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프로레슬링에서나 입었을 법한 '빨간 팬티'를 입는 파이터. 100전을 훌쩍 넘긴 백전노장. 거인 사냥꾼. 모든 수식어 종합격투기 로드 FC 선수 미노와 이쿠히사(41·일본)의 이야기다.
'미노와맨'이라는 별명으로 국내 격투기팬들에게 유명한 이쿠히사는 유도 국가대표 출신 윤동식(45)와 23일 충북 충주세계무술축제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샤오미 로드 FC 042 대회 메인이벤트 미들급(84kg급) 경기를 치른다. 21일 김포공항 내 카페에서 만난 이쿠히사는 "이번 시합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최선을 다해서 승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쿠히사는 프로레슬링 마니아였다. 그는 중1 때 TV로 안토니오 이노키(74)의 경기를 보고 프로레슬링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다. 프로레슬러처럼 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곧장 동네 유도장을 달려간 그는 매일같이 훈련을 거듭하며 체력과 힘을 키웠다. 이쿠히사는 "고교생 시절 24시간 프로레슬링만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도 팔에 아령을 달아 훈련이 되도록 했고 친구들이 인기 연예인들이 만들어낸 유행어를 따라할 때 나는 '할 수 있겠는가'처럼 당시 레슬러들처럼 박력있는 말투를 썼다"며 웃었다.
이런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20세에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이쿠히사는 당대 최고 레슬러들 만큼 덩치가 크지 않았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매일같이 농구를 하고 우유를 달고 살았지만 소용 없었다. 그는 신체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훈련에 매진했다. 이쿠히사는 "하루에 13시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과 실전 훈련을 한 적도 있다. 그때는 잠을 자는 것도 훈련을 더 잘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레슬링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이쿠히사는 자연스럽게 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레슬링에서 쓰는 화려한 필살기를 뒤로 하고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펀치와 관절꺾기를 익혔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빨간 팬티다. 바지통이 큰 트렁크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기능성 하의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이쿠히사는 21년째 빨간 팬티만 고집하고 있다. 그는 "한창 프로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 롤모델이었던 선배가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 나는 머리는 물론 바지까지 빨강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레슬러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계속 빨간색 하의를 입는다"고 덧붙였다.
이쿠히사는 4차원 파이터다. 그는 동물원에서 사자와 눈싸움을 비롯해 강물 속에서 발차기 연습, 나뭇가지로 나뭇가지 찌르기 등 독특한 훈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그는 격투기계의 기인으로 통한다. 그러나 정작 이쿠히사는 아무렇지 않다. 그는 "남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모두 격투기를 하는 데 도움이 돼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거인 사냥꾼'은 그의 또 다른 발명이다. 키 175cm인 그는 자신보다 머리 2개나 더 큰 거구들과 싸워 이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내팬들에게는 2009년 최홍만(218cm)과 무제한급 매치를 벌여 승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강력한 관절꺾기로 2라운드 1분27초 만에 최홍만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가 수많은 기행에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격투기 통산 전적은 113전(63승42패8무)의 이쿠히사에게 불혹을 넘기도 링에 오르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