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46) 포항 스틸러스 감독의 각오는 담담했다. 지난해 K리그 역사상 첫 더블(리그·FA컵 동시 우승)을 기록한 포항은 올 시즌 현재 3위다.
1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 K리그 클래식 34라운드에서 1-1로 비기며 승점 56에 머물렀다. 같은 날 울산 현대를 3-0으로 꺾은 2위 수원 삼성(승점 61) 추격에 실패했다. 포항은 8월까지 선두였지만 주축 선수들이 빠진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8월 이후 석 달 가까이 2위를 지킨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외국인 선수가 없는 포항의 경기력은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로웠다. 그러는 사이 1강으로 꼽히던 전북 현대는 독주하며 일찌감치 K리그 챔피언 자리를 예약했다.
100%로 싸우지 못하는 것처럼 아쉬운 전쟁은 없다. 포항은 전반기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던 이명주(24)를 알 아인(아랍에미리트연합)로 떠나보냈다. 황 감독은 2일 전화통화에서 "내 욕심을 차리자고 선수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연봉이 15억원이나 됐다. 3년 계약인데 구단에서 줄 수 있는 돈이 아니다"며 "이명주를 떠나보낸 것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이어 "포항에 부임할 때부터 구단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주축 선수가 나가는 것은 각오한 일"이라며 지금 성적에 대해 "변명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포항은 전반기 10경기 연속 공경 포인트를 올리던 이명주(24)를 알 아인(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떠나보냈다.
IS포토포항은 전반기 10경기 연속 공경 포인트를 올리던 이명주(24)를 알 아인(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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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이파크 사령탑 시절(2007.11~2010. 11) 황선홍은 열정적이었다. 벤치에서 마치 선수처럼 뛰어다녔다. 판정에 항의하고 선수들을 다그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패기 넘치는 '용장(勇將)'과 가까웠다. 그러나 어느덧 7년차가 된 황 감독은 차분하다. 좀처럼 표정을 읽기 힘들다. 선수가 실수해도 믿음을 보인다.
황 감독은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한 경기에 연연하면 큰 판을 망칠 수 있더라"고 말하는 그는 "올해는 전술적인 실험을 많이 했다. 시즌 초에는 제로톱을 써봤다. 명주가 떠난 뒤에는 스리백도 운용했다"고 떠올렸다. 포항은 다양한 전술변화로 꿋꿋하게 상위권을 지켰다. 황 감독은 '지장(智將)'의 면모도 갖춰가고 있었다.
황 감독의 눈은 벌써 다음 시즌을 보고 있다. 2위를 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 감독은 "3위로 가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예선을 치러야 한다. 시즌 시작 전에 고단한 일정이 반복된다"며 "꼭 2위에 올라 운용의 폭을 넓히고 싶다"고 했다. 포항 구단도 오랜 만에 지갑을 열었다. 2년 동안 굳게 닫아뒀던 문호를 개방해 일찌감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보강에 나섰다. 이청용(26)과 함께 볼턴 원더러스(잉글랜드)에서 뛰던 안드레 모리츠(브라질)와 지난 9월 계약했다. 또 윤희준(42) 코치를 남미로 출장 보내 '수준급' 외국인 선수의 추가 영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 감독은 "모리츠를 1주일 동안 테스트했다. 기술도 좋지만 선수들과 융화되는 인성이 좋았다"며 "프리킥도 날카로워 다음 시즌 (김)승대와 시너지가 기대된다. 구상대로 공격수 보강만 잘 된다면 내년 시즌 전북과도 겨뤄볼만 하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