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 경기 전 KT 더그아웃 복도에선 유쾌하고도 엉뚱한 설전이 펼쳐졌다.
취재진과 인터뷰 중이던 강백호가 지나가던 안현민을 보더니 "내 배트를 (안)현민이가 다 가져갔다"며 투덜댔다. 이를 들은 안현민은 "(강)백호 형이 내 기운을 다 가져갔다. 빨리 돌려달라"며 투정을 부렸다. 강백호는 지지 않고 "내 기운을 네가 가져간 거다. 반대다"라고 응수하며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화룡점정은 두 선수간의 '내기'였다. 강백호와 안현민은 최근 '안타' 내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내기 상품은 정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원하는 것 하나를 해주기로 의견은 모았다. 그랬더니 강백호가 "현민이가 서로의 월급 10%를 걸고 내기를 하자더라. 월급 차이가 얼만데"라며 황당해 했다.
다행히(?) 월급 10%는 결렬됐다. 하지만 안현민은 물러서지 않고 고가의 가방을 이야기했다는 후문이다. 강백호는 "단가가 안 맞는다"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강백호는 "타수로만 따지면 내가 더 적은데, 안타는 비슷하다. 억울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KT 안현민-강백호. KT 제공
강백호는 "그래도 이전 내기는 내가 이겼다. 이번에도 이기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강백호가 공개한 이전 내기는 8월 한 달간 안타 개수였고, 강백호가 31개, 안현민이 18개로 강백호가 내기에서 승리했다. 현재 진행 중인 내기는 9월부터 시즌 끝날 때까지 안타 개수다. 11일 경기 전까지는 3개로 동률이었다.
워낙 친한 사이라 장난기 넘치는 고가의 '무리수'가 오가긴 했지만 지난달 실제로 대단한 상품이 오간 건 아니다. 하지만 동기부여는 확실하다. 서로의 승리욕을 자극한다.
KT로선 이들의 '내부 경쟁'이 흐뭇하다. 두 선수는 KT의 타선의 중심을 잡아주는 강타자들이다. 이들이 살아나야 KT의 타선도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단순한 내기지만, 이 내기로 두 선수가 더 많은 안타를 때려낼 수 있다면 KT에도 좋은 일이다.
서로 투닥대지만 각별한 사이기도 하다. 안현민은 종종 인터뷰에서 "(강)백호 형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라며 괴력의 원동력을 설명한 바 있다. 강백호에게 배트 선물도 많이 받았다. 강백호의 말에 따르면, 안현민은 보통 검은색과 푸른색 배트를 사용하는데 해당 색깔이 아닌 배트는 모두 강백호가 준 방망이라고.
KT 강백호-안현민. IS 포토
강백호는 "이렇게 장난칠 땐 장난 치고 진지할 땐 진지하게 야구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동료가 있다는 게 정말 좋은 것 같다. 나도 현민이를 보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면서 "함께 잘됐으면 좋겠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두 선수의 '내부 경쟁' 덕분이었을까. KT는 이들의 활약으로 11일 경기에서 대역전승을 했다. 0-4로 끌려가던 7회 선두타자 안현민의 안타로 물꼬를 튼 KT는 1-4에서 나온 대타 강백호의 적시타로 난공불락이었던 선발 요니 치리노스를 강판시켰다. 이후 바뀐 투수를 상대로 KT 타자들이 맹공을 퍼부으면서 역전승했다.
팀의 승리는 물론, 두 선수 모두 안타 한 개씩을 적립하면서 '내기'의 열기를 더 뜨겁게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