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승마] 조선시대 그림 속 말은 입신양명할 인재 의미
한민족의 마문화 ①특급 익스프레스 기발 ②무력의 상징 기마대 ③귀족들의 놀이 격구 ④성공의 상징 말 그림 ⑤우리식의 말타기 말의 힘과 스피드·우람한 근육·충성심을 사랑하는 한민족은 말과 함께 융성했고 말은 행운과 성공의 상징이 됐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벽화·신라시대 부장품인 천마도· 고관대작의 무덤을 지키는 석마·기마인물형 토기 등 최고 권력자인 왕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 말은 한민족의 생활에 녹아들었다. 한민족과 말 사랑은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말은 여전히 행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말은 행운과 성공의 상징 충·효·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조선시대에도 말은 행운·성공·고귀한 신분을 상징했다. 조선시대 말이 최고의 상징이 된 것은 성공한 영웅들에게는 충과 의를 상징하는 말 관련 고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 통일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의 백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팔준마', 중국 역사에서는 3황5제 중 하나인 복희씨가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용마' 한나라의 무제가 얻었다는 '천마'등의 고사가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말 관련 그림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붙였다. 말 한마리가 있는 그림은 장차 입신양명할 인재로, 사람이 관복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 경우 관직에 출사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또 묶여 있는 말의 경우에는 말은 충신을 고삐는 제왕과의 끈끈한 결속으로 해석했다. 덕분에 당시 지배층의 말 그림을 가치 있는 선물로 인식했다. 실제로 말그림은 소위 잘팔리는 그림이 돼 선물로 주고받는 판매용으로도 제작됐다. 국내에 전해지는 말 그림 중 천재화가 장승업의 '쌍마인물도' 윤두서의 '군마도' 이면구의 '유마도' 강필주의 '백락상마도' 등이 유명하다. ▲서민에 뿌리내린 말 그림 말은 서민들의 삶속에도 녹아들어 있다. 서민들을 삶을 그린 거장 김홍도와 신육복의 그림에도 말이 소재로 사용됐다. 김홍도의 '기마응렵도'·'노상과안'이 있고 신육복의 '해원전신첩'에는 봄놀이 가는 그림, 산사에 가는 그림에 말과 여인이 등장한다. 서민에 가장 접근한 말 그림은 무속도다. 대관령 성황당의 성황신도에는 말에 오른 산신이 등장한다. 외옹치 서낭당의 수부도에는 날개 달린 백마가 그려져 있다. 경북 봉화 쑥당마을에는 성황당에는 백마에 오른 장군 그림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말은 신성한 존재 또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의 조력자로 인정받았다. 이밖에도 관우와 적토마가 등장하는 무속도도 널리 퍼져있다. ▲가장 오래된 말 그림은 5~6c 한민족의 말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5~6c기 무덤에서 출토된 벽화와 부장품이다.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 그림으로 가로 75㎝, 세로 53㎝로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 1935년 발굴된 고구려의 무용총은 중국 지린성 통구의 집안에 위치한 벽화고분으로 광개토왕릉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으며 각저총과 나란히 있다. 무용총의 널방 서쪽에 그려진 수렵도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다섯 명의 말 탄 인물이 활시위를 힘껏 당기며 사슴과 호랑이를 쫓고 있는 모습이다.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2011.01.28 16:09