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의 시대가 다시 왔다. 브라운관을 휘저었던 수려한 외모나 범접할 수 없었던 스타성 대신, 노련함과 유연함으로 올해 한국영화를 이끈다. 파트너는 류승완, 나홍진, 이창동 등 장르와 작가주의를 대표하는 감독들이다.
포문을 연 건 지난 11일 개봉한 ‘휴민트’다.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국정원 요원 조 과장이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극중 조인성은 조 과장 역을 맡아 서사의 구심적 역할을 해냈다.
‘휴민트’는 조인성이란 배우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앞서 조인성과 ‘모가디슈’, ‘밀수’를 함께한 류승완 감독은 그의 장점을 장르의 문법 안에 정교하게 배치했다. 오프닝 시퀀스인 동남아 매춘굴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인성은 긴 팔다리를 활용한 맨몸 액션으로 물리적 타격감을 배가한다. 반면 정보원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특유의 다정함과 눈빛 연기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강인함, 로맨틱함이란 조인성의 상충된 매력은 서사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작품의 흡인력을 높인다.
여름에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로 관객을 찾는다. ‘호프’는 나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영화는 비무장지대 인근의 고립된 마을 호포항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나타나고, 마을 사람들이 그 실체를 수색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SF물이다.
조인성은 이 작품에서 사냥꾼 역을 맡았다. 구체적인 플롯은 베일에 싸여있지만, 나 감독이 그간 증명한 서스펜스 구축 방식과 밀도 높은 연출, 국내 단일 프로젝트 기준 최대 규모의 제작비 등으로 일찍이 기대감을 키워왔다. 오는 5월 열리는 칸국제영화제 유력 출품작으로도 거론되는 만큼 해외 시장의 주목도도 상당하다.
연말에는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온다. 극과 극 삶을 살아온 두 부부의 세계가 얽히며 네 사람의 일상에 균열이 퍼져가는 스토리로, 조인성은 조여정과 부부 호흡을 맞춘다. 또 다른 부부 역은 설경구, 전도연이 맡아 다층적 심리극을 완성한다.
‘가능한 사랑’은 조인성이 작가주의 미학을 견지해 온 감독과 함께하는 첫 작품이란 점에서 앞선 영화들과는 또 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 감독은 그간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면과 인간 존재의 균열을 집요하게 응시해 왔다. 조인성은 이 감독의 세계관 안에서 한층 깊어진 내면 연기를 선보이며, 배우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할 전망이다.
조인성은 올 한 해 행보를 두고 “뭐라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이 나이에도 아직 배울 게 많고 ‘이것도 기회’라는 마음”이라며 “예전에는 (배우로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튀지 않으면서 극을 끌어가는 힘을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고민을 통해 발전하고 싶다. 조용하지만 강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