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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재벌금융사, 퇴직연금도 계열사 몰아주기
재벌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재벌들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퇴직연금 몰아주기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말 공개된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롯데손해보험(롯데), HMC투자증권(현대차) 등 일부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중 계열사 비중이 9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손보·HMC투자증권 계열사 비중 90%롯데손보의 경우 적립금 7163억원 가운데 롯데그룹 계열사 물량이 6726억원으로 전체 적립금 대비 비율이 93.9%에 달했다. HMC투자증권도 전체 적립금 4조5101억원 가운데 현대차그룹 계열사 비율이 91%(4조1045억원)에 달했다. 또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도 계열사 물량 비율이 81.9%달했다. 이밖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1위인 삼성생명도 계열사 물량 비중이 49.8%에 달해 전체 적립금의 절반에 육박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수익 증대를 위한 재벌들의 일반적인 일감 몰아주기와 달리 퇴직연금은 그룹 차원에서 금융계열사의 성장을 위해 물량을 몰아주는 경우가 많은 데다 금융계열사가 그룹 내 비금융계열사에 수수료나 금리 등 편의를 봐주는 경우도 있어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인식도 적어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몰아주기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재벌 금융계열사들은 계열사 직원들의 퇴직금을 모아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적립금 규모 1위인 삼성생명의 경우 계열사 물량을 뺀 기타 가입자의 적립금 규모는 신한, 국민, 우리은행에 이어 4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HMC투자증권도 전체 적립금 규모는 5위였지만 계열사 물량을 빼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계열사 몰아주기로 직원들만 피해 문제는 양쪽 모두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급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금융계열사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물량을 몰아주는 경우 비금융계열사 직원들이 다른 금융사의 조건에 비해 불리하게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금융계열사가 특별히 좋은 조건으로 계열사 퇴직연금을 유치한다면 계열사가 아닌 일반 기업이나 개인가입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현재로서는 재벌기업들의 퇴직연금 몰아주기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고민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일반적으로 기업이 금융계열사를 선택해 운용을 맡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금융 관련법이 아닌 노동법인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고쳐야 한다”면서 “일단 오는 3월부터 업계 자율규제 형식으로 계열사 물량 비중을 50% 선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퇴직연금 몰아주기’를 부당 내부거래로 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부당 내부거래가 성립하려면 현저성과 부당성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데 현대중공업 계열이나 현대차그룹 계열 보험회사에 80~90% 이상 퇴직연금 적립금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부당 내부거래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시민단체 “법 개정해서라도 규제해야”이에 대해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서라도 퇴직연금 몰아주기와 같은 재벌들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기웅 경실련 경제정책팀 부장은 “현행 공정거래법 제23조 7항은 계열회사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지원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조문에 명시되어 있는 ‘부당성’과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 대한 구체성이 떨어져 해당 조문은 거의 사문화되고 있다”며 “문구를 보다 구체화해서라도 통상적 거래관행을 넘어서는 유리한 조건인 경우는 위법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당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구 기자 ninelee@joongang.co.kr
2013.02.04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