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인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순간을 마주하는데 영순의 삶은 가혹할 만큼 힘들죠. 하지만 이런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해요. 영순은 상황이 너무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힘들어 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행복으로 바꿔 나가는 게 감동스러웠죠.”
배우 라미란이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를 통해 또 한번 흥행에 성공했다.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 영순을 연기하며 시청자의 눈물 버튼을 꾹 눌렀다. 남편을 일찍이 떠나보낸 뒤 7살 지능이 된 아들과 함께 험난한 세상을 버티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냈다. 라미란은 영순을 눈부시게 그려냈으면서도 자신은 그처럼 현실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며 캐릭터에 대한 존경스러움과 애정을 드러냈다.
‘나쁜 엄마’는 엄마 영순(라미란)과 뜻밖의 사고로 아이가 돼버린 아들 강호(이도현)가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의 드라마. 영순은 어릴 적부터 강호를 검사로 만들기 위해 혹독하게 기른다. ‘응답하라 1988’(2015),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 ‘부암동 복수자들’(2017), ‘막돼먹은 영애씨’(2017, 2019) 시리즈 등에서 엄마 역을 맡았던 라미란은 ‘나쁜 엄마’를 통해 또 한번 엄마를 그려냈는데 “사실 어떤 엄마가 좋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도 영순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시대의 영향이 있죠. 지금 볼 때는 영순이 과한 면이 있지만 과거 주입식 교육을 받고, 공부가 최고라고 배운 영순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죠. 그래서 영순을 이해하는 동시에 너무 안타까워요. 인생 전체가 우여곡절이고 아들을 그렇게 기를 수밖에 없기도 했잖아요. 강호가 일기에 썼듯, 어떻게 보면 부족하고 잘못된 선택이라 할 수도 있는데 아들이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는 걸 보고 소름 끼칠 만큼 뭉클했어요.”
배우 라미란.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실제 스무살 아들을 둔 라미란은 “나도 엄마가 되는 건 인생에서 처음이기 때문에 배운 적이 없다”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최대한 이해하고 공감하려 하기 때문에 영순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내 삶에 녹여내려 했다”고 말했다. 다만 “영순이 혹독하게 기르기 위해 강호의 밥 그릇까지 뺏어가는 건 너무하지 않나”라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라미란은 오히려 독하게 영순의 ‘나쁜’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고 밝혔다. “대본이 디테일했다. 대본 전체의 3분의1 정도는 방송을 위해 덜어냈다”며 “이를 토대로 영순을 이해했고 그래서 더 독하게 표현하려 했다. 강하게 연기해야 나중에 보여줄 이야기에서 오는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고 캐릭터 구축 과정을 전했다.
배우 라미란. 사진제공=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드라마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나쁜 엄마’를 안 할 수 없었다”고 밝혔던 라미란은 인터뷰 내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출연 이유에 대해서도 캐릭터를 포함한 서사가 촘촘하게 담긴 대본이라고 거듭 말했다.
“대본 전체가 드라마에 담긴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쭉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고 자세히 보면 재밌는 요소가 많아요. 극중 조우리 마을도 그렇죠. 이상한 마을이에요.(웃음)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주고 받는 대사와 상황이 현실적이에요. 서로에게 화냈다가 풀어졌다가 반복하잖아요. 그런데 조우리 마을의 엄마들은 영순과 닮은 엄마이기도 하고요. 이 드라마는 단순히 복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 서사 곳곳에 담긴 이야기들이 소중해요.”
‘나쁜 엄마’에서 영순은 남편의 죽음, 암 투병 등 자칫 올드할 수 있는 설정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라미란은 “진부하고 올드한 게 안 좋다는 건 아니지 않나. 또 이 작품은 그런데도 계속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쁜 엄마’ 대본을 읽었을 때 1부가 끝났는데 2부가 궁금하고, 또 다음이 궁금하더라.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올드하든, 신파든, 클리셰든 그게 중요한가요. 이야기가 계속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하다 생각해요. 시청자들도 그 안에서 각자의 해석을 하면서 작품을 보게 되죠. 클래식은 영원하고요.”
‘나쁜 엄마’는 섬세한 서사로 시청자들을 눈물 짓게 했다. 눈물 버튼의 주역인 라미란은 오히려 감정을 누르면서 연기했다고 전했다. “영순을 연기하면서 나도 ‘울지 말자’라고 다짐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려 했다”며 “배우들과도 촬영 전부터 계속 울어서 서로 한바탕 울고 진정하려 노력했다”고 뒷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제공=JTBC
라미란의 연기는 모자 호흡을 맞춘 배우 이도현의 눈물버튼이 되기도 했다. 처음으로 이도현과 호흡을 맞춘 라미란은 “처음 만났을 땐 깍듯하더라. 그런 모습을 가만히 둘 내가 아니지 않나”라고 유쾌하게 말하며 “나중엔 촬영장에 오는 걸 되게 좋아하더라”라고 말했다.
“또래들 중 그 정도의 깊이를 표현하는 배우를 처음 봤어요. 처음엔 20대인 줄 몰랐어요.(웃음) 극중 강호처럼 너무 아이 같지도 않고 아저씨 같지도 않은 모습이더라고요. 가끔 연기를 주고받지 못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도현이는 눈을 마주치며 연기할 때마다 신나고 재밌었죠. 서로의 눈물버튼이었어요.”
배우 라미란.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라미란에게 ‘나쁜 엄마’는 배우로서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드라마를 통해 코믹함을 많이 보여줬는데 이번엔 진지하게 시청자에게 다가간 것 같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어느덧 50대를 앞두고 있는 라미란은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 “무조건 대본이 재밌으면 된다”라며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체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웃음) 여전히 서른여덟이라 여기고 있어요. 서른여덟 아래이면 너무하지 않나 싶어서 딱 그 정도의 나이인 것처럼 살고 있죠. 저처럼 싫증을 잘 내는 사람에게 배우는 최고의 직업이고,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나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