업 영상의 독자적인 서사를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지금까지의 저작권법은 인간의 창작을 전제로 권리를 보호하도록 설계됐으나, 이제는 인간이 결정한 표현과 AI가 생성한 표현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됐습니다.
극중 김부장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민지를 만났지만, AI로 제작한 3분의 분량에서는 누가 무엇을 창작했고 누구에게 저작권 주어져야 하는지 찾지 못한 안타까운 모순이야말로 지금의 저작권법과 콘텐츠 산업이 마주한 서글픈 현실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저작권썰.zip]㊺ ‘멋진 신세계’ 속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로 보는 저작권 보호기간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